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시단] 거리두기(distanc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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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길은 더 이상 오늘의 세상이 아니다
숫자가 점점 줄어들더니
나와 너 사이 그것*
계절 잊은 거리에 또 하나의 계절이
비에 젖어 길모퉁이에 축 늘어져 눕고 있다
꼬리 무는 긴 한 숨,
벽을 쌓고 뒤로 걸어 멀어지는
틈에 끼어 비둘기 깃털 비틀거리며 한올지다
오늘 아침 거리는 더욱 조용하다
헛기침 소리에 놀란 바람이 흔드는 것일수록
혹시나 의심하는 버릇이 그쯤이다
간 혹 닫힌 상자 열고 발 한 뼘 옮겨
뒤 돌아 나오는 길은 언제나 막혀있다
짙은 어둠이 휘리릭 쏟아져 내리면
붉은 십자가 고개 숙인채로 구불구불진
텅 빈 예배당 안으로 개미 한 마리
배 끝으로 땅을 쓸며 힘겹게 들어가고 있다
거리두기
세상에서 가장 슬픈 문장을 만들며
뒷걸음에 직선 위 벼랑 끝으로 몰리고 있다
이 땅을 회복 하소서
시작은 끝이 있다
끝이 없는 시작도 없다
다시 일어나 무너진 거리에서
새로운 노래로 곡조 있는 계절을 기다리는 것은
오늘 세상은 더 이상 내일의 길이 아니기 때문이다
*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나와 너(I-You)”를 인격적인 관계로 “나와 그것(I-It)”은 도구적인 관점으로 일시적이고 기계적인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백승철
-시인
-에피포도예술과문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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