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 제2부 4장 II. 가나안 정복 전쟁은 거룩한 전쟁인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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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가나안 정복 전쟁은 거룩한 전쟁인가
아브라함 시대 이후로 이스라엘을 향해 약속된 땅, 가나안을 획득하는 일은 전쟁을 상정한다. 그 오랜 시대로부터 가나안은 비어있는 땅이 아니었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약속의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으며, 그곳에는 이미 정착하여 소유권을 주장하는 사람이 거주했다. 히브리인에게 주어질 이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했지만 이미 거기에는 가나안 여러 족속이 거주하고 있었고, 여호수아 장군과 이집트에서 나온 백성은 그 땅을 얻기 위해서 정복 전쟁을 피할 수 없었다. 이미 모세는 전쟁을 통해서 요단 동편의 땅을 취하였고,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는 요단 동편에서 정복된 땅을 분배받았다. 아홉 지파 반의 나머지 지파들은 이미 땅을 분배받은 두 지파 반과 힘을 합쳐서 요단강 서편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전쟁에 참여해야 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께서 전쟁을 명하시며 폭력이라는 수단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The Holy War)에 대한 윤리적 부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용사이신 하나님이 될 수 있는가는 외견상 윤리적 불일치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이 전쟁으로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족속을 진멸하는 것이 어떤 명분으로 용납될 수 있는지 논의하여야 한다.
1. ‘거룩한 전쟁’의 단초, 아말렉 전쟁과 아모리 전쟁
‘거룩한 전쟁’(Holy War), 혹은 성전(聖戰)의 공식적인 기원에 대하여 다양한 의견이 존재할 수 있다. 전쟁은 살육과 파괴를 동반하는 잔인한 행위이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님이 작정하시고 시행하셨다는 차원에서 구별된 전쟁, 곧 ‘거룩한 전쟁’을 거론하는 것은 여러 학자에게도 곤혹스러운 신학적 난제였다. 마이클 월저는 거룩한 전쟁이 정치와 종교가 분리된 현대를 사는 사람에게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참혹한 일이라고 말한다. [Michael Walzer, In God’s Shadow: Politics in the Hebrew Bible (New Haven: Yale Univ. Press, 2012) 34-35.]
그러한 난제에도 불구하고 출애굽 시대에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장자를 진멸한 사건이나, 홍해에서 이스라엘을 추격하는 이집트 군대를 수장시킨 사건은 기존의 문명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났음을 부인할 수 없다. 아울러 가나안 땅의 여리고 성과 아이 성을 함락시키는 행위에서, 하나님이 중립을 지키거나 방관적 자세를 보이셨다고 할 수 없다. 하나님은 완악한 이집트 왕과 군대를 심판하셨으며, 반대로 이스라엘 사람을 이집트에서 노예 상태로부터 해방시켰다. 그리고 하나님은 해방된 백성을 위하여 일하셨으며, 광야에서 언약 백성이 된 그들을 성실히 인도하였다. 가장 결정적인 하나님의 전쟁은 이집트의 마지막 공격을 저지하시고, 홍해를 건넌 사건이다. 이스라엘의 출애굽 역사 속에서, 여호와 하나님은 추격하는 이집트 군사를 유인하여 진멸하시고, 그들을 홍해에 빠뜨리심으로 “용사이신 하나님”(God the Warrior)으로서 등장하신다(출 15:3). 거룩한 전쟁에서 핵심적인 요소는 하나님이 거룩한 용사가 되신다는 사실이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출 14:13-14)
여호와는 용사시니 여호와는 그의 이름이시로다 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의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최고의 지휘관들이 홍해에 잠겼고 깊은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 속에 가라앉았도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권능으로 영광을 나타내시니이다 여호와여 주의 오른손이 원수를 부수나이다(출 15:3-6)
하나님께서 용사가 되셔서 이집트 군대와 싸운 홍해 사건은 초자연적인 기적을 통해서 출애굽을 이루시되, 광야로 피신하는 히브리인에 대한 이집트의 추격을 하나님이 친히 분쇄한 사건이다. 이때 하나님은 용사로 불리고, 분노하여 싸우시는 하나님으로 드러난다. 이는 분명한 신적 승리의 기록이며, 이로써 이스라엘은 하나님 안에서 모든 전쟁에 대한 승리의 가능성을 예상한다.
