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 회심주간 288주년 기념] 요한 웨슬리의 발자취를 따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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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웨슬리의 어머니 수산나 A. 웨슬리는 비범한 여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의 자녀 양육은 직접 가정에서 조기 교육을 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의 독서는 광범위하였고 특히 종교와 신학에 관한 서적들을 섭렵하였으며 남편 목사의 출타 중에는 목사관에서 기도회를 직접 인도하였습니다. 수산나와 사무엘은 종교와 정치 문제에 있어서 서로 의견대립이 있을 때가 많았는데 때론 이 일로 인해서 목사관에 심각한 긴장감이 감돌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경제적인 궁핍과 연이은 출산과 아울러 계속된 어린 자녀들의 죽음이 또 다른 스트레스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올드 랙토리 1층에 있는 공부방 역할을 했던 식당
열 아홉 명의 자녀 중에서 요한 웨슬리를 포함하여 열 명만이 성인이 될 때까지 생존하였습니다. 자녀중 가장 맏이인 사무엘 2세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영국교회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일곱 명의 딸, 곧 에밀리아, 수산나, 메리, 메헤타벨, 앤, 마타와 케지의 삶은 아주 어려웠습니다. 프레데릭 E, 메이저는 그의 저서 『The Story of John Wesley’s Sisters or Seven Sisters in Search of Love』에서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여러 번 자신의 누이들이 감리교 운동에 보다 적극적이지 못하다고 실망을 표현하곤 했는데 가난과 가정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그들은 웨슬리의 감리교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한 웨슬리의 동생이었던 챨스 웨슬리(Charles Wesley)는 그의 목회 사역에 있어서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동역자였습니다. 챨스 또한 아버지와 두 형과 같은 길, 영국교회의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복음적인 신앙을 위해 자신을 헌신하였으며 상당한 시적 재능을 발휘하여 감리교 역사에 빛나는 위대한 찬송가 작사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6,000곡 이상의 찬송시를 기록하였고 그의 찬송시는 다른 교단에서 발행하는 찬송가집에도 많이 수록될 정도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잘 알려진 찬송으로 ‘천사 찬송하기를(새찬송, 통일 126장)’ ‘만 입이 내게 있으면(새찬송, 통일 23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새찬송 15장 통일55장)’입니다.
엡워스 목사관에서의 삶은 요한 웨슬리에게 귀한 신앙의 터를 닦아주고 오랜 추억을 남겨 주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성경과 영국교회에서 사용하는 기도서에 대한 사랑을 배웠습니다. 부모님의 영향을 받으면서 그는 학문과 교회의 가르침, 기독교인으로서 필요한 훈련, 또한 선교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이 모두를 귀중히 여겼으며 목회 말년에 이르서는 엡워스에서 경험했었던 수많은 사건들을 회상하며 기뻐하였습니다. <계속>
장재웅 목사(워싱턴 하늘비전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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