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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목회의 성서적 개념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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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당당뉴스| 작성일2025-09-14 | 조회조회수 : 7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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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본질적 목회를 고민하기 위해 신학자와 목회자들이 모여 시작한 영성목회 포럼의 준비 모임에서 발표한 글들을 게재하고자 한다. 글을 게재하는 순서는 1. 유해룡 교수, 2. 김수천 교수, 3. 권진구 교수, 4. 오방식 교수, 5. 민경보 목사 순으로 하여 매주 게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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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천


김수천 교수 /  협성대 기독교영성학 교수, "열 번의 물러남" 기도학교 대표      


     

영성목회의 성서적 개념을 고찰하기 위해 먼저 영성의 정의와 함께 기독교 영성의 정의를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목회자들의 목자장이 되시는(벧전 5:3-4절)1) 예수님의 목회 원리를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그런 다음에 영성목회의 성서적 개념을 제안해 보려고 한다.


 

1. 기독교 영성의 정의

 

주지하는 것처럼 영성(Spirituality)이라는 단어는 초대교회 이후 기독교에서 사용해 온 단어이지만 20세기 후반에 탈 근대화(Postmodernism) 운동의 한 현상으로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인간 삶의 전 영역에서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합리적 이성과 과학적 사고를 기반으로 인간 스스로 역사의 진보를 이룩할 것이라는 낙관적 근대주의는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며 재성찰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한 성찰로 인해 인간의 삶은 영성적 차원의 삶을 배제하고는 완성될 수 없다는 자각을 불러왔다. 그 결과 기독교 이외의 제 종교 분야와 비종교 분야에서도 영성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어 왔다.


교회 안팎에서 증대된 이러한 영성에 대한 관심으로 이제는 영성과 기독교영성의 개념을 구분해서 이해해야 한다. 영성과 기독교영성에 대한 다양한 학자들의 정의 가운데 북미에서 기독교영성학을 이끈 샌드라 슈나이더스의 영성에 대한 정의와, 포덤대학교의 영성신학 교수로 영성에 대한 학제간 연구를 수행하는 자넷 러핑의 기독교 영성에 대한 정의만을 참고하고자 한다. 먼저, 슈나이더스는 영성에 대하여 “한 개인이 인식하는 궁극적 가치의 지평을 향한 자기 초월을 통하여, 삶의 통합을 위한 과제에 의식적으로 참여하는 경험”이라고 정의한다.2) 이것은 영성에 대한 좋은 정의이지만 기독교 영성에 대한 정의로는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한편, 기독교 영성에 대하여 러핑은 “기독교 영성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며, 예수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경험의 결과로서 우리의 삶을 사는 방식이다.”3)라고 말한다. 러핑의 정의는 기독교영성에 대한 핵심적인 정의이지만 좀 더 확장된 정의가 필요해 보인다.


필자는 기독교 영성을 실천적 차원에서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자 한다. “기독교 영성이란 성삼위의 활동에 대한 인간의 응답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영성을 모방하는 것으로 세 가지 차원의 삶을 포괄한다. 첫째, 성령 안에서의 삶(Life in the Holy Spirit)을 위해 기도에 헌신하는 영성훈련의 삶, 둘째,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를 양육하는 영성지도의 삶(Life of the Spiritual Direction), 셋째, 영성의 열매로서의 통전적 영성의 삶(Life of the Wholistic Spirituality)을 사는 것(눅 4:22-23)이다.”4)


 

2.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목회 원리

 

복음서에 묘사된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요 5:19-20절은 예수님이 자신의 사역 원리로서 성부의 활동을 주목했음을 잘 보여 준다. 이 본문의 배경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를 베데스다 연못에서 고치신 사건이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것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5:17절에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라고 하심으로 자신의 사역의 원리를 설명한다. 그리고 그 사역 원리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본문이 5:19-20절인데 먼저 5:19절을 살펴보자.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이 본문은 다양한 해석이 존재하지만 결론은 유사하다. 먼저 다드(C. H. Dodd)는 예수님 시대의 근동지방의 가업에 대한 비유를 가정한다. 즉, 가업의 초보자인 아들이 아버지가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하는 것처럼 예수님도 성부가 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따라 한다고 해석한다.5) 버나드(J. H. Bernard)는 민 16:28절에서 모세가 성부가 계획하는 일을 순종했듯이 성육신한 성자는 성부가 하늘에서 하는 일들을 주목하고 이 땅에서 그것을 행한다고 말하며, 성자는 모든 신자들을 위해 그러한 삶을 대표하는 모범자의 의미를 지닌다고 말한다.6) 돈(Marva Dawn)은 성자가 한 것처럼 우리도 “우리를 통해 일하시는 성부의 일하심을 수용하는 태도가 형성”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7) 한편, 브라운(Raymond B. Brown)은 이 본문이 요한신학의 한 특성을 보여 주는데, 이 구절은 “성부와 성자가 사역의 한 원리로서 같은 본성을 공유함”을 나타낸다고 해석한다.8) 모리스(Leon Morris)는 “성자에게는 성부에 대한 지속적인 관상(a continual contemplation)의 관계가 존재하는데 이것은 방해받지 않는 연합의 원리이다.”라고 말한다9).필자는 이 본문 가운데 “에안 메 티 블레페 (ἐὰν μή τι βλέπῃ)” 구절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만일 계속해서 눈으로 보지 않는다면”이라는 의미이다.10)