홍해의 기적을 ‘거룩한 전쟁’으로 명명하기는 어렵다. 인간의 참여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여호와께서는 직접 전쟁에 참여하셨고, 이스라엘은 탈출을 위한 홍해의 퇴각이 전부였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편에서 위대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으나, 일반적인 의미에서 사람이 참여하는 전쟁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홍해의 기적은 위대한 철수 작전이었고, 하나님 편에서만 전쟁일 뿐이다. ‘거룩한 전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단초(端初)는 르비딤에서 벌어진 아말렉과의 전투와 요단 동편에서 벌어진 아모리 족속의 두 왕,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Og)과의 전쟁을 들 수 있다(민 21:21-35; 신 2:26-3:11).
이 세 전쟁의 특성은 모두 전투에 능한 아말렉 족속, 그리고 아모리 족속의 두 왕 시혼과 옥이 먼저 전쟁을 시작했다는 점이다. 아말렉이나 아모리 족속을 맞이하여 싸운 히브리인은 오랫동안 군사훈련에서 배제된 노예 출신의 사람들로서 전투를 위한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노예 출신의 군대를 통하여 강력한 군사적 기반을 가진 민족을 격파하는 승리를 허락하신다.
출애굽의 역사에서 첫째 전투라고 할 수 있는 아말렉 족속과의 전투는 이집트에서 출발한 이후 45일이 되지 아니한 상황에서 발생하였다. [이재호, 『전쟁과 섭리: 성경과 함께 읽는 고대 중근동 전쟁사』 (서울: 두란노, 2016), 68-73.] 이재호 박사는 르비딤 전쟁이 출애굽 40일 이후 41일 만에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장기간 노예 생활을 한 군사훈련을 받지 못한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노략질에 익숙한 아말렉과 싸울 때, 여호수아의 용맹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쉽게 이길 수 없었다. 아말렉과의 전쟁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큰 도우심을 필요로 했다. 모세는 산에 올라가 아론과 훌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여호수아가 전쟁에서 승리하도록 돕는다. 이 전투는 기도를 통한 영적 전투와 여호수아의 실제적 전투가 공존했다(출 17:8-16). 이 전투에서 전장에 나가 직접 싸우는 장군은 여호수아이지만, 그 전쟁의 승패를 좌우하시는 분은 기도를 받으시고 승리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또한 하나님은 모세에게 명하여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하리라”(출 17:14), “여호와가 아멜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출 17:16)고 여호수아에게 전하도록 하신다. 여기서 성경의 기록은 이 거룩한 전쟁의 주관자가 누구인가를 독자에게 미리 알려준다.
아말렉 전쟁이 끝난 후 40년이 지나서 광야의 생활이 마쳐질 때, 이스라엘은 요단강 동편에서 서편으로 진입하기 위하여 에돔, 모압과 암몬 지역을 우회한다. 이들을 우회하여 행진할 때, 이미 하나님께서는 “헤스본 왕 시혼과 그의 땅을 네 손에 넘겼다”(신 2:24)고 모세에게 약속하였다. 그러나 모세는 시혼에게 평화로운 말로 이르기를 “나를 네 땅으로 통과하게 하라”(신 2:27)고 전한다. 하나님께서는 시혼 왕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 전쟁에 돌입하게 하셨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 승리를 주심으로 원주민을 진멸하고 땅과 가축을 소유로 삼도록 한다(신 2:34-36). 하나님은 바산 왕 옥과 그의 군대도 이스라엘에 넘겨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또한 바산 전 지역을 이스라엘의 소유로 돌리셨다(신 3:1-11). 바산의 왕과 거주민은 모두 진멸되었으며, 이스라엘은 그곳에 있는 모든 땅과 짐승을 소유로 삼게 되었다. 요단 동편의 이 두 전쟁은 하나님의 의도와 섭리에 따른 거룩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