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A 논쟁과 개혁주의 선교신학의 정체성과 그 역할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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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옥 교수
3. 자유주의와 세속주의와 신복음주의는 이미 온 세상에 퍼져 있는 문화적 현상임을 인정해야 한다.
WEA를 반대하는 분들은 자유주의, 신복음주의, 세속주의, 일치운동, 종교다원주의적 운동을 WCC나 로마가톨릭과 연계하여 비난하며 우려를 표한다. 이것은 사실이며 시대적 신학의 경향을 잘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 사상들은 이미 한국 교회와 성도 안에서 알게 모르게 편만해 있고 자유주의신학을 가진 교회에서 더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온 세계는 하루가 다르게 세속화되고 혼합주의적 문화나 사상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이유 때문에 WEA를 특정하여 개최를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간다.
WEA는 전 세계 146개국에서 모인 143개 연합 기관이 활동하고 있으며, 6억 명 이상의 복음주의 신자들이 소속되어 있다. 특히 2024년 기준 한국선교연구원 통계에 따르면, 개신교 전체 신자가 6억 2,500만 명에 달한다고 본다면 WEA는 우리와 같은 대부분의 복음주의적 그리스도인들이 거의 참여하고 있는 단체이다. 만약 WEA가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신학위원회에서 들어가 열띠게 토론하여 수정하고 발전시키면 되는 일이다(사도행전 15장 예루살렘 공회).
어떤 기준에 의해 WEA 개최를 멈추라고 하는지, 그 기준이 엄격하게, 그리고 공정하게 적용되려면, 스스로에게 먼저 적용하고, 한국 내에 있는 비성경적 활동과 자유주의적 교단이나 활동들에 똑같은 잣대로 들이대서 선도하는 일을 먼저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왜 하필 복음을 전하는 세계 선교 단체를 겨냥하는지 알 수가 없다.
지금 한국 교회에 20~30만의 신천지 교인들이 기독교의 핵심적인 진리를 부정하고 기존 교회를 무너뜨리고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어, 기독교가 얼마나 큰 피해를 입고 있는지? 그리고 세계 선교지에 얼마나 큰 피해를 주고 있는지? 그리고 교인 3백만~4백만 명이나 되는 "어머니 하나님 교회" 등 한국산 이단들이 세계 선교를 방해하고, 사람들을 멸망으로 끌고 가고 있는데, 왜 이런 것들이 WEA 이슈보다 작은 문제가 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지금 한국 교회에서 기독교의 진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가장 긴급하게, 그리고 올바로 세워져야 할 영역은 어디일까? 그것은 한국에 범람하고 있는 이단들이다. 이것은 한국 교회가 진리를 수호함에 있어서 얼마나 취약하고, 성도들을 성경적 진리 위에서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일에 있어서 얼마나 미흡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렇게 무서운 이단 신학이 역사상 전례가 없이 한국 교회들을 무너뜨리고, 한국을 넘어 세계 선교지에서까지 큰 피해를 주고 있는데, 왜 한국 교회는 회개하는 마음으로 이 문제를 먼저 해결하려고 하지는 않는가?
예수님은 먼저 자신의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빼고 형제 눈의 티를 빼라고 가르치셨는데, 우리는 오히려 그 반대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것이 과연 문제 해결이 되고 있는가? 아니면 마귀가 역사하여 선교사들을 낙심하게 만들고, 하나님의 종말론적 선교(마 24:14)를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분별해야 한다. 왜 주님이 가라지를 확인하면서도 주님 오실 때까지 뽑지 말라고 당부하셨는지?(마 13), 혹시 WEA 속에 있는 가라지를 뽑다가 알곡까지 뽑아내서 세계 선교에 큰 지장을 준다면, 그것은 누가 책임을 지는지? 왜 바울은 우리가 많은 것들을 판단할 수 있으나, 그러나 주님 오실 때까지 판단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고 가르쳤는지?(고전 4:1-8)
더욱 두려운 것은 불안전한 신학으로 분류되는 신복음주의자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수백만의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셨듯이, 만약 WEA에 불완전한 단체이고, 신학적인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세계 선교를 위하여 사용하고 계신다면, WEA 개최를 무조건 반대만 하는 사람들은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월권(롬 4:14)을 행사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한다. <계속>
김점옥 교수(애틀랜타 글로브 언약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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