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 제2부 구약교회의 신정정치 - I. 노아 언약과 아브라함 언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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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은 제1부 '대홍수 이전 시대의 정치'를 통해 '에덴동산과 에녹성의 정치적 의미(제1장)',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들의 타락과 대홍수(제2장)'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부터 연재되는 제2부 '구약교회의 신정정치'에서는 '모세 시대의 선지자 정치(제3장)'이라는 주제 아래, 모세 이전의 노아의 무지개 언약과 아브라함의 횃불 언약, 그리고 모세의 시내산 언약이 지닌 성경적·영적·정치적 의미를 깊이 있게 상고해 보고자 합니다.]
제2부 구약교회의 신정정치
제3장 모세 시대의 선지자 정치
성경은 언약(covenant)이 한 공동체를 이루는 방법이라고 가르친다. 가족, 혹은 부족으로 존재하던 때는 물론이고 국가라는 정치적 공동체를 구성할 때도, 언약은 역시 그 공동체를 이루는 규범으로 사용될 수 있다. 더구나 모세 5경에 등장하는 언약들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구성된 신정 체제를 언약으로 규정하고 있다. 대홍수 이후 이러한 언약이 가장 현저하게 표현된 것은 하나님께서 노아와 그의 가족 사이에서 맺은 “노아 언약”(Noahic Covenant)과 하나님이 유대인의 시조인 족장 아브라함과 맺은 “아브라함 언약”(Abrahamic Covenant)이 있다. 그리고 유대민족을 대표한 모세가 하나님과 맺은 “모세 언약”(Mosaic Covenant)은 그 현저한 예이다. 본 장에서는 먼저 이 세 언약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모세 언약의 특징을 설명함으로 신정정치 공동체가 어떻게 세워지며, 어떠한 특성을 가지게 되는지 살펴보려고 한다.
I. 노아 언약과 아브라함 언약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다. 노아와 세 아들, 셈과 함과 야벳, 그리고 그들의 배우자 총 8명이 대홍수를 넘어오면서 인류는 멸절의 위기를 넘어선다. 대홍수라는 파국적인 사건에도 불구하고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인류의 조상 노아와 그 후손들에게 계속된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엄한 피조물이라는 사실은 창세기 1:27-28에서 아담과의 언약을 통해 이미 선언되었다. 그러나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도 창세기 5:3, 9:6은 인간이 변함없이 “하나님의 모양”(the likeness of God) 혹은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이라고 묘사된다. 특히 창세기 9:6-7 이하에서 홍수 이후에도 변함없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손상될 수 없는 존엄한 존재로 그려진다. 인간은 피 흘리는 살육에서 보호되어야 하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온 땅에 충만하게 번성할 존재로 드러난다. 이러한 하나님의 의도는 홍수 이후 최초로 노아의 가족과 맺은 “무지개 언약”(창 9:8-17)으로 먼저 나타난다.
1. 노아의 가족과 맺은 무지개 언약
창세기 9장은 대홍수 이후 하나님과 노아의 가족 사이에서 맺어진 “무지개 언약”을 소개한다. 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아담ㆍ이브와 맺은 언약처럼, 대홍수 이후에 인류와 맺은 보편적인 언약이다. 이 언약은 또한 노아의 후손으로 생겨날 온 인류의 존엄을 지키려는 하나님의 자연법적 언약으로 종종 간주된다. [반드루넨은 아담의 언약과 대홍수 이후에 맺어진 노아의 언약을 자연법적인 언약으로 해석한다. 노아 언약의 중요성에 대한 것은 다음의 책을 참고하라. David VanDrunen, Divine Covenants and Moral Order (Grand Rapids: Eerdmans, 2014), 김남국 역, 『언약과 자연법: 자연법에 대한 성경신학적 연구』 (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8), 28-39.]
하나님이 노아와 노아의 후손과 함께 맺은 언약은 아담ㆍ이브와 함께 맺은 언약과 그 내용 면에서 매우 유사하다. 인류는 아담과 이브의 후손들이었으나, 이제 대홍수를 지나면서 인류는 노아의 후손으로 구성되기 때문에, 노아 언약은 인류 보편적인 자연법적 언약으로서 의미가 있다. 아담의 후손이 신앙적인 면에서 셋의 후손과 가인의 후손으로 분리되었던 것처럼, 노아의 자녀들도 모두 믿음의 권속이 되어 신앙의 공동체를 이룬 것은 아니다. 대홍수 이후 노아의 후손은 거대한 무리를 이루며 다시 전쟁하고 살육하기 시작했다. 넓게 펼쳐진 ‘세상을 가득 채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흩어지기를 거부하려는 거대 프로젝트로 바벨탑을 건설했다.
