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 제2장 “하나님의 아들들”의 타락과 대홍수 – 2. 네피림의 시대에 벌어진 우주적 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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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네피림의 시대에 벌어진 우주적 반역
대홍수가 시작되기 전, 천사와 인간, 그리고 이들의 잡종인 네피림은 공존했다는 것이 성경의 문맥과 상응하는 가르침이다. 이것은 또한 메소포타미아와 그리스의 전승에도 유사하게 등장하는 내용이다. 메소포타미아 악마론의 중심 존재인 압칼루(Apkallu)가 인간 여자와 사이에서 낳은 자식인 거인을 통해서 수많은 지식을 전수했음을 우리는 기록을 통해서 볼 수 있다. [Heiser, Reversing Hermon, 37-54.]
길가메시 또한 다양한 지식을 소유한 홍수 이전의 거인이며, 3분의 2의 신성을 보유한 신적 존재였다고 전해진다. 인간이 누리는 문명은 이러한 영적인 존재의 도움을 통하여 짧은 시간에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이 고대의 기록이 우리에게 암시하는 주장이다. 천문학, 식물학, 동물학, 생물학, 건축학, 금속공학의 차원에서 이루어진 야금, 제련 기술, 그리고 정교한 거석을 활용하는 석공 기술의 발전이 바로 인류에게 전수되었다. 이는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가인의 후손에 의하여 급격하게 전수된 에녹성의 기술적 성취가 설명될 수 있는 또 다른 통찰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기술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으로 허약한 인간의 성품은 하나님을 반역하여 타락한 사탄의 성품을 따라 음란하고 폭력적인 특성을 띠게 되었다. 창세기의 기록은 이러한 면에서 부패한 인간의 문명이 폭증하므로 대홍수의 요인이 되었다고 말한다. 타락한 신들, 그들과 인간 사이에서 출생한 거인들은 무자비한 폭력과 갈등을 동반하는 소위 “신들의 전쟁”(theomachy)과 “거인들의 전쟁”(gigantomachy)을 일으켜 지구가 황폐해지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기록 가운데 나타난 길가메시, 바산 왕 옥과 아낙 자손과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은 네피림의 자손들이며 전쟁에 능하고 당시에 유명한 전사였음을 미루어 생각할 수 있다. [Heiser, The Unseen Realm, 177-186.]
그러나 성경은 기술 방법은 천사 중심이 아니다. 창세기 6장의 문맥은 중근동의 신화적 존재를 중심에 두고 서술하는 방식이나 거인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기술하는 방식과는 현저한 차이를 가진다. 창세기 6장의 기록은 천사의 탁월성에도 불구하고 인간 중심으로 기록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스 신화나 사해문서에 속하는 위경의 기록과 대조되는 성경의 기록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중심으로 고대의 사건을 서술한다. 물론 대홍수 전에 벌어진 신들의 전쟁과 거인들의 전쟁을 거론하지만, 그것은 성경의 이야기가 가진 중심 주제가 아니다. 신들의 전쟁은 하나님의 뜻도 아니었으며, 인간에게 중심되는 사건의 핵심도 아니었다. 지구상의 타락에 대한 하나님의 심각한 후회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을 타락을 목도하는 가운데 거론되며, 감찰자로 불리는 천군ㆍ천사나 거인이 중심이 아니라 인간이 중심임을 보여준다. 모세는 분명한 초자연적인 존재와 거인의 출연을 알고 있으면서도, 타락한 천사에 대한 언급보다는 인간에 대한 언급을 위주로 기록하고 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창 6:5-6). 이것은 영적인 전쟁 가운데서 인간이 위치한 중요한 위상에 관한 하나님의 유의미한 긍정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의 창조를 계획하신 것은 강력한 피조물인 천사와 비교할 때 결코 못하지 않은 존귀한 위치에 있는 인간을 창조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천사도 부러워할 수밖에 없는 존귀한 인간 존재의 창조이다. 물론 천상에 있으며 활동하는 영적 존재는 전지ㆍ전능하지는 않지만, 사람의 능력을 뛰어넘는 탁월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존재이며 하나님께 순종하는 존재이다. 탁월하게 지어진 이 영적 존재들은 종종 사람을 위하여 소식을 전하고, 돕고, 보호하고, 싸우고, 감찰하고 지키는 사역을 감당한다. 고위의 천사 순찰자(watchers)는 사탄의 타락 이후에도 사탄과 그를 따르는 흑암의 권세들로부터 인간을 지키고, 하나님의 뜻을 시행하는 존재이다(단 10:13-14). 천사라는 존재의 이러한 탁월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가진 존귀한 위치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서의 영광스러운 위치와 위상이다. 성경에서 천사는 하나님 사역의 중심이 아니다. [Heiser, Angels: What the Bible Really Says about God's Heavenly Host, 채정태 역, 『천사를 말하다: 하나님의 천군에 대해 성경이 실제로 말하는 것들』 (서울: 좋은 씨앗, 2022), 27-29.]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깊은 사랑은 인간의 가치와 자긍심을 가질만한 압도적인 위치를 발견하도록 한다. 천사를 뛰어넘는 존귀한 인간의 위상은 그러므로 다음과 같이 집약된다.
