[노용환의 예술묵상] 고흐의 “선한 사마리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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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한 사마리아인, 1890, 빈센트 반 고흐
크뢸러 뮐러 미술관 (오테를로, Nederland)
1. 램브란트 이후 가장 위대하고 혁명적인 네덜란드의 화가, 혹은 불멸의 화가로 불리는 빈 센트 반 고흐는 종교화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사로의 부활>과 <삐에따>, 그리고 오늘 소개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이라는 세 작품을 남김으로써 그의 신앙의 한쪽 면을 잠깐 들여다볼 수 있게 여지를 남겼습니다. 어쩌면 자연스러운 여지일지 모릅니다. 독일 개혁교회 목사의 장남으로 태어나, 본인도 목회자로 섬겼기 때문입니다.
2. 그러나 그의 신앙 여정이 순탄했던 것은 아닙니다. 의지할 곳이라곤 동생 하나밖에 없는, 사실상 빈털터리의 인생을 살았던 그의 모습은 수도자를 닮았습니다. 신학을 공부했으나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몰입했지만, 지나친 헌신도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그의 신앙은 깊었으나, 소위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표준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3. 화방 직원으로, 또 교사로, 이후 선교사로 정처없이 굴곡진 인생을 살다가 결국엔 화가로, 그것도 불멸의 화가로 여생을 살았습니다. 화가의 인생 또한 순탄치 않았습니다. <해바라기> 빼고는 생전 팔아본 작품이 없었습니다.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도 안좋아서 인물을 그리고 싶었던 그는 정물과 풍경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어쩌다 영혼의 친구를 만났다고 생각해서 고갱을 노란집으로 초대했지만, 그마저도 뜻대로 결말짓지 못했습니다. 인생 전체가 어쩌면 피투성이, 강도 만난 사람이었습니다. 결국 정신을 잃은 그를 돌본 것은 결국 동생 테오였습니다.
4. 동생 테오는 형의 이야기를 800편의 주고 받은 편지로 들어주었습니다. 형이 아플 때 생레미 정신 병원에 작업실이 딸린 거처를 구해주었습니다. 병원 측에 매일 포도주 500미리를 비롯해 음식을 부탁한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영락없이 선한 사마리아인은 동생 테오입니다. 물론 강도 만난 사람은 고흐고요. 그런데 그림에선 엉뚱하게 본인의 자화상을 선한 사마리아인에 담았습니다. 신앙은 어쩌면 이러한 역전입니다. 상처 입은 사람이 회복 되어 다시 길 위에 섰을 때는 상처를 싸매는 사람이 되는 게 성경적 순리입니다. 그 이웃사랑의 순리가 돌아가게 만드는 힘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러한 순환을 아는 사람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있습니다. 고흐도 그렇고 여러분도 그렇습니다.
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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