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용환의 예술묵상] 고르넬리스의 "나아만의 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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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만의 정화, c. 1524, 고르넬리스 엔헤브레흐츠
빈 미술사 박물관(빈, 오스트리아)
작품을 감상하다 보면 당연한 듯, 무심결에 그러려니 하는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런데 적어도 오늘의 주인공, 그림 중심의 나아만에게 물 속에 들어가는 경험은 그저 당연한 순간은 아닙니다. 평생을 입어온 갑옷을 벗어야 할 만큼 절박합니다. 부하들 앞에서 체면과 위엄을 모두 내려 놓습니다. 다른 곳이 아닌 이 곳 요단 강에서, 마치 태어난 순간처럼 알몸으로 입수해야 한다면, 그렇게 예언자의 권위에 따릅니다.
나아만의 옆에는 엘리사가 서 있습니다. 예수님이 주로 입고 계시던 적청의 배색으로 영적 권위를 드러냈습니다. 시리아 군대장관 나아만이 그 영적 권위 앞에 순종함으로 깨끗이 정화됩니다. 물 자체는 흙탕물일 뿐입니다. 옷을 벗고, 수치를 내려 놓고, 한 가지만 생각하며, 일곱번을 입수한 그 순종에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셨습니다. 순종의 신비요, 겸손의 용기입니다.
오늘 작품은 3단 입체 작품입니다. 과장하자면, 홀로그램처럼 볼 수도 있습니다. 나아만의 수줍은 몸짓 뒤편 요단강 중간쯤으로 시선을 옮겨봅시다. 전경에서 중경으로의 이동입니다. 나아만이 감사한 마음을 선물로 표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손을 들어 단호히 거절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과응보가 아닙니다. 오직 믿음과 순종의 결과입니다. 나아만은 선물을 받지 않는 엘리사 앞에서 세상 논리와 달리 순수함 자체인 하나님의 질서에 놀랍니다. 엘리사는 초연함과 단호함으로 은혜의 무상성을 지켜냅니다. 은혜는 거래가 아닌 순종입니다.
전경의 치유 장면, 중경의 선물 거절 장면을 감상하셨다면, 이제 마지막 배경으로 이동할 시간입니다. 치유의 기쁨과 선물 거절의 감동으로 벅찬 나아만 일행을 뒤쫓는 쥐같은 인간이 있습니다. 엘리사의 종 게하시가 몰래 나아만을 따라갑니다. 선물을 요구합니다. 신물나는 정치판을 옮겨놓은 것 같습니다. 은혜의 자리에도 탐욕이 스며들고, 치유의 강물에도 고쳐지지 않는 태생적 연약함이 남아 있습니다. 어쩌면 이 배경이 우리에게 더 익숙할지 모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 세속적 관성과 탐욕의 중력을 이겨내는 여정 자체가 치유입니다. 뜯어도 뜯어도 계속 나오는 고구마 줄기같은 영혼의 쓴 뿌리와 연약한 육신의 고침의 여정, 그 첫 출발은 순종입니다.
말씀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함께 묵상합시다.
● 나아만처럼 내 자존심과 체면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해 본 적이 있는지 돌아봅니다.
●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 혹시 내 마음 한편에 보상이나 대가를 기대하거나, 은혜를 내 힘으로 얻으려 했던 적은 없었는지 돌아봅니다.
손 모아 기도합시다.
주님, 게하시의 마음을 경계하게 하시고
엘리사의 단호함을 배우게 하소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 앞에
겸손히 머물게 하소서.
아멘.
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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