첫째,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표현된 인간의 위대함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닮은 꼴’이라는 의미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형상이란 인간이 가진 어떤 능력(ability)이 아니라, 인간의 위상(status)을 말한다. 인간은 지상에서 하나님을 드러나게 하는 존재이며, 왕이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는 존재이다. 창세기 1:26-27의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말씀 뒤에 “다스림의 명령”(dominion mandate) 혹은 캘빈주의자가 말하는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이 등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Heiser, The Unseen Realm, 40-43.]
천사는 “하나님의 아들들”로 표현되었으나, “하나님의 형상”으로 불리지는 않으며, 하나님의 형상의 모든 용례는 인간(창 1:26-27, 5:1, 9:6; 고전 11:7; 약 3:9)과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에 한정될 뿐이다(골 1:15). Layton Talbert, "Are Angels in the Image of God"(Feb. 12, 2018). 이에 대한 10명의 토론과 논쟁은 매우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탤버트 교수의 입장은 천사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지 않았다는 단호한 주장을 한다. https://seminary.bju.edu/theology-in-3d/are-angels-in-the-image-of-god/] 모든 천사는 오히려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를 위하여 섬기라”(히 1:14)고 보내졌다.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이 부여한 인간의 존귀함과 인간을 향한 친밀함을 포함한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천사와 달리 인간의 번성을 인간 자신에게 위임하셨다. 많은 수의 천사는 땅이 창조되기 전에 지어졌으나, 인류는 아담과 이브의 결혼을 통해 번성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이브가 사랑 안에서 자기의 형상인 자녀를 가지도록 허용하시므로, 온 인류는 자녀를 낳는 행위를 통해 “한 혈통”이 되었다. 비록 죄로 민족이 나뉘었지만, 원래 온 인류는 한 가족이다(창 1:31; 대상 1:1; 눅 3:23-38; 행 17:26). 모든 인간이 한 조상 아담과 이브를 가진다면, 인간은 하나이다. 그리고 삼위 하나님도 하나이다. 삼위 하나님의 연합과 조화는 인류 공동체가 이루어야 할 연합과 조화와 통일성의 전범이다.
셋째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천사와 다른 존귀한 위상을 가진 인류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 가운데서 거주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물질계를 다스리는 존재로 위치가 정해지게 되었다. 천사들의 천상 회의처럼 앞으로 형성될 인간을 하나님의 자녀로 포함할 하나님의 지상 회의는 하나님의 닮은 꼴을 가진 채로 에덴동산을 확장하여 온 땅을 하나님의 영광과 인류의 거룩한 문화와 문명으로 가득 채우는 영광스런 공동체로 창조되었다.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의도는 인류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통하여 인간과 천사의 천상회의를 구성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견지에서 생각해볼 때, 사탄의 에덴동산으로의 침투와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최초의 계획과 인간의 물질계를 향한 하나님의 풍성한 다스림의 확장을 차단하는 정치적 반역이었다. 사탄이 에덴동산으로 침투하여 인간을 타락시킨 것은 처음부터 인류의 조상을 향한 하나님의 위대한 의도를 무효화시키려는 것이었다. 이에 관한 사탄의 또 다른 반역은 사탄의 통치 아래에 있는 천사들의 반역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인간과의 공동통치를 무효화시키려는 것이었다. 자기 위치를 떠난 천사와 사람의 딸들의 연합을 통한 거인의 출산은 인류의 혈통을 훼손시켜 생물학적인 종으로서의 인간 존재를 훼손시킬 뿐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신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형상 공동체, 즉 하나님이 세우신 왕가로서의 위상을 무력화시키려는 것이었다. 이것은 에덴의 반역에 이은 또 다른 영적인 반역이었으며, 사탄과 그의 강력한 악한 천사에 의한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도전이었다. 타락한 천사가 인류의 혈통을 훼손하려는 행위는 결국 인간의 구원자로 오실 “여인의 후손” 그리스도의 도래를 불가능하게 만들게 되는 것이다. 대홍수는 은혜를 입어 영적으로 거룩하고 육체적으로 훼손되지 않은 인간의 유전자를 가진 노아의 가족을 보호하려는 하나님의 결단으로 이해할 수 있다. <계속>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목사, KCMUSA 이사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