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 제2부 4장 II. 가나안 정복 전쟁은 거룩한 전쟁인가(4)
페이지 정보
본문
4. 거룩한 전쟁과 헤렘의 윤리적 문제
2022년 2월 24일 러우전쟁이 시작된 이래 여러 해가 지났다. 양국이 수많은 생명을 잃었고, 엄청난 물자를 소모했다. 2026년 초, 추산 사상자는 러시아 약 110만 명 그리고 우크라이나 약 40만 명에 이른다. 동방정교의 나라들이 이렇게 싸우고 있으니, 지난 16세기 구교, 성공회, 신교의 기독교권에서 생사를 걸고 싸운 살육을 기억하게 된다. 종족에 대한 대규모 진멸, “헤렘”(hērem)은 어제의 이야기가 아니다. 20세기 독일 제3제국에서 자행된 홀로코스트로 600만의 유대인이 죽었고, 18–19세기 미국에서 벌어진 인디언 대학살은 적게 잡아도 800만이다. 그리고 구교를 중심으로 한 스페인 제국이 15–16세기 중남미에서 저지른 인종청소와 식민 통치는 소위 서구 기독교권이 중남미에서 행한 종족 살해(genocide)로 평가된다. 이러한 사건들은 구약의 ‘거룩한 전쟁’의 일환으로 행해진 헤렘, 곧 진멸의 인종청소를 연상시킨다.
헤렘에 관한 율법의 명령은 출애굽 이후 40년이 지나 1세대가 광야에서 죽고, 2세대가 모압 평지에 이른 때이다. 그들이 모세를 통해 두 번째 율법인 신명기를 받으며 ‘거룩한 전쟁’에 대하여 들었다. 이때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을 쳐서 정복하되 그들을 “진멸하라”고 명령한다. 그들과 조약을 맺거나 혼인하지 말고, 그들의 제단과 주상을 파괴하며 우상을 불사르라고 명한다(신 7:1–5). 여기서 “진멸하다”라는 표현에 히브리어 하람(hāram)이라는 동사가 사용되었고(신 7:2), 명사형 헤렘(hērem)도 등장한다(신 7:26). 이 단어들은 “바치다, 봉헌하다, 철저히 파괴하다, 완전히 멸절하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그렇다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헷, 기르가스,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족속처럼 이스라엘보다 강대한 일곱 민족을 종족적으로 제거하라고 명령하신 것일까? 이 명령은 오랫동안 하나님의 폭력성과 잔인함을 보이는 증거로 비판받아 왔다.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이웃 사랑과 원수 사랑의 가르침과 대조된다는 지적과 함께 구약의 하나님이 신약의 그리스도와 대조적인 존재로 제시되기도 했다. 또한 유대-기독교가 다신교에 비해 종교적 관용을 상실했다는 비난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고대의 사회 속으로 들어가면, 헤렘과 같은 행위는 전쟁의 제의적 성격을 말해주는 공통된 신정정치 문화권의 관행이었음을 살펴볼 수 있다. 1868년에 발견된 모압의 석비에는 기원전 8세기경 모압 왕 메사가 “이스라엘 사람 7,000명을 죽여 아쉬타르-그모스 신에게 봉헌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Michael Walzer, In God’s Shadow, 35.] 이는 성경의 헤렘 명령이 당시 고대 근동의 보편적인 종교전쟁이 낳은 결과물과 주변의 나라와 큰 다름이 없다고 해석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고대의 전쟁은 헤렘을 동반하는 멸절과 제한전이 함께 전술로 사용되었다. 성경의 역사에 있어서도 정복과 정착의 초기에는 헤렘이 적지 않게 요청되고 있고 또 종종 그렇게 시행되었다. 여리고의 전쟁은 헤렘을 요청하는 전투였다. 여리고 전투에서 아간이 헤렘에 참여하지 않고 물건을 남긴 것으로 하나님의 진노와 재앙이 거꾸로 이스라엘 공동체에 미치는 경우도 있었다. [Walzer, In God’s Shadow, 37-40.] 헤렘을 동반하는 전쟁은 종교적 예식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고, 진멸의 명령은 거룩함과 관련된 것으로 특별히 강조되었다.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의 성품은 폭력적이라는 면에서 이방 종교의 신들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가?
헤렘에 대한 다양한 해석에도 불구하고, 성경 자체가 헤렘을 명령하는 이유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리라 생각된다. 헤렘을 통한 진멸의 첫째 이유는 가나안 주민들의 악함 때문이며, 이는 일종의 문명에 대한 심판의 형태라고 보아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폭력적인 것이 아니라 폭력적인 문화를 징계하는 방법이라는 차원에서 특별한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서 보듯, 그 땅에는 폭력과 성적 타락이 만연했다. 소돔의 사람들은 심판을 위하여 온 천사들을 동성애의 상대로 내놓으라고 강요한다. 신명기는 “이 민족들의 악함으로 말미암아 쫓아낸다”고 밝힘으로(신 9:5), 하나님의 성품이 폭력적이 아니라 폭력을 발본색원하려는 거룩함에 대한 요청이다. 악에 대한 철저한 심판으로 거룩한 전쟁을 요청되는 것이다.
둘째, 전쟁과 진멸의 헤렘은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의 건립을 위한 신학적 필요조건으로 요청되었다. 언약 공동체는 가나안 문화와 혼합될 수 없었으며, 강력한 신정적 순수성이 요구되었다. 하나님은 악한 문화를 토해내시는 하나님이며, 거룩한 삶의 건설은 이전의 가나안 땅의 사람들이 가진 문화와 섞이지 않고 새로운 율법적 사랑과 공의의 문화를 이식시키려는 의도를 관철하려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타락하여 율법에서 떠나고 거룩함을 상실하게 될 때, 그들도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는 비극을 겪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선민에 대한 편애를 보이시는 편파적인 하나님이 아니다.
