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용환의 예술묵상] 마솔리노의 “다비타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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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의 병자 치유와 다비타의 부활, c 1426, 마솔리노 다 파니칼레
브란카치 채플,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피렌체, 이탈리아)
마솔리노는 마사초와 동시대에 동료로 일하면서 초기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습니다. 원근법을 최초로 적용한 마사초와 함께 브란카치 채플의 프레스코화를 작업하면서 서로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한 공간에 소개하였습니다. 마사초의 원근법은 동시대 주민들에게 연일 화재였습니다. 벽을 파서 그림을 그렸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습니다. 마사초 이전에는 신의 시선으로 사건을 관찰하고 그렸기에 작품들이 2차원적이었습니다. 대신 중요한 인물을 크게 그리는 정도로 포인트를 줬을 뿐입니다. 그런데 신 기술이 도입됐고, 그 실험장이 바로 마솔리노가 주관했던 브란카치 채플이 되었습니다. 마사초에게 원근법이 있었다면, 마솔리노에게는 우아하고 섬세한 선과 풍부한 색채 그리고 고딕 전통을 계승한 우아함이 돋보였습니다.
작품을 살펴봅시다.
베드로가 왼쪽 오른쪽 두 번 나옵니다. 즉, 한 작품 안에 두 가지의 사건이 병렬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왼쪽은 사도행전 3장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로 유명한 성전 미문에서의 치유 사건입니다. 베드로가 빈 손을 내밀며 걸인이 원하는 것은 줄 수 없지만, 자신에게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메시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함께 유심히 살펴볼 장면은 오른쪽의 “다비타의 부활”입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의 최대도시 텔아비브의 구도심, 야파(욥바)에서 일어난 기적으로 사도행전 9장의 장면입니다. 다비다는 착한 일과 구제하는 일에 전념했던 제자였습니다. 성경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제자의 여성형(mathetria)이 그녀를 설명하는 데 쓰였습니다. 그녀에게는 베풀 수 있을 정도로, 또 다락이 있을 정도로 재산이 넉넉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보다 더 넉넉한 것은 그녀의 죽음을 둘러싸고 슬피 울며, 그녀가 만들어준 옷가지들을 보여주고, 그녀를 살려달라고 애원했을 과부들입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그녀의 친구들도, 다락도, 선행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녀가 가진 풍부한 심적, 물적, 인적 재산이 그녀를 부활로 이끈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앞에 내밀만한 것은 삶의 공적과 재산이 아닌, 그녀의 “제자”라는 존재요, 믿음 그 자체입니다. 그녀의 부활 뒤에 일어난 사건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온 욥바 사람이 알고 많은 사람이 주를 믿더라”(행 9:42). 그녀가 부활한 뒤 사람들이 그녀의 선행을 따라했다거나, 가진 것을 나누었다는 기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성경은 부활의 여파로 오직 “믿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 작품에서 베드로와 부활한 다비타 사이에는 증거된 말씀만 존재할 뿐입니다. 주위 사람들이 놀라거나 슬퍼하는 등의 과장된 몸짓과 표정도 볼 수 없습니다.
주요 사건의 인물들만 보면 그림자로 인성을 부여했지만(당대에는 혁신), 마솔리노가 추구했던 원근법은 보이지 않습니다. 사건과 배경을 별도의 기법으로 작업한 것으로 보입니다. 고딕에서 르네상스로 전환되는 시점에서 영리한 선택을 한 셈입니다. 빨래가 널린 건물과 같은 배경과 일상 가운데 일어난 기적, 그 기적과 기적 사이를 중앙의 저 피렌체인들의 걸음걸이처럼 우리도 살아가고 있습니다. 박완서 작가가 소개한 중국 속담처럼 “하늘을 나는 것도, 물 위를 걷는 것도 아닌, 땅 위를 걷는 것이 기적”입니다. 연약한 이들에게 기적은 대단한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일상을 영위할 수 있으면 그만입니다. 좌측의 성전 미문 걸인과 우측의 다비타에게 새롭게 펼쳐질 일상은 그저 걷는 것입니다. 다만 그 품에는 툭 터질 듯한 부활의 기쁨이 담겨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기적입니다.
말씀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함께 묵상합시다.
● 다비타의 입장에 서서, 내가 경험했던 치유를 돌아봅시다. 연약할 때 가장 원했던 것이 무엇이었나요?
● 베드로의 입장에 서서, 내가 치유를 돕는 통로가 되었던 경험을 돌아봅시다. 연약한 이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었나요?
● 우리 가정에 홀로 희생하시고 헌신하신 어머니들(혹은 어머니 본인)의 사랑을 감사하며 돌아봅시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집 안에 생명이 꽃피웠던 순간들을 기억해 봅시다.
손 모아 기도합시다.
주님, 저를 사용하셔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용기와 사랑을 주옵소서. 우리 일상에서 작은 기적을 이루는 당신의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복음의 빛과 세상의 소금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아멘.
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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