대홍수 이후 인류의 타락과 분열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노아 언약을 통하여 아담 부부에게 주었던 복을 갱신하신다. 노아 언약은 노아의 가족, 곧 인류의 조상이 될 8명을 향해 주어졌다. 하나님은 대홍수 이후의 새로운 환경 속에서, 높은 산 “아라랏”에 있는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창 9:1, 7)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복은 인류의 생존과 번성을 명하실 뿐 아니라, 인류가 짐승과 조류 어류와 같은 피조물에 대한 관리자로 세워짐을 의미한다. 아울러 그들은 식물과 함께 동물들마저도 음식으로 삼을 수 있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사람이 피를 흘리게 되는 경우 그 피의 대가를 찾을 것임을 천명함으로 형벌의 의무를 세운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한 가치에 대한 강력한 옹호는 인권과 생명권에 대한 하나님의 확고한 지지 표명이다. [니콜라스 월터스토르프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유엔 인권선언을 비롯한 다른 공식문서에서 그 존엄성의 근거를 찾기 어렵다고 말한다. 거의 유일한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근거가 되는 문서는 성경이다.]
하나님이 노아의 가족 8명에 대하여 세운 자연법적 언약은 종종 “무지개 언약”(Rainbow Covenant)이라고 불린다. 홍수 이후 새로운 환경 속에서 두려움에 빠진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배려는 창 9:8-17에서 7번에 걸쳐 “언약” 곧 “베리트”(berith, 9, 11, 12, 13, 15, 16, 17)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 나타난다. 홍수로 황폐해진 세상에 아직 과일나무와 식물이 성장하지 못한 상황에서 생존에 대한 우려와 두려움이 노아의 남은 식구들을 엄습할 때, 하나님은 인간을 향해 보호를 확증하신다. [Daniel Elazar, Covenant & Polity in Biblical Israel: Biblical Foundations & Jewish Expressions, vol. I of The Covenant Tradition in Politics (New Brunswick: Transaction Publishers, 1995), 23.]
아직 음식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인류에게 동물의 고기와 부산물이 식용으로 허용된다. 대홍수 이후 자연계의 황폐함이 아직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하나님의 언약은 인류의 보존을 약속하는 일방적인 은혜의 언약이다. 노아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의 내용은 인간과 생물에 대한 보호, 즉 인간과 생물을 홍수로 다시 멸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확증이다. 대홍수 심판이 반복되지 않는다는 “언약의 징표” 혹은 “언약의 증거”(the sign of the covenant)로 하나님은 무지개를 채택하신다. 하나님은 무지개를 보실 때마다 이 보호의 약속을 기억하시며, 인간과 땅의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한다.
“무지개 언약” 혹 “노아 언약”에 대한 신학자들의 해석은 매우 다양하다. 성경신학자인 게할더스 보스(Geerhardus Vos)는 이를 보편적 은총의 언약으로, 마이클 호튼(Michael Horton)은 보존의 언약으로 본다. 이 언약은 이후에 맺어질 아브라함 언약의 특징인 구속(redemption)의 언약과 구별한다. 클라우스 베스터만(Claus Westermann)은 이를 인간의 순종과는 무관하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맺은 무조건적 언약이라고 말하며, 리처드 미들턴(Richard Middleton)은 생태신학적 관점에서 하나님과 창조된 세계 사이에 맺어진 화해의 언약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니엘 엘라자르(Daniel Elazar)의 정치신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무지개 언약은 공적 윤리의 기초가 되는 보편 언약으로서 보편적 도덕법과 정치적 질서의 정당성을 형성하는 기반이 된다고 주장한다. [Daniel Elazar, Covenant & Polity in Biblical Israel, 110-115.]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니엘 엘라자르는 그의 책 『성경적 이스라엘의 언약과 정체(Polity)』에서, 노아 언약에는 다음과 같이 다양한 측면이 있음을 피력한다. 첫째로 노아 언약은 홍수 이후의 “재창조와 재위임”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홍수 이후의 새로운 세상에서 인류에게 다시 생육하고 번성하며 세상을 다스릴 것을 위임하신다. 둘째로는 “생명의 존엄과 정의의 원칙”을 세우는 것이다. 죄가 들어오고 난 후 인간의 타락을 상정할 때, 하나님은 “사람의 피를 흘리는 자는 그 피로 갚을 것”이라는 규정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죄에 대한 형벌의 원칙을 확립한다. 셋째는 “보존의 약속”이다. 노아 언약에 대한 증거로 하나님은 ‘다시는 홍수로 세상을 멸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무지개를 주신다. 이러한 언약의 자연법적인 차원은 아브라함을 통해서 발생하는 선민의 법과 대조된다. 노아 언약은 미래의 질서를 이루기 위한 기초이자 외적 방벽이다. 엘라자르는 이 언약이 모든 인류를 위한 기본적인 도덕-정치적 헌장이 될 수 있음을 확언한다. [Elazar, Covenant & Polity in Biblical Israel, 110-118. 이러한 엘라자르의 견해는 데이빗 반드루넨의 『언약과 자연법』(Divine Covenant And Moral Order)이라는 방대한 저술에서 반복되어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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