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A 논쟁과 개혁주의 선교신학의 정체성과 그 역할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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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점옥 교수
2. 조직신학이 과도하게 선교학을 지배하고 있는 불합리한 현상
모든 신학은 성경신학부터 시작하여 조직신학과 역사신학을 걸쳐 실천신학을 통해 교회를 섬기는 학문이다. 그 중 선교신학은 모든 신학의 마지막 종점과 목적으로서, 세계 선교 신학과 전략을 연구한다. 각 학문의 역할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필요치 않으나 모든 신학 분야는 믿지 않는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선교가 일어나도록 각자의 학문 영역에서 기여하고, 협력하고, 조력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선교 현장에서는 종종 조직신학이 지나치게 월권해서, 타문화와 타종교권 사회에 복음을 전하는, '영아기 수준'의 진리를 전해야 하는 선교지에 500년, 1000년 혹은 2000년 이상 된 성경 연구에서 나온 정형화되고 공식화된 교리를 가지고, 선교지를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느낌이 든다. 선교 현장은 선교학의 기나긴 연구과 노력이 먼저 필요한 영역이지, 조직신학이 뛰어 들어 '우물에 가서 숭늉을 내놓으라'는 식으로 소리치는 곳이 아니다. 더욱이 조직신학 방법론은 성경학자들이 수년간 연구한 성경신학적 해석을 교리적, 철학적으로 구성하는 것이지만, 선교학은 수천 년간의 지속된 타민족의 문화와 타종교와 관습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낯선 복음, 곧 이슬라엘의 “예수를 구세주로 믿으라”고 외침으로써, 거부감과 격렬한 반대를 일으키고 박해를 받고 심지어 순교 당해야 하는 긴박한 과제와 상황에 관한 철저한 연구가 필요한 학문이다.
만약 선교지에 있는 유아기 성도들과 그들의 신학이 영적인 성숙한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고 판단하고 비판한다면, 선교가 설 수 있는 공간이 무너져 그들이 성장할 수 있는 길이 막히고 세계 모든 선교영역이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 이는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을 잊은 것과 같다. 개신교가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 “하나님”이란 용어와 “하느님”이라는 용어 사용의 갈등 속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고수하기 위해서 얼마나 오랫동안 힘들게 싸우고, 갈등했는지, 또 지금까지도 혼합주의적 샤머니즘 영향 때문에 복음의 올바른 토착화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잘 알 수 있다.
선교지는 바울의 고백처럼 모든 진리가 정확하게 다 적용되는 곳은 아니다.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전 9:19-23)
더 놀라운 사실은 이번에 한국에서 WEA 이슈를 토론하는 그곳에는 조직신학자들, 목회자들, 혹은 선교 관련자들이 있었으나 정작 선교학자는 보이지 않았다. 주로 조직신학자들 혹은 성경신학자들이나 총회장들이 선교 현장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난해한 선교의 신학과 이슈를 설명하고 판단하였다. 사실 WEA 문제는 일차적으로 선교학자들, 그리고 현장 선교사들의 의견이 가장 우선적으로 청취되어야 한다. 선교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혹은 “자유주의와 혼합주의, 종교다원주의” 등 신학적인 이슈에 대하여 선교지에 어떻게 이해하고 극복하고 있는지, 그 현장의 소리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듣지 않고, 과연 무엇에 대하여 판단하려고 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이 무질서와 이 오만함이 WEA 문제를 더 엉키고 혼란스럽게 만든 요소가 되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계속>
김점옥 교수(애틀랜타 글로브 언약신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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