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철의 에피포도엽서] 하영 가족의 친일 논란을 바라보는 기독교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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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 가족의 친일 논란을 바라보는 기독교의 시선
배우 하영이 방송에서 가문의 이력을 언급한 후 증조부(안상호)의 일제강점기 식민지 협력 행적이 드러나며 불거진 논란은 단순한 연예계의 가십을 넘어섰다. 이는 현대 한국 사회가 여전히 안고 있는 과거사 청산의 미완성, 그리고 역사적 단죄와 현대적 연좌제 사이의 깊은 갈등을 다시금 수면 위로 올린 사건이다. 성찰 없는 조상 미화에 대한 대중의 격렬한 분노와 뒤이어 이어진 후손의 사과는, 우리가 걸어왔던 잔혹했던 역사와 그 유산이 현재의 삶 속에 어떤 형태로 살아 숨 쉬고 있는지를 신랄하게 증명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친일 청산의 실패는 한국 현대사의 근본적인 비극 중 하나다. 정의로운 단죄가 이루어지지 못한 자리에 불의로 얻은 자본과 권력이 세습되는 기형적인 구조가 뿌리내렸다. 따라서 공인이 매체를 통해 역사적 검증 없이 가문의 내력을 자랑스럽게 소비하는 행위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겪은 세대 간의 빈곤과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일이자 공공의 역사적 의식을 훼손하는 정서적 폭력이 될 수 있다. 대중이 느낀 분노의 본질은 단순히 '친일파의 후손'이라는 신분 그 자체보다, 불의한 역사의 결과물이 아무런 성찰 없이 대중적 명예로 변주되어 소비되었다는 데 있다.
성경은 개인의 도덕적, 역사적 책임을 엄격히 구별하는 동시에, 공동체적 성찰이라는 깊은 신앙적 차원을 제시한다.
첫째, 죄의 연좌제에 대한 경계다. 에스겔서 18장 20절은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버지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할 것이요 아버지는 아들의 죄악을 담당하지 아니하리니"라고 선언하고 있다. 조상이 지은 친일의 죄 자체가 후손의 신앙적, 도덕적, 실체적 죄로 직접 전가될 수는 없다.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사회적 매장을 당하거나 인격적 살인을 당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공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둘째, '대신하는 통회(Identification in Repentance)'의 전통이다. 느헤미야와 다니엘은 자신들이 직접 짓지 않은 조상들의 죄를 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나와 내 아버지의 집이 범죄하여"라며 머리를 숙였다(느 1:6, 단 9장). 조상의 불의로 형성된 사회적 자본과 특권을 누리면서 과거의 불의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감각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참된 회개와 진리의 정신에 어긋난다.
셋째, 공의 위에 세워지는 화해다. 기독교적 용서와 화해는 진실을 덮는 맹목적 면죄부가 결코 아니다. 불의를 불의라고 정직하게 고백하는 공의의 토대 위에 비로소 성숙한 회개와 인격적 화해가 일어난다. 용서 없는 비난은 증오만을 생산하며, 공의 없는 화해는 불의를 정당화할 뿐이다.
이와 같은 논란이 일회성 비난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의 공적 성숙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다차원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친일파 조상을 둔 후손이 할 수 있는 가장 진정성 있는 대처는 '역사적 사실의 겸허한 인정'에서 출발이다. 조상의 과오를 변명하거나 부정하지 않고 직시하는 성찰이 필요하다. 나아가 불의한 역사적 유산으로부터 반사이익을 얻었다면, 이를 사회 공동체와 독립운동 기념사업, 혹은 소외된 이웃을 위해 환원하는 '청지기적 삶'을 실천해야 한다. 이는 법적 의무를 넘어선 도덕적, 역사적 회복의 행위다.
비판의 화살은 후손의 '존재'가 아닌 '성찰의 부재'와 '무지'를 향해야 한다. 무차별적인 인신공격과 집단적 낙인은 또 다른 형태의 폭력을 낳기 때문이다. 후손이 진정성 있는 반성과 역사적 직시를 행할 때, 사회는 그를 품어주고 회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성숙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방송과 언론, 대중문화 기획자들은 공인의 가문이나 역사적 배경을 다룰 때 철저한 검증과 성찰적 태도를 갖추어야 한다. 역사적 맥락이 생략된 가문 미화는 공적 대화의 장을 오염시키고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유발한다.
배우 하영의 조상 친일 논란은 결국 우리를 향하는 질문이다. "우리는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현재 속에서 바로잡을 것인가?" 조상의 죄를 후손에게 그대로 묻는 연좌의 굴레는 끊어내야 한다. 그러나 과거의 불의를 눈감거나 어설픈 변명으로 넘어가려는 태도 역시 경계해야 한다. 조상의 과오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길은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진실의 빛 아래 정직하게 서서 성찰하고 사과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와 교회가 이 사건을 통해 연좌제의 혐오를 넘어, 진실에 기반한 성찰과 공의로운 화해의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기대하는 것은 다른 길이 아니라 성경의 길이다.

백승철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 <Oral Roberts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 캘리포니아 부에나 파크 (Buena Park)에 위치한 <사모하는교회 Epipodo Christian Church>의 담임목회자이며 교수,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이다. 199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에피포도예술과문학(Epipodo Art & Literature)의 설립자이며 대표이다. 다양한 장르의 출판(영어, 한국어)된 저서로 31권 외, 다수가 있다. 에피포도(Epipodo)는 헬라어로 “사랑하다. 사모하다. 그리워하다”의 뜻이다. usae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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