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 제2부 4장 IV. 가나안에 기획된 “거룩한 나라”의 특성(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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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V. 가나안에 기획된 “거룩한 나라”의 특성
여호수아서와 사사기가 이스라엘을 ‘12지파로 구성된 느슨한 연맹체’로 묘사하고 있지만, 브루그만은 이 공동체를 압제적 제국과 권위적 왕권에 대한 대안 사회(alternative community)로 재해석하였다. 그에게 지파 연맹체는 비역사적 상상이 아닌 오히려 신학적ㆍ사회학적 언약 공동체를 구성하려는 서사적 관계망의 제시로 여겨졌다. [브루그만의 논의는 다음을 참고하라. Brueggemann, “Trajectories in Old Testament Literature and the Sociology of Ancient Israel,” in A Social Reading of the Old Testament: Prophetic Approaches to Israel’s Communal Life (Minneapolis: Fortress, 1994), 13-42.] 여호수아 시대와 사사시대를 관통하는 거룩한 나라의 비전은 어떠한 사회ㆍ정치적 특성을 가진 공동체로 나타나야 하는가? 대안 사회의 구조는 어떠한 신정정치의 특징들을 가져야 하는가? 언약신학자들에게 정복에 이은 사사시대의 사회는 율법을 기반으로 한 신정 공동체였으며, 정치신학자 다니엘 엘라자르는 이 사사시대를 “신정적 지파 연맹체”(theocratic tribal confederacy)로 보았다. 엘라자르에 의하면, 사사시대의 이스라엘은 지파별로 자신의 토지에 기반을 둔 “연방제적 지파 연맹”(federal amphictyony)의 모습을 가진 공동체로 규정되었다. 지파를 대표하는 사사나 장로나 제사장과 레위인은 연맹의 실질적 운영을 담당하는 지방 분권적 권위를 가진 지도자군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ㆍ정치적 구조는 어떻게 작동되어야 하는가? 율법적 규정은 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수행되어야 하는가? 가나안에 실현되어야 할 거룩한 나라의 비전은 거룩한 땅, 거룩한 시간과 그 시공간에 살아가는 거룩한 인간에 의하여 특징지어진다.
1. 거룩한 공간: 신정정치의 땅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로 가지게 된 가장 주목할 만한 특징은 백성이 자기의 공간, 의식주의 기반이 되는 땅을 가지게 된 것이다. 거룩한 나라는 하나님이 부여하신 거룩한 공간의 확보로 시작되었다. 12지파는 정복을 통하여 크고 작은 공간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의 기업이 되는 토지를 통해서 농업과 목축을 시작하였다. 그들의 이상은 모세 이후 이스라엘의 전 역사 속에서 선지자들이 외친 것처럼 “자기 포도나무와 자기의 무화과나무 밑에서 안전하게 거주하는”(신 8:7-8; 미 4:4; 슥 3:10) 생활이었다. [다음의 본문을 참고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신 8:7-8);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라(미 4:4);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너희가 각각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로 서로 초대하리라 하셨느니라(슥 3:10)]
하나님의 전적인 도움으로 해방을 경험한 이스라엘은 이제 토지의 분배를 통해 자영농으로 변화되었다. 토지의 소유는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 500년 전에 약속하신 예언의 성취로서의 땅의 획득이요, 모세와 여호수아의 리더십을 통하여 하나님이 선물로서 주신 것이다. 이제 지파와 가족 공동체로 구성된 자유민은 경작하여야 할 기업을 가진 자영농이며 목축업자가 되었다. 크리스토퍼 라이트(Christopher Wright)가 주장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을 섬기며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되었다. 이들은 신정 공동체로서의 사회적 측면을 가질 뿐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신학적 측면 그리고 땅을 경작하며 사는 경제적 측면을 가진 삶을 살아야 했다. 라이트는 그러므로 하나님, 땅 그리고 백성이라는 삼중 관계망이라는 윤리적 구도 속에서 이스라엘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구약 윤리의 중심이 되는 3가지 기본 개념에 대하여 다음을 참고하라. Christopher J.H. Wright, Old Testament Ethics for the People of God (Listle, IL: IVP Academic, 2004).]
거룩한 백성으로서 이스라엘은 거룩한 공간인 땅을 가진다. 공간을 가지는 의미에 대하여 노만 하벨(Norman Habel)은 『땅의 신학』을 통해서 6가지의 토지의 복합적 이념을 주장한다. 다중적 의미의 땅을 가지는 것을 하벨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로 땅은 왕의 땅이라는 “왕토 이념”(a royal ideology)이 있는데 이는 솔로몬의 왕권에 의하여 왕의 권력과 부요함을 드러내는 열왕기상 3-11장과 시편 2, 72편에 의거한 토지이념이다. [Norman C. Habel, The Land is Mine: Six Biblical Land Ideologies (Minneapolis: Fortress, 1995), 정진원 역, 『땅의 신학: 땅에 관한 여섯 가지 이념』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1), 29-47.]
