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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용환의 예술묵상] 레핀의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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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sing of Jairus' Daughter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1871, 일리야 레핀

국립 러시아 미술관 (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빛이 저물어가는 방 안, 촛 불 세자루에 의지하기엔 너무 어둠이 깊습니다. 방 안의 불빛은 겨우겨우 소녀 위에 내려 앉았습니다. 레핀의 인생작, 제국 예술 아카데미 졸업작품이었던 이 작품의 세계는 먼저 세상을 떠난 여동생에 대한 회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상실에 대한 고백이자 그리움 그리고 소망이 담겼습니다. 


소녀의 머리맡에는 화환이 놓여져 있습니다. 단순히 꺾어서 던져 놓은 꽃다발이 아니라 장례용 화환입니다. 촛대에 켜진 불도 또한 망자의 영을 위로하기 위한 장례용입니다. 소녀는 이미 이 세상에서 떠났습니다. 깨진 거울, 인생의 파경입니다. 더 이상 손 쓸 도리가 없습니다.


그 곁에 푸른 옷을 입은 예수께서 서 계십니다. 소녀의 손을 가만히 쥐어주고 계십니다. 과장된 몸짓과 소리는 여기 설 곳이 없습니다. 보여주기 위한 소생의 세리모니가 아닌, 가만히 같이 있어 주십니다. 우는 자들과 함께 우는 것처럼, 죽은 자와 함께하고자 생명력 있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만히, 그저 가만히 계셔주십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어둠 저편에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야이로와 그의 아내, 그리고 제자들입니다.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담긴 얼굴입니다. 믿음과 두려움 사이 어딘가에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예수와 야이로 사이에 떨어져버린 율법서가 뒹굴고 있습니다. 관습법이 할 수 없는 일, 예수께서 하시러 오셨습니다. 율법만 알고 복음을 모르는 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기적, 예수님은 하십니다. 


야이로는 바로 그 율법을 대표하는 존재, 회당장입니다. 그러나 딸이 죽을 때 그는 직을 내려놓는 심정으로 예수 앞에 엎드렸습니다. 사랑이 이기고 절박함이 이깁니다. “예수께서 방에 들어가 소녀의 손을 잡으시자 그 아이는 곧 일어났다." (마태 9:25) 손을 잡는 일. 그것이 기적의 전부였습니다.


소생은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그 비밀은 무엇일까? 레핀은 예수님의 옷을 통해 그 신비를 드러냅니다. 짙은 어둠 가운데 예수를 비추고 있는 빛은 희미하기만 한 장례용 초 세 자루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예수 자체가 선명한 빛입니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모두가 절망한 그 순간, 빛은 가만히 자신의 일을 시작합니다. 


묵상을 돕는 질문


• 지금 내 삶에서 화환이 놓이고 촛불이 켜진 방, 즉 이미 끝났다고 여기는 자리가 있습니까. 그 자리에 예수께서 가만히 들어와 손을 쥐어주고 계실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아직 믿고 있습니까.

• 야이로는 직을 내려놓는 심정으로 엎드렸습니다. 내가 예수 앞에 나아가지 못하도록 붙잡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위입니까, 자존심입니까, 아니면 이미 늦었다는 체념입니까.


손 모아 기도합시다.


주님, 모든 것이 끝났다고 절망한 그 자리에서도 주님은 가만히 들어오시는 분임을 기억합니다. 율법도 관습도 체념도 내려놓고 그저 주님 앞에 엎드리오니, 제 손을 잡아 주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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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묵상 필자 소개:

노용환 목사는 한신대학교에서 기독교교육학(학부)과 실천신학(신대원)을 공부했다. 예배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정교회 이콘과 상징 해석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뉴욕신학교에서 종교교육학을, 블렌튼필 인스티튜트에서 상담학을 공부했고, 센트럴신학교 목회학박사과정을 통해 선교적 교회를 연구중이다.


2006년에 목사 안수를 받았고 2017년부터 한국기독교장로회와 미국그리스도연합교회(UCC) 이중 소속으로 로드아일랜드 제일한인교회를 섬기고 있다. 생명문화연구소에서 연구실장으로 일했고, JOYFUL COOP(신나는 협동조합) 발기인 대표로 서류미비 싱글맘 렌트 지원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미주 뉴스앤조이 기자로 활동하며, 선배기자들로부터 글쓰기를 배웠고, 실용적이지 않은 디자인의 가구나 오래된 그림처럼 무용(無用)하고 예쁜 것을 좋아한다. 또한 자전거와 캠핑 그리고 비치 라이프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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