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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철의 에피포도엽서] 에베소, 처음 사랑을 묻다 by 신지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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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 처음 사랑을 묻다 by 신지언 

제30회 에피포도신인문학상 수필 수상작품



어젯밤 내내 비가 쏟아졌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온갖 걱정이 꼬리를 물었는데, 새벽이 되자 빗소리가 뚝 멈추고 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 비가 그친 후의 공기는 유독 맑고 투명했다. 걱정 끝에 맞이한 아침이 더 소중하게 다가왔다. 밤새 내린 비가 하루를 빛나게 만든 것처럼, 인생의 근심들도 결국에는 우리를 더 깊은 감사로 이끌어 줄 것 같았다.


에베소 유적지를 돌아보기 전에 먼저 사도 요한 교회 터로 향했다. 예수님이 가장 사랑하셨던 제자, 그러나 가장 무거운 책임을 짊어진 사람. 십자가 아래서 '이 사람이 네 어머니다'라는 마지막 부탁 하나를 붙들고 이 먼 땅까지 온 요한. 큰 사랑을 받은 사람은 무거운 책임도 기꺼이 감당하는구나... 이 소박한 무덤이 그 진리를 이천 년째 조용히 증언하고 있었다.


두란노 서원 자리로 추정되는 셀수스 도서관에 도착했을 때,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들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25년에 걸쳐 완성한 이 건물 정면에는 네 여신상이 서 있다. 지혜(소피아), 미덕(아레테), 사고(엔노이아), 지식(에피스테메). 이 네 가지 덕목은 지금도 우리가 여전히 추구해야 할 가치임을 깨닫는다. 지식은 쌓고, 지혜는 갈고, 미덕은 살아내야 한다. 그것을 아는 사람이 진정으로 아는 사람이 아닐까.


도서관 오른편에 자리한 마제우스와 미트리다테스의 문 앞에서 발걸음이 멈췄다. 노예에서 자유인이 되고 다시 로마 제국 관리로 등용된 이 두 사람이 그 감격을 돌에 새겨 후대에 남겼다. 문득 담임목사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감사는 받은 것을 받았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감사는 마음속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고백으로, 행동으로, 삶으로 흘러넘쳐야 비로소 진짜 감사다.


고대 도시 에베소를 조금더 걸으며 문득 아이러니한 사실 하나가 마음을 스쳤다. 사랑의 사도 요한이 숨을 거둘 때까지 살았던 이 도시가, 요한계시록에서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꾸지람을 들었던 바로 에베소 교회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나무람 속에 사랑이 있었다. 사랑하는 자녀이기에 훈육하듯, 그 말씀 안에는 '처음 사랑만 회복하면 된다'는 따뜻한 희망이 담겨 있다.


그렇게 생각이 흐르다 보니, 잊고 있던 것들이 하나 둘 마음을 두드렸다. 내 신앙의 시작은 분명 사랑이었다. 처음 예수님의 사랑을 알게 된 감격과 순수함, 그 분이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열정과 연민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그래도 난 내게 주어진 건 하고 있잖아, 이만하면 됐지'하며 스스로 만족했다. 예전처럼 사소한 일에 감동하거나 감사하지 못했다. 주변에 불평하며 비판하기에 익숙해진 나를 발견했다. 모든 수고와 인내, 그리고 진리 위에도 반드시 사랑이 있어야 한다는 메시지가 지금 내 마음에도 그대로 들려왔다. 내 신앙의 출발점, 그 첫 사랑에서 조금씩 조금씩 멀어진 나를 깨달으며 다시 처음 사랑을 회복해야 할 필요를 뼈저리게 느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묻는 소리가 들린다. 


"처음 만나던 날의 설렘과 기쁨, 아직 네 안에 남아 있니?" 


신앙도, 여행도, 아니 인생 자체도 결국 '처음 사랑'을 잃는 순간 길을 잃는 것 같다. 이 웅장한 폐허 한가운데서, 처음 사랑을 다시 시작하기로 다짐한다. 에베소의 돌들이 이천 년의 세월을 견뎌온 것처럼, 내 마음속 사랑도 시간을 뛰어넘어 영원히 지속되기를 소망해 본다.



| 시선의 여백 |

신지언은 사물과 환경을 바라보는 눈길이 투명하고 시적 감수성도 내포되어 있다. 「에베소, 처음 사랑을 묻다」는 성지 순례의 경험을 단순한 여행기가 아닌 신앙적 성찰로 승화시킨 수필이다. 에베소의 유적과 성경의 역사를 따라가며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돌아보는 과정이 자연스럽고 진솔하게 전개된다. 특히 외부 풍경에 대한 관찰이 내면의 영적 질문으로 이어지는 구성이 돋보이며, 요한계시록의 에베소 교회와 자신의 신앙을 연결한 부분은 깊은 울림을 준다. 화려한 유적보다 사랑의 회복을 더 중요하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신앙인의 겸손한 고백이 느껴진다. 


***

신지언 Joanne Shin수필가는 제30회 에피포도신인문학상(수필)을 수상했다 | 한국에서 한국전력공사에 다니다 베이징 사무소 파견 중에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습니다. 중국을 거쳐 현재는 미국 캘리포니아 로렌하이츠에 살고 있는 50세 주부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세상이 멈춘 때에, 지금 어느 때에 내 인생이 마감되어도 이상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디지털 세상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나를 돌아보고, 내 속의 복음을 정리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디지털 문맹인이던 제가 온라인에 글과 사진, 동영상을 올리며 마음속에 숨어 있던 글쓰기를 시작하게 되었고, 온라인으로 책 도반들과 함께 읽고 쓰고 나누며 동굴 같은 그 시간을 통과했습니다. 배운 것을 나누고 싶어 디지털 사용법 책과 달리기 동호회 책을 공저로 쓰기도 했습니다. 브런치 계정에도 소개하고 있듯이 '간절히 살며 나를 찾아가는 행복 수집가'로서, 배우고 나누고 사랑하며 살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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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승철 목사는 고려신학대학원, <Oral Roberts University>에서 박사학위, 캘리포니아 부에나 파크 (Buena Park)에 위치한 <사모하는교회 Epipodo Christian Church>의 담임목회자이며 교수, 시인, 문학평론가, 칼럼니스트이다. 199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에피포도예술과문학(Epipodo Art & Literature)의 설립자이며 대표이다. 다양한 장르의 출판(영어, 한국어)된 저서로 31권 외, 다수가 있다. 에피포도(Epipodo)는 헬라어로 “사랑하다. 사모하다. 그리워하다”의 뜻이다. usaep@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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