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 회심주간 288주년 기념] 요한 웨슬리의 발자취를 따라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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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외설교시작: 세계는 나의 교구이다
맨 처음 설교는 옥스퍼드 대학생들 앞에서 하였습니다. “확실한 믿음으로 완전한 구원을 받는다” 이것이 설교내용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도 학생들은 가슴을 움켜잡고 데굴데굴 구르며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뉴게이트의 감옥에서도 ‘거저 주시는 구원’이라는 제목으로 수많은 죄수 앞에서 설교하였습니다. 웨슬리가 크게 믿음의 구원을 외치자 여기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그의 말은 칼날처럼 사람들의 가슴에 박혀들고 많은 나무를 태우는 뜨거운 불길과 같았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희망을 잃었던 그들에게 말씀으로 희망을 되찾게 해주었고 의심에 가득찬 그들에게 확신을 갖게하고 종교가 한낮 차갑고 생명력 없던 일과에 불과했던 그들에게 경건심과 뜨거움을 체험하도록 도와주었기에 일반 대중들은 웨슬리의 복음전파를 매우 기쁘게 받아들였습니다.

감리교 센트럴 홀
이런 반면에 웨슬리의 설교가 회중들을 사로잡고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게 되자 핍박과 비방도 거세지게 되었습니다. 기존 교회로부터 요한 웨슬리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들도 생겨나게 된 것이었습니다. 요한 웨슬리의 일기장에 보면 그는 설교 도중에 계속 돌을 맞아 “세 번이나 쓰러졌다”고 기록하고 있고 60차례에 걸쳐 폭력을 당했다고 합니다.
1739년 4월 요한 웨슬리는 중요한 전기를 맞게 됩니다. 그의 친구인 조지 휫필드의 권유로 교회 건물밖에서 곧 브리스톨 야외에서 처음으로 옥외설교를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1739년 복잡한 브리스톨(Bristol) 도시 외곽에 위치한 킹스우드(Kingswood)라는 곳에서 광부들이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지친 몸을 안고 집으로 돌아가는 어느 늦은 오후였습니다.
혹독한 노동으로 하루의 일과를 마친 광부들의 모습은 무척이나 지쳐 있었습니다. 웨슬리는 처음으로 이 광부들에게 옥외 설교를 하였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리 지역에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사용하셨던 똑같은 성경 본문(눅4:18-19)으로 광부들에게 설교를 하였습니다.
그는 이 때의 경험을 이렇게 일지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후 4시에 나는 상식에서 조금 더 벗어난 일을 하기로 하였다. 나는 도시에 접하고 있는 약간 높은 언덕에 서서 약 삼천명의 청중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였다. 내가 선포한 성경 말씀은 다음과 같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일지, 1739년 4월 2일)

John Wesley’ statue in Methodist Central Hall
그의 설교는 설교가 아니라 그대로 불덩어리였습니다. 막혔던 화산이 터져오르듯이 그의 입에선 불덩어리가 뿜어나왔습니다. 처음 모인 사람들이 200명 정도밖에 안되었는데 5번째 설교할 때는 그곳에 1만명이 훨씬 넘었고 다음엔 1만 8천명이 몰려왔습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홍수를 이루었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서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복음적인 메시지를 선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말이나 마차를 타고 다니면서 교회, 가정, 장터, 탄광 입구, 그 외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복음을 메시지를 들고 나갔습니다.
이렇게 하여 그는 250,000마일이나 순회 전도를 하였습니다. 그는 영국에 있는 도시, 마을, 농폰들을 순회했을뿐 아니라 북쪽의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까지 규칙적으로 순회 전도를 다녔습니다.
그는 86세의 나이에도 자신을 핍박했던 아일랜드 콘웰에서 2만 5천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말년 일지라도 자신에게 남은 한순간 한순간을 쓸모없이 살아가지 않고자 촌음을 아껴서 복음 전파에 힘을 기울였습니다. 그가 쇠약하여 죽기 5일 전까지도 그는 32km 떨어진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할 정도였습니다.
50년 동안 말을 타고서 250,000마일 이상 말을 타고 다니면서 지구 10바퀴 이상되는 거리를 다니며 전도에 힘을 쏟았습니다. 그 틈에 2백권이 훨씬 넘는 책을 펴내었습니다. 오십이 넘은 나이에도 하루 평균 32km를 다니며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60년 동안 한 번도 걸러본 적이 없이 새벽 4시면 일어나 기도하고 설교하였고 동생과 만든 수많은 찬송가 중에 1,778년에는 좋은 것만 뽑아 525곡의 커다란 찬송가를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85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8주간 동안에 무려 80번의 설교를 한 정력가였습니다. 그는 평생 4만 번의 설교를 했습니다. <계속>
장재웅 목사(워싱턴 하늘비전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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