둘째로는 신정적 이념(theocratic ideology)에 의한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땅의 개념인데,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서 언약 안에서 살아가는 백성에게 주시는 땅의 개념이다. 이것은 신명기(신 4-11장, 12-26장)에서 주로 나타나는데, 땅의 부여는 언약이라는 조건 속에서 기적적으로 획득, 분배되지만, 언약이 무너지면 박탈당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로서의 땅이다. [Norman Habel, The Land is Mine, 『땅의 신학』, 53-66, 72-73.]
셋째로 땅은 가족의 기업으로서의 땅인데, 이 땅은 현실 속에서 실제로 부여받은 땅이다. 하벨은 이를 가족의 토지이념(an ancestral household ideology)으로 설명하는데, 12지파의 땅의 분배에서 각 지파는 여호수아의 지도력 아래 제비 뽑고, 각 지파에 분배되나, 이는 실상은 전투를 통하여 획득하였다. 가족은 이 땅의 소유자가 되었으며, 그것은 기업이 되어 의식주의 기초를 이루고, 후손에게 상속되었다. [Habel, The Land is Mine, 『땅의 신학』, 74-87.]
넷째로 선지자의 이념(a prophetic ideology) 속에 드러나는 땅의 개념인데, 이는 예레미야서에서 “여호와 자신의 기업”이라는 사실로 반복하여 나타난다. 그러나 현실에서 여호와가 소유한 땅은 “더렵혀지고”(렘 2:7), 영적 음란함으로 “모독되며”(렘 3:1-10), 사회적 타락으로 “가난한 사람들의 피”가 묻는다(렘2:34). [Habel, The Land is Mine, 『땅의 신학』, 98-109.]
다섯째로 농토이념(an agrarian ideology)에 의한 땅은 레위기 25-27장에 나타나는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반복적으로 땅의 이용을 중단시키는 ‘땅의 안식’이 있는 땅이다. 여기서 사람의 안식만이 아니라 땅의 안식을 요청하는 이유는 땅의 주인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고, 땅의 사용, 임차, 소유 이용 조건이 안식년과 희년의 통제하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공간인 땅은 안식이 있는 공간이다. [Habel, The Land is Mine, 『땅의 신학』, 124-144.]
여섯 번째 마지막으로 땅은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의 관점에서 보면 이주의 땅이다. 이주이념(an immigrant ideology)의 관점에서 보는 땅은 하나님이 이민자들에게 주시며, 모든 땅의 주민은 나그네로서 땅의 체류자, 우거자(寓居者, sojourner)이다. 이들은 주인이신 하나님을 섬기며 잠시 나그네로 사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나그네와 행인을 관대함으로 돌보며 이웃을 겸손하게 섬기며 공존해야 한다. [Habel, The Land is Mine, 『땅의 신학』, 145-166.]
노만 하벨의 6가지 땅의 구별은 하나님이 부여하시는 거룩한 땅이 가진 복합적인 의미를 제시한다. 하벨의 6가지 구별 중에서 사사시대에 적용되지 않는 땅의 개념은 “왕의 땅”이라는 이념이다. 그 이유는 아직 왕권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왕토 이념은 다윗이나 솔로몬과 같은 강력한 주권자가 획득하여 분배하는, 왕정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땅이다. 토지는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받은 예언대로 이민자에게 주어진 공간이요, 하나님의 언약을 지킴으로 신정정치가 이루어지는 공간이요, 가족의 분깃을 가진 자영농으로 구성된 농민의 공간이요, 안식년과 희년의 해방과 자유가 있는 공간이요,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우상을 배제하여야 하는 여호와 자신이 주신 기업을 의미하였다. 결국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공간”으로서 이주민으로서의 겸손함, 나그네와 가난한 사람과 나누고 공존함으로 풍요한 땅이 되어야 했으며, 자기의 땅을 가진 견고한 자유인이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전하게 거주하는 평화의 나라를 이룰 공간적 배경이 되어야 했다. 따라서 거룩한 공간으로서의 가나안 땅은 이방인의 우상숭배와 패역한 윤리를 거부함으로 선지자의 비평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가 되어야 했으며, 결국 신정 사회(theocratic community)가 이루어지는 탁월한 나라의 이상을 이루는 공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