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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 회심주간 288주년 기념] 요한 웨슬리의 발자취를 따라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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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재웅 목사| 작성일2026-05-14 | 조회조회수 : 10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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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 여성운동 


감리교의 영적인 힘과 통찰력이 있는 속회와 조 모임의 인도자들의 지도에 힘입어 크게 성장하였는데 그들이 대부분은 여성들이었습니다. 그 가운데 사라 크리스비, 도로시 다운즈, 그레이스 머레이는 기독교인의 모범적인 삶을 보여줌으로써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새 생활을 시작하도록 인도하였습니다. 


웨슬리는 여성이 설교할 수 있는지에 관해서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1787년에 그는 몇 명의 남성 설교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모든 감리교 설교자들이 따라야 했던 교리적 선포와 규율을 준수하는 한 남녀를 불문하고 설교할 수 있는 권한을 공식적으로 허락하였습니다. 그러나 1791년 그의 죽음 이후 여성 설교자를 반대하는 기운이 다시 감돌았습니다. 


1803년 맨체스터 연회에서 여성 설교자에 대한 반대가 다음과 같은 이유로 결정되었습니다. 1) 감리교인들의 거의 대다수가 반대한다, 2) 모든 설교 장소에 보낼 만큼 충분한 남성 설교자들이 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여성이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소명을 받은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그 여성은 반드시 여성들에게만 설교를 해야한다” 더군다나 설교하기를 원하는 여성은 미리 설교 전에 해당 지역의 감리사로부터 공식적인 허락을 받아야만 했습니다.(Minutes of Methodist Conference, 1803)(폴 칠코트는 그의 저서인 “She offered Them Christ: The Legacy of Women Preacher in Early Methodism”에서 감리교 운동의 초창기 여성의 역할에 대하여 자세히 다루고 있다)


감리교가 성장하면서 웨슬리는 평신도 전도자들을 자신의 조력자로 삼았습니다. 그들은 여러 공회를 하나의 구역으로 묶은 순회구역(Circuit)의 전임 순회 전도자가 되거나 아니면 자신의 거주 지역에서 여가를 이용해 자원 봉사하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연회의 기원- 첫 예배처소 브리스톨(Bristol New Room)


1744년부터 웨슬리는 설교자들과 매년 정기적으로 만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연회’의 기원이 되었습니다. 연회에서는 신학, 감리교 선교, 다음해 설교자 파송에 관한 회의를 하였습니다. 공회의 모임 장소로 고심하던 웨슬리는 1739년 초에 예배처소(Chapel)을 짓기 시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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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스톨에서 지어진 첫 번째 예배 초소는 ‘새 집’(New Room)이라고 부릅니다. 그 곳은 예배와 설교를 위한 장소일뿐 아니라 웨슬리가 브리스톨을 방문할 때 머물 수 있는 거처 공간도 있었습니다. 이 집은 현재 영국 감리교회가 관리하며 방문자들에게 관광지로 개방되어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1739년 웨슬리는 화운더리라고 알려진 런던에 있는 옛 무기 제조공장을 구입하여 개조하고 그 곳에 채플, 살림집, 출판시설을 갖추게 됩니다. 이 곳은 감리교인들의 사회봉사를 위한 여러 형태의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후에 감리교인들을 위한 채플들이 다른 도시와 마을에 설립되어 예배와 목회사역을 위한 중심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환자를 위한 진료소, 고아들을 위한 집, 가난한 자들을 위한 학교를 세웠습니다. <계속>


장재웅 목사(워싱턴 하늘비전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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