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용환의 예술묵상] 밀레의 "만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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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종, 1857-1859, 장 프랑수아 밀레
오르세 미술관 (파리, 프랑스)
드러난 경건: 일상 속 거룩함
시골 할머니 댁 기둥에 달린 옥수수 위로 작은 밀레의 <만종> 복제본이 걸려 있었습니다. 유년시절 저녁을 먹고 대청마루에 누워 해질녘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눈 앞에 펼쳐진 들판은 그 <만종> 자체였습니다. 노동의 무게를 알게 된 지금, 일과 기도의 한복판에서 작품 앞에 다시 서 봅니다. 고단한 하루의 끝, 땅과 하늘 사이에 선 농부들은 손 끝에 남은 흙냄새를 씻어내며 저녁 기도로 영혼의 쉼을 누립니다. 울려 퍼지는 교회의 종소리에 손에 쥔 농기구를 당장 놓고 경건히 손을 모으던 그 순수한 경건이 그리워집니다.
숨겨진 슬픔: 보이는 것 너머
이 작품을 깊이 사랑했던 살바도르 달리는 <만종>에 배어 있는 묵직한 슬픔에 사로잡힙니다. 불의의 손상 사고로 루브르 박물관에서 시행한 X선 촬영 결과, 감자 바구니 밑그림 속 나무상자는 어린 아이의 관처럼 보였습니다. 달리는 "이 그림은 기도가 아닌,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애도"라고 말했습니다. 그럴듯한 추측에도 삶의 층위는 여전히 다양합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속 고요한 기도로, 때로는 그 이면에 감추어진 슬픔마저 품에 안고 오늘도 하늘문을 두드리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자녀 된 우리에게 하늘 아버지는 좋은 것을 주실 것입니다.
두드리는 간절함
작품의 원래 제목은 "들판에서의 한 아이의 장례식"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시장에 나왔다면 구입해서 집에 걸어놓고 싶어하는 사람은 드물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 제목은 "감자 수확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신앙인들이 흔히 드리는, 목적이 있는 기도의 제목이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에게 알려진 제목은 '해질 무렵 들려오는 교회의 저녁 종소리'를 뜻하는 "만종(晩鐘, L'Angélus)"입니다. 시공간이 교차되는 순간과 인류 보편의 경건을 잘 담아냈습니다. 어떤 기도이든, 간절함으로 두드리는 이에게 하늘문은 열립니다. 우리는 하늘과 땅 사이에 서서,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손을 모아 기도로 숨쉬며 살아가는 존재임을 이 고요한 작품 앞에서 다시 되새겨 봅니다.
말씀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함께 묵상합시다.
*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잠시 멈춰 손 모을 수 있는 여백을 만들어 가고 있는가?
* 나는 어떤 간절함을 품고 하늘문을 두드리고 있는가?
손 모아 기도합시다.
주님, 일상의 고단함 속에서도 당신을 향한 마음이 더 깊어 가게 하소서. 보이는 경건함 뒤에 숨은 연약함까지 모두 품어 주시고, 간절히 두드리는 이 손을 외면치 마소서. 아멘.
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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