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 제2부 4장 III. 가나안에 기획된 거룩한 나라의 구조(3) > 신학과 설교 | KCMUSA

[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 제2부 4장 III. 가나안에 기획된 거룩한 나라의 구조(3) > 신학과 설교

본문 바로가기

신학과 설교

홈 > 목회 > 신학과 설교

[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 제2부 4장 III. 가나안에 기획된 거룩한 나라의 구조(3)

페이지 정보

작성자 KCMUSA| 작성일2026-07-13 | 조회조회수 : 19회

본문

3. 왕권 체제에 대항하는 사사시대 대안 공동체 


가나안에서 하나님이 기획하신 언약 공동체는 이집트의 파라오와 가나안의 억압적인 왕들의 통치 형태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자유로운 사사시대의 사회체제가 혼돈이나 무정부주의적 사회는 아니었다. 만인의 만인을 향한 투쟁상태나 절대 군주의 억압적 통치도 아닌,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 백성인 자유민의 공동체를 이루는 공동체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했을까?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자 제사장 나라로서의 유대 사회는 정치ㆍ사회학적 지평을 가진 민족 공동체가 아닐 수 없었다. 성경을 사회ㆍ역사적 배경을 가진 신앙적 문서로 보는 학자들에 의하면, 사사시대는 종종 가나안에 세워진 하나의 사회적 공동체로 여겨졌을 것이다. 이러한 사회적 공동체에 대한 구체화된 모습으로 여호수아 시대 이후 12지파의 모습을 묘사한 노트(Noth)의 “근린 연맹”(amphictyony)의 가설은 이후에 이어지는 다양한 후속 연구를 낳았다. 그러나 사사시대의 “근린 연맹체를 이루었다는 노트의 가설이 가진 역사주의는 결코 역사와 부합하지 않는다는 많은 비판에 봉착하였다. 이러한 비판 가운데, 노만 고트월드(Norman Gottwalt)는 사회학적인 접근 방식을 따라 성경 사사기의 본문에 숨겨진, 혹은 본문의 배후에 감추어진 계급적 갈등을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Walter Brueggemann,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Testimony, Dispute, Advocacy, 류호준 류호영 역, 『구약신학』 (서울: CLC, 2003), 96-99.]

 

고트월드는 사사시대가 여호수아의 전쟁에 뒤이어 단기간에 형성된 사회라고 보지 않았다. 그의 “사회혁명” 모델에 의한 재해석은 가나안 정착이 군사적 공격에 의한 단기간의 침입(invasion)도 아니었고, 장기간에 걸친 침투(infiltration)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계급적인 면에서 하층민에 속하는 히브리인 농민과 목축업 종사자들이 가나안의 압제로부터 소외된 원주민과 결합하여 당시의 도시 국가를 붕괴시키려는 일종의 “봉기”(revolt)라고 해석하였다. 이러한 혁명적 관점은 과도한 세금에 시달리던 농민들이 도시의 부유한 특권 엘리트층을 타도하려는 폭력적인 계급투쟁의 하나였으며, 이를 통한 자유의 확보 과정으로 해석하였다. [이에 대한 고트월드의 마르크스주의적 논의는 다음을 참고하라. Gottwald, The Tribes of Yahweh: A sociology of the religion of liberated Israel, 1250-1050 B.C.E (Maryknoll: Orbis, 1979); Brueggemann, 『구약신학』, 98-99. ]


고트월드의 다분히 사회주의적 접근방법은 왕정이 들어서기 전 “분권화된 이스라엘의 정치”가 펼쳐진 지파 공동체의 내부 사회ㆍ경제적 환경을 설명해 주는 강점이 있을 수 있다. [고트월드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세 가지 중요한 시대로 나누어진다고 주장하였다. 그 처음은 왕정 이전의 시대, 둘째 기간은 독립국가로서의 구조를 가진 왕정 시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제국의 치하에서 국가적 구조는 상실했으나 식민 지배를 받는 민족으로서의 존립하는 기간이다. 이는 고트월드의 기본적인 시대구분으로 그의 책 The Politics of Ancient Israel의 중심을 차지하는 논의이다. 다음을 참고하라. Gottwald, The Politics of Ancient Israel (Louisville: John Knox Press, 2001), 윤성덕 역, 『고대 근동과 이스라엘 정치』 (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8).]

 

그러나 그의 해석은 기록된 사사시대에 해당하는 성경의 본문을 성실하게 주해하는 것으로부터 결국 떠나게 되었다. 그는 본문을 권력 갈등의 시각으로 보았으며, 이데올로기적 영향력의 소산으로 왜곡된 역사라고 보았다. 결국 사회경제적 전제를 통한 해석으로 성경 본문이 제시하는 가르침을 경시, 약화, 왜곡하고 사회경제적 해석 이외의 다른 해석학을 배제하는 환원론에 빠지게 되었다. [Brueggemann, 『구약신학』, 102-103, 112-113.]

