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 III. 에녹성과 신정정치의 상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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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악령과 도시의 타락한 영성
신정정치의 상실이 도덕적 중립을 낳지 않는다. 제사장적 영성의 상실이 왕적 영성을 중립적인 차원에 머무르게 만들지 않는다. 영성에는 결코 중립이나 진공이 존재하지 않는다.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종교적인 인간이 여호와 하나님을 거부한다고 하여, 그 도시가 가치중립적인 문명으로 혹은 도덕적 진공상태로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나님이 떠난 곳에 세속적인 영이 채워져 들어온다. 도시에서 영적 진공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인이 “여호와 앞을 떠나는 것”(창 4:16)은 다른 악령을 부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에녹성에 존재하는 영은 더 이상 성령, 사랑과 공의의 영이 아니다. 한 도시가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군사적인 차원 등 가치의 총화로서 존재한다면, 도시의 의미는 그와 같은 것의 연합을 훨씬 뛰어넘는 영적인 존재로 서 있다. 왜냐하면 도시는 저항할 수 없는 힘과 매력이 존재하면서 일종의 환상을 제공하는 영적인 힘을 제공하는 저수지가 되기 때문이다. 정치적 공동체에는 그 공동체의 영성이 존재할 뿐 아니라 그 영성이 사람들에게로 흘러내려 영향을 미친다.
이에 대하여 엘륄은 도시의 매력은 뭔가 “마술적인 데가 있다”고 하며, 도시는 하나의 거대한 “기식자”(寄食者)이자 “식인종”이라 할 정도로 영성과 인간의 성취를 흡수하여 먹어 치운다고 한다. [Ellul, The Meaning of the City, 『도시의 의미』, 242, 244.] 이는 도시가 중립적인 영성이 아니라, 문화의 특성을 결정하는 가치의 총화로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도시에 대한 인간들의 열정, 그들의 활동에 대한 도시의 영향, 도시의 죽은 아스팔트를 향한 인간들을 끌어당기는 긴 무의식적인 물결 속에 밀려오는 저항할 수 없는 흐름, 도시의 힘, 곧 도시의 유혹적인 힘에 대해 유의하지 않고는 도시를 설명할 수가 없다. 도시 둘레에는 일종의 신기루의 성벽이 세워지고 지도 위에는 인간이 도시의 경계 내에서 실제로 살지도 않으면서 도시의 기본적인 방침의 일부일 수 있는 미결지대가 그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Ibid., 244-245.]
엘륄이 파악한 것처럼 도시의 핵심에 존재하는 것은 도시가 가진 영성이며, 이것이 바로 도시를 특징짓는 강력한 매력이다. 그는 가인의 에녹성에도 사람을 끌 수 있는 영성에 있어서는 마찬가지였음을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가인이 그의 도시를 건설했을 때, 그것은 무엇보다 먼저 그의 자부심에 대한 기념비를 세우는 것이었고, 그의 권리들을 확인하고 스스로를 방어하려는 것이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또한 인간의 업적 속에서 형태를 띠었고 그것을 인간의 몰락을 가져오기 위해 사용하고 있는 천사적인 힘들의 장난감으로서였다.... 하나님이 심판하시고 정죄하시는 것은 태초로부터 반역의 영 속에 있어 왔고 또 도시의 역사를 통하여 죽 그 유혹의 영 속에 있어 왔던 힘이다. 하나의 힘으로서, 하나의 영적 실제로서 도시는 하나님이 그의 계획부터 거부하신 것이며 단순히 돌들과 집들의 축적이 아니다. [Ibid., 262-263.]
영성의 배후에는 영이 있다. 하나님의 성, 하나님의 산으로서 존재하는 에덴에 하나님의 영성과 세계관이 존재한다면, 인간의 타락 이후 하나님 앞을 떠난 인간의 세속도시에는 그 도시의 영성이 존재한다. 그런데 그 영성은 결국 영에 의하여 주입되는 것이다. 영은 인간을 부르며, 인간은 영을 부른다. 우상은 우상의 영성을 부르며, 우상의 영성은 그 거푸집에 존재하는 악령을 부른다. 이러한 도시의 영성이 중요한 이유는 그 문명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락한 문명을 즐거워하면 사는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으며, 하나님을 기뻐하며 그를 기리는 사람이 타락한 문명을 즐거워하면서 그 안에 살아갈 수 없다.
이점에 대하여 메리디스 클라인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God Heaven and Har Magedon)라는 그의 책에서 도시 이전의 하나님의 나타나심의 장소로서의 영광스러운 하늘, 성전의 신적 임재를 거론한다. 도시는 하나님의 도성이든 땅의 도성이든, 그 문명을 자아내는 영의 반영이며, 영성의 반영이며, 그에 의한 반응으로서 나타나는 인간이 형상화에 의한 문화적 결과물이다. 하나님의 임재가 드러나는 곳은 “거룩한 산”이며, 역사 속에서 성전에 속하는 산은 에덴동산, 시온산 그리고 새예루살렘이다. 영광의 하나님께서 인간 안에 임재하심으로 인간의 공동체를 복되게 하시려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였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하늘은 땅의 성전으로, 땅의 성전은 도시에 거주하는 인간에게로 육화되어 결국 하나님의 거처가 인간과 함께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Kline, God Heaven and Har Magedon, 『하나님 나라의 도래』, 81-90, 91-92.] 여기서 클라인은 아마겟돈이 므깃도 골짜기가 아니며, “하르 마겟돈”이 “총회의 산”(the mountain of assembly)이며, 히브리어 “하르 모에드”의 음차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거역과 죄로 인한 타락은 성전-도시의 결합, 인간의 직분으로 말하면 제사장과 왕의 조합을 붕괴시켰고, 도시는 성전과 분열된 상태로 발전되었다. 이로써 도시는 세속도시가 되었고, 영성은 본래의 여호와를 섬기는 신앙에서 타락하여 우상숭배적 영성이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를 비롯하여 수많은 선지자가 도시에서 핍박과 죽임을 당한 것은 도시의 영성이 소망보다 절망에 가까움을 보여준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문화창조라는 업적이 드러나는 도시를 타락한 영성에서 구하고 악한 영성에서 구하려고 노력하신다. <계속>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목사,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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