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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환의 예술묵상] 류블료프의 "삼위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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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위일체, 1411, 안드레이 류블료프

트로이체(trinity) 세르기예프 대수도원(모스크바주, 러시아)



작품 앞에 섭니다. 고요합니다. 세 천사가 둘러 앉은 식탁, 그 위에 놓인 작은 잔 하나, 오래전 선명했을, 지금은 빛 바랜 루블료프의 붓끝은 말 없이 나를 이끕니다. 


그림을 오래 바라봅니다. 세 인물이 서로를 향해 기울인 어깨 너머로, 나는 어느새 그 식탁에 초대받은 손님이 됩니다. 세 얼굴은 닮아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셋이면서 하나입니다. 서로를 향해 스며드는 눈길과 기울어진 몸짓은 침묵 속에서 흐르는 사랑의 대화입니다. 


사람은 셋인데, 식탁 위 잔은 하나입니다. 상차림은 작고 소박합니다. 그러나 그 안에 담긴 것, 세상을 품는 사랑은 원대합니다. 내 안의 허기와 목마름이 이 작고 귀한 잔 앞에서 녹아내립니다. 


아브라함의 집에 찾아온 세 천사의 모습입니다. 성서가 말하는 환대의 시작입니다. 상수리 나무는 약속입니다. 뜻밖의 만남의 약속, 십자가 구원의 약속입니다. 바위산은 교회가 올라야 할 여정입니다. 이 모든 상징을 넘어 이 그림은 나를 향해 조용히 속삭입니다. "이리 와서 앉으세요." 이 사랑의 원 안에, 어느새 나도 있습니다. 


민족과 민족이 전쟁으로, 형제와 형제가 살육으로, 폭력과 불안, 그리고 분노로 가득한 세상에서 류블료프가 꿈꿨던 세상은 무엇일까요? 공교롭게도 육 백년이 지난 지금, 그의 후손이자 형제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여전히 분열과 상처로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루블료프가 선보이고자 했던 작은 상차림, 화해와 일치, 자기 비움의 신비를 담은 식탁으로 오늘, 함께 나아갑시다. 성부, 성자, 성령의 상호 내주, 상호 침투의 끝없는 사랑의 원 안에 편안히 머물러 보십시오. 


말씀과 이미지를 상상하며 함께 묵상합시다. 


● 나는 오늘 누구와 사랑과 환대의 식탁을 나누고 싶은가요?

● 내 마음의 허기와 목마름을 조용히 내려놓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어디인가요?

● 우리 공동체 모두가 화해와 일치의 원을 이루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을 한 가지씩 다짐해 봅시다. 


손 모아 기도합시다. 

주님, 이 사랑의 식탁에 나도 앉게 하소서. 내 삶의 작은 잔이 당신의 무한한 사랑으로 채워지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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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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