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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슬리 회심주간 288주년 기념] 요한 웨슬리의 발자취를 따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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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재웅 목사| 작성일2026-05-02 | 조회조회수 : 8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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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상황 


18세기의 영국은 산업혁명의 초기 단계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중요한 변화를 겪었습니다. 길거리에는 술취함, 도박, 도적질, 자살등이 마치 전염병처럼 퍼지는 상황이었습니다. 인구의 약 10% 정도가 런던에 살았는데 대다수가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집에는 질병이 많았습니다. 불안정한 생활에 절망감과 좌절감에 빠진 사람들은 일종의 해소책으로 술, 폭력, 매춘, 도박에 빠져들었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당시 국교도 즉 지금의 성공회(Episcopal)와 청교도(Puritan) 사이에 심한 갈등이 있어 종교적인 상황도 복잡하고 혼란스러웠습니다. 백성들의 대부분은 형식적으로나마 국가에서 공인된 영국교회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수이긴 해도 영국교회가 아닌 카톨릭, 장로교, 회중교, 침례교, 퀘이커교에 속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영국교회는 정치적인 세계와 아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었습니다. 다른 교파에 속한 사람들은 17세기에 가톨릭과 청교도들에 대항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으로 인해 투표를 하거나 의회에 참석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영국교회는 기존체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목적이었음으로 사람들이 현재 처한 위치를 바꾸도록 돕기보다는 이러한 현 상황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들이는 쪽으로 인도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영국교회는 일반적으로 이러한 관점에서 나온 영적이고 도덕적인 지침을 주었습니다. 많은 목회자와 평신도의 선한 의도와 성실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백성들의 처지 개선을 위한 일에 영국교회는 공헌을 별로 하지 못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영국의 이러한 상황속에서 요한 웨슬리가 태어났습니다.


요한 웨슬리의 탄생과 성장


요한 웨슬리(John Wesley)는 1703년 6월 28일 영국의 동북쪽 링컨주의 엡워즈(Epworth)라는 조그마한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영국 국교회목사였던 사무엘 웨슬리와 모친 수산나 아네슬리 사이의 열 아홉명의 자녀가운데 열다섯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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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모는 청교도 목사의 자녀들이었으며 교회를 영국교회보다 더 넓은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조부와 부친이 목사였던 사무엘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 시절에 영국교회로 들어가 영국교회의 목사로 안수받은 후 링컨 주의 습지에 위치한 엡워스 교구를 맡아 거의 40년간을 봉직하였습니다. 


부친 사무엘 웨슬리는 성례를 귀하게 여기던 목사였습니다. 비록 위대한 학자나 시인은 아니었지만 사무엘은 욥기에 관한 주석을 출판하기도 하였습니다. 그의 저술의 대부분은 엡워스 목사관의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었고 그가 지은 찬송 중의 하나가 연합감리교 찬송가인(The United Methodist Hymnal)에 수록되어있습니다,(#293,“Behold the savior of Mankind”)


요한 웨슬리의 체격은 작았으나 그의 다갈색 머리와 정렬적인 성경은 많은 사람들을 매혹시켰습니다. 특별히 웨슬리가 태어나고 자라난 엡워즈 마을은 난폭한 주민들이 있어 사무엘 목사의 농작물에 불을 놓기도 하고 젖소를 찔러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요한 웨슬리가 5살이 된 해 겨울 즉 1709년 2월 9일 한 밤 중에 원인 모를 화재가 목사관에 발생하였을 때 이층 다락에서 자고 있었습니다. 그는 화재속에서 깨어나 조금도 당황하지 아니하고 창문 곁에 다가서서 “사람 살리세요”라고 외쳤으며 이를 본 불을 끄던 교회 청년들이 무등을 서서 그를 구출해내는 순간에 그 집이 쓰러졌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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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워스 목사관 화재 사건을 그린 그림. 생가 2층 계단 복도에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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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당시의 나무조각


웨슬리는 구사일생으로 구원받은 자기 생명을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조각”(스가랴 3:2)이라 비유하여 생각하고 자기 사진 밑에 이 성경구절을 쓰고 항상 “하나님이 왜 나를 죽음에서 구해주셨을까?”그 이유를 생각하며 평생 하나님의 일에 헌신하였다고 합니다. 감사하게도 이 화재로 인하여 집이 완전히 타 버렸는데도 가족중 아무도 다친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불타는 목사관에서 마지막으로 구출된 요한 웨슬리는 그 당시 나이가 다섯 살이었습니다. <계속>


장재웅 목사(워싱턴 하늘비전교회,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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