셋째, 헤렘은 정복 초기의 제한된 시기에만 적용되었다. 여호수아 시대와 사사시대를 지나며 이러한 헤렘의 전쟁 규정은 점차 사라졌다. 기원전 8세기 아모스 시대에 이르러 아모스서에서는 하나님의 다른 법, 인권을 존중히 여기는 “제한전”을 위한 통찰이 법적으로 소개되고 있다. 아모스서에서는 열국을 심판하는 이유가 전쟁에서 무자비한 헤렘의 행태와 방불한 비인도적인 전쟁 행위 때문이었음을 말하고 있다. [Walzer, In God’s Shadow, 40-42.]
암 1: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다메섹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
1:6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가사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모든 사로잡은 자를 끌어 에돔에 넘겼음이라
1: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두로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그 형제의 계약을 기억하지 아니하고 모든 사로잡은 자를 에돔에 넘겼음이라
1:1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에돔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가 칼로 그의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항상 맹렬히 화를 내며 분을 끝없이 품었음이라
1:13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암몬 자손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자기 지경을 넓히고자 하여 길르앗의 아이 밴 여인의 배를 갈랐음이니라
2:1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모압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가 에돔 왕의 뼈를 불살라 재를 만들었음이라
넷째, 하나님은 거룩한 전쟁을 명령한 가나안 정착 이후, 전면적 섬멸전이 아닌 점진적이고 제한적인 전쟁을 명하셨다. 이러한 명령은 “급히 멸하지 말라”(신 7:22)는 말씀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이것은 초기부터 하나님의 특별한 전쟁에 대한 헤렘의 지시나 가르침이 없는 한, 인도주의적 전쟁의 법적 가르침이 함께 주어졌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마이클 월저는 제한전과 거룩한 전쟁의 원리들이 쉽지 않은 조합을 이루는 것이 정복 전쟁의 실제 상황이었으며, 후자가 전자에 더해지되, 전자를 소멸하거나 대치시키지 않았음을 주장한다. [Walzer, In God’s Shadow, 41-42.]
여호수아 시대에 형성된 지파 연맹체(tribal confederacy)는 거룩한 나라의 부분적 실현이다. 하나님이 원하신 이상 국가는 농민, 유목민 출신의 민병대를 가진 자유와 평등의 공동체였다. 수백 년의 사사시대 동안 이스라엘은 왕, 관리와 상비군이 없는 나라였다. 따라서 진멸과 파괴를 통한 봉헌으로서의 “헤렘”은 문자 그대로의 살육 명령이 아니라, 억압적 왕권과 타락한 문명에 대하여 치를 영적 전쟁으로 재해석되어야 한다. 유대 민족으로 구성된 대안적 사회 건설을 위하여 이전 문명은 폐기되어야 했다.
거룩한 나라 건설의 초기 시대에 여호수아의 전쟁, 드보라와 바락의 전쟁, 그리고 기드온의 전쟁은 거룩한 나라를 건설하고 유지하려는 노력의 일환이었다. 이러한 전쟁은 거룩한 전쟁의 범주를 상당 부분 만족시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거룩한 전쟁에서 하나님은 용사로서 참여하셨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보호자로 영광을 받으셨다. 사사기 5장은 드보라와 바락이 전승을 노래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영광의 노래이며, 하나님의 행사를 높이는 찬송이며, 원수와 대적의 멸망을 기원하는 기도이다. 이는 민족의 이기적 노래라기보다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새로운 정치, 곧 신정정치에 대한 찬송이다.
그러나 기드온이 전쟁에서 승리한 이후, 기드온은 영광을 오직 하나님께만 돌리지 않는다. 전쟁의 결과 강력한 명예를 가지게 된 기드온은 탈취한 금으로 에봇을 만들었고, 이를 이스라엘과 기드온이 음란하게 섬김으로 이후의 세대에게 올무가 되었다. 거룩한 전쟁을 마치고 기드온이 왕이 되지 않은 것은 기드온의 겸손한 선택이었으나, 그는 왕의 후궁(後宮, harem)에 해당하는 시설을 만들어 많은 아내를 두었고, 70명의 자식을 가지는 왕과 같은 호사스러운 생활을 했다. [목회와 신학 편집부 편, 『사사기ㆍ룻기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287-289]
기드온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다시 바알을 섬기는 우상숭배로 돌아가고, 야심 찬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은 스스로 왕으로 선포한다. 세겜 사람의 도움으로 자신의 이복형제 70인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된 아비벨렉은 자기를 배신한 세겜 사람을 불태워 죽이고, 데베스의 견고한 망대를 공격하다 맷돌에 맞아 죽게 된다. 하나님이 왕이시던 시대에 왕 같이 살았던 기드온은 이방의 문화를 철저하게 근절하지 못함으로 백성들의 영성을 흐렸고, 그의 아들로서 왕 노릇 하려던 아비멜렉은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다만 거룩한 전쟁의 한 부분이었던 헤렘은 이교적 문화를 철저하게 단절하려는 특별한 시대의 특별한 전쟁의 양태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전면적 진멸의 형태는 이스라엘 역사 초기 몇 번에 걸쳐 나타난 후, 제한전이라는 전쟁 양식으로 점차 바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