 

사사시대의 정치구조를 사회학적 관점에서 살펴 온 브루그만은 마침내 그의 초기 저술 중의 하나인 『구약의 사회적 독해』(A Social reading of the Old Testament)와 『예언자적 상상력』(The Prophetic Imagination)을 통하여 사사시대와 왕정 시대를 관통하는 두 가지 시각을 제공하였다. 그는 성경이 보여주는 수천 년 전의 낯선 세계가 박물관에 박제된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 현대 사회의 “안일함을 깨우는 종소리”라고 역설했다. 즉, 구약성경은 우리가 처한 제국적 현실을 전복시키고 새로운 생명의 공동체를 일구는 가장 강력한 “사회 비판서”라는 것이다. 브루그만의 사회·정치 비평은 성경 속에 흐르는 두 줄기 강물, 곧 “모세의 궤적”과 “다윗의 궤적”이 충돌하고 상호작용하는 성경의 기록에 주목하고, 그것을 생생한 상상력으로 재생시켜야 한다고 보았다. 모세라는 선지자의 궤적을 상술하는 브루그만은 전자가 이집트 파라오와 솔로몬의 제국주의적 왕권 신학에 대항하는 언약 공동체의 사회ㆍ정치적 대안이라고 간주한다. [Brueggemann, The Prophetic Imagination, 김기철 역, 『예언자적 상상력』 (서울: 복 있는 사람, 2009), 49-76.] 

 

여기서 “모세의 궤적”은 이집트 파라오의 신적 권세와 가나안 도시 국가의 억압적 왕권에 대항하여 농민의 자유와 해방을 추구하는 ‘선지자적 가르침’을 의미한다. 반면 “다윗의 궤적”은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의 안정과 질서를 수호하려는 ‘왕권 및 성전 중심의 비전’을 뜻한다. 브루그만은 모세를 통해서 주어진 자유와 해방의 패러다임은 다윗 시대에 이루어진 안정과 질서의 패러다임과 상보적 관계를 이룬다고 본다. [Brueggemann, A Social Reading of the Old Testament: Prophetic Approaches to Israel’s Communal Life, (Minneapolis: Fortress, 1994), 13-42.] ‘언약 사상’은 바로 이 두 궤적의 종합이라 할 수 있는데, 사사시대에는 제국주의적 위계질서를 전복시키는 패러다임인 동시에, 새로운 공동체를 통한 자유와 평등을 여는 사회적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즉, 기존 질서에 대한 저항은 자비로운 대안 공동체 건설이라는 목표와 맞물려 있다. 그러나 아직 12지파가 토지를 중심으로 비교적 평등하게 분화되어 공존하는 이 시대에 아직 왕권을 통한 중앙집권적 정치체제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Gottwald, The Politics of Ancient Israel, 106-110.] 사사시대에는 아직 예언자적 상상력을 통한 분권화된 대안 사회의 서사만이 존재하며 이스라엘의 기업의 향유, 그 기업 안에서의 자유와 평등이 유지되어야만 했다. 


다만 그 이상적 신정 사회는 다음과 같은 사회적 특성을 가진 서사를 제공하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우선적인 특징은 가나안 땅에서 이루는 나라에서 “하나님이 왕”이 되시고, 히브리 민족은 “백성이 되는 것”이다(출 6:7; 레 26:12; 신 26:17-18, 신 29:13). 둘째로 하나님의 실제적 통치는 언약이라는 패러다임의 실천을 통해서 지속될 수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특성은 언약 공동체라 할 수 있다. 셋째로 사사시대의 후기에 이르러 성전 중심의 삶이 강력하게 지속되지는 못하였으나,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언약 공동체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성막과 법궤를 중심으로 하여 정기적으로 종교적 절기와 축제를 통한 영적 정체성이 지속되어야 했다. 넷째로 정치적 임무를 담당하는 각 지파의 우두머리와 성읍의 장로, 그리고 제사장의 영적인 통치가 히브리 사회의 시민적 정체성을 유지하게 만들었다. 다섯째, 레위인이 거주하는 48개의 성읍과 6개의 도피성을 마련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의 영적인 지도를 받는 거룩한 백성의 공동체 혹은 공영체(commonwealth)를 이루어야만 했다. 여섯째로 중앙 행정부와 상비군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카리스마를 덧입은 사사와 위기의 상황에 수 개의 지파로 구성된 민병대가 군사적 책임을 감당하여야 했다. 일곱째로 세금도 없고 군역도 부담하지 않는 자유로운 공동체는 하나님의 율법에 충성하는 백성이 이루는 평등한 지파 연맹체라는 대안 사회였다. 요컨대 사사시대에 들어 가나안 땅에서의 백성들은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비교적 평등하고 자유롭게 생활하는 하나님을 왕으로 삼은 자영농으로 구성된 백성의 공동체를 이루려는 것이었다. <계속> 



61538455dc1fe76f88292c54276edb09_1719269194_7082.jpg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목사, KCMUSA 이사장) 

KCMUSA,680 Wilshire Pl. #401, Los Angeles,CA 90005
Tel. 213.365.9188 E-mail: kcmusa@kcmusa.org
Copyright ⓒ 2003-2020 KCMUSA.or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