이 구절에서 핵심 단어인 “보다”를 의미하는 블레페(βλέπῃ)는 원형이 “블레포(βλέπω)”인데 미샤엘리스(Wilhelm Michaelis)는 이 단어가 요한복음에서 물리적 봄이 아닌 것으로 사용된 유일한 예라고 강조한다.11)


한편 요한은 요 8:38절에서 5:19절의 내용과 신학적으로 유사한 내용을 기록한다.


"나는 내 아버지에게서 본 것을 말하고 너희는 너희 아비에게서 들은 것을 행하느니라."


그런데 요한은 이 본문에서 보다를 의미하는 동사를 사용할 때 블레포가 아닌 헤오라카(ἑώρακα)를 사용하였다. 이 구절에서 “본 것”을 의미하는 헤오라카는 원형이 호라오(ὁράω)인데 여기에서는 완료형 시제로 쓰였다. 즉 “과거로부터 시작하여 본 것이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향력을 지속적으로 발휘하고 있음을 부각”시키는 의미이다.12) 이 본문에서 말하는 “본 것”도 아버지가 일하시는 것을 보는 것으로 예수님은 여기에서도 자신의 사역 원리를 반복해서 강조하고 있다.


한편, 요한이 예수님의 동일한 사역원리를 표현하는 유사한 본문에서 “블레포”와 “호라오”라는 다른 어휘를 사용한 이유를 밝히기 위해 미샤엘리스는 신약성서에서 사용된 “보다”를 의미하는 “호라오(ὁράω)”, “에이돈(εἶδον)”, “블레포(βλέπω)”, “떼오레오(θεωρέω)”등의 동사들을 조사하였다. 그리고 결론적으로 이 동사들이 신약성서에서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동의어로 사용되었다고 강조한다.13) 이렇게 요 5:19절과 요 8:38절은 예수님이 자신의 사역 원리로서 “스스로 일하지 않고 성부의 일하심을 주목하고 참여하는 삶”을 사셨음을 보여 준다.


다음으로 우리가 살펴 보아야 할 주제는 예수님이 성부의 일하심을 주목하는 구체적인 원리로 성부와 성자 사이의 사랑을 강조하신 것이다. 요 5:20절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이 본문의 핵심 단어는 필레이(φιλεῖ)라고 할 수 있다. 옥스퍼드 원어 대사전에 따르면 여기에서 사용된 “필레오”는 “주로 상대방을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로 인정하면서도 자신과의 밀접한 관계성에 근거하여 마치 자신의 일부와 같이 사랑하는 것”을 나타낸다. 14)  따라서 요한은 성자가 성부의 일하심을 주목하는 원리로서 두 위격 사이의 친밀함과 그 친밀함을 통해 표현되는 사랑의 교제를 강조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요 5:19-20절은 예수님의 사역 원리를 보여 주는 중요한 구절이다. 예수님의 사역 원리란 “스스로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부가 하시는 일을 주목하고 그 일에 참여하는 것인데 그것은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3. 성부의 일하심을 주목하기 위한 예수님의 기도 생활

 

비록 성부가 성자를 특별히 사랑하셔서 성부의 하시는 일들을 보여 주셨지만 성자는 결코 자동적으로 그러한 계시들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복음서는 예수님이 언제나 기도를 우선순위로 하는 삶을 통해 성부의 일하심에 동참했음을 증거 한다. 예수님의 기도의 삶에는 몇 가지 특성이 있는데 최소한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다. 둘째, 이른 새벽에 주로 기도하셨다. 셋째, 홀로 기도하셨다. 넷째, 중요한 사역을 하기 전에 기도하셨다. 이러한 특성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하나님의 일하심을 주목하기 위해 항상 사역 이전에 기도하는 삶을 사신 것을 보여 준다. 대표적인 예가 오병이어 이후에 기도하신 것이다. 마 14:22-23절은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푼 후 제자들은 따로 배를 타고 가게 하고 밤 사경까지 홀로 남아 산에서 기도하였다고 기록한다. 예수님은 다음날 성부가 또 어떤 일을 계획하시는지 분별하기 위해 홀로 남아 기도하셨을 것이다.


 

4. 영성목회의 개념

 

성부의 뜻에 따라 성육신한 성자는 공생애 기간 성부의 일하심을 먼저 주목하고 그 일에 동참하는 사역을 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기도를 우선하는 삶을 사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뒤를 따르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지침이 된다. 예수님의 사역을 따르는 것이 영성목회라고 한다면 영성목회란 “내가 섬기는 공동체에서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하나님의 일하심을 주목하고 분별하며 그 일하심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신성과 인성을 공유하는 성자로서 홀로 성부의 뜻을 분별할 수 있었지만, 인성만을 지닌 목회자들은 목회자 홀로 자신의 목회 현장에서 일하시는 성부의 뜻을 분별하는데 한계가 있다. 따라서 최소한 교회 공동체를 대표하는 교회 리더들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주목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성령의 인도를 의지해야 하는 것은 절대적이다. 우리는 개신교 전통 가운데 이러한 모델을 퀘이커교도들의 예배 형식과 회의 결정 방식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의 일하심을 주목하고 그 일에 동참하는 목회는 선교신학에서도 강조하는 점이다.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라는 관점은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교회는 하나님의 구원 활동을 분별하고 그 일에 동참하는 존재라고 이해한다. 즉, 선교란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사역의 일부이며, 교회란 스스로 선교를 계획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교 활동을 주목하고 그 일에 동참하는 선교의 도구인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활동은 교회 공동체를 위한 목회의 전 영역에서 오늘도 지속되고 있다. 따라서 목회자는 설교, 예배, 성례, 상담, 교육, 소그룹, 영성지도, 심방, 구제, 선교등 목회의 제반 영역에서 하나님의 활동을 먼저 주목하고 분별해야 한다. 하지만 인성만 지닌 목회자가 개인적으로 그것을 수행하기에는 한계가 있기에 가능하면 교회 공동체 전체 구성원이나 교회의 리더들과 함께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한 분별 과정에서 기도의 삶 가운데 성령의 인도를 의지해야 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렇게 하려면 목회의 제반 영역에서 성령의 임재를 목회자와 교회 공동체 구성원들이 어떻게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각주


1)  3. 맡은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양 무리의 본이 되라. 4.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2) 샌드라 슈나이더스, “기독교 영성 연구에 대한 접근방식”, 아서 홀더 편, 『기독교영성연구』, (CLC, 2017), 38.

3) 자넷 K. 러핑(Janet K. Ruffing), “심리학”, 아서 홀더 편, 『기독교영성연구』, (CLC, 2017), 460.

4) 김수천, “기독교 영성 개념의 변천사-바울 시대부터 20세기까지”, 「목회와신학」 415(2024), 41.

5) C. H. Dodd, Historical Tradition in the Fourth Gospel (Cambridg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63), 386n, 2. Alan Culpepper, The New Interpreter’s Bible, vol. IX, The Gospel of Luke,” (Nashville, TN: Abingdon Press, 2015), 584에서 재인용.

6)  J. H. Bernard,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vol. I, The Gospel According to St. John, (Edinburgh: England, T. & T. Clark, 1985), 238.     

7) Marva Daw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in The Renovare Spiritual Formation Bible, 1933-1972, ed. Richard Foster, Dallas Willard, Walter Brueggemann, and Eugene Peterson, (New York, NY: HarperCollins Publishers, 2005), 1947. 

8) Raymond B. Brown, The Anchor Bible, vol.30, The Epistles of John, (Garden City, NY: Doubleday & Company, 1995), 218.

9) Leon Morris, The New International Commentary on the New Testament, The Gospel According to John, (Grand Rapids, MI: Willia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95), 312.

10) 제자원 옮김, 『Oxford Bible Interpreter』, 450.

11) Wilhelm Michaelis, Gerhard Kittel & Gerhard Friedrich, ed., Theological Dictionary of the New Testament, (Grand Rapids, MI: WM. B. Eerdmans Publishing Company, 1981), s.v. “ὁράω.” 315-381.  

12) 제자원 옮김, 『Oxford Bible Interpreter』, 221. 

13) Wilhelm Michaelis, 315-381.

14) 제자원 옮김, 『Oxford Bible Interpreter』, 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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