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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 III. 에녹성과 신정정치의 상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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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CMUSA| 작성일2025-02-03 | 조회조회수 : 414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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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도시의 영성과 하나님의 정의(正義)가 분리되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엄한 인간 아벨의 죽음은 정의로우신 하나님의 개입을 낳는다. 성경은 증거하기를, 의인의 죽음으로 정의는 훼손되었고, 아우 아벨의 흘린 피는 땅에서 부르짖음이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의 정의 “츠다카”가 상실된 곳에서는 땅의 부르짖음 “츠아카”가 발생된다(창 4:9-10). 이 흘린 피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호소하고, 하나님은 이 호소에 반응하여 정의를 실천하는 여호와가 되신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형벌을 내리시고, 가인은 “땅에서 저주받아” 땅이 그 효력을 주지 않으므로 그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고 선언하신다(창 4:11-12). [Paul Marshall, Just Politics: A Christian Framework for Getting Behind the Issues (Toronto: ICS, 1997), 진웅희 역, 『정의로운 정치: 기독교 정치 사상과 현실 정치』, (서울: IVP, 1997), 56.] 살인자 가인이 두려워하는 것은 다른 형제들로부터 자비의 보호를 받지 못함으로 정죄와 심판을 당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인을 위하여 보호를 위한 표를 주고, 그와 함께 가인에게 보복하는 자에게 일곱 배의 형벌을 주어 죽음을 면하게 하겠다고 선언하신다(창 4:14-15). 

   

정치신학자 폴 마샬(Paul Marshall)에 의하면, 보복하는 자에게 일곱 배나 벌을 받게 하겠다는 말씀은 죄인이 된 가인도 하나님의 자비로 보호하시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죄인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함께함으로, 정의로운 하나님이 죄인마저도 보호하시는 자비를 보여주려는 것이다. [Paul Marshall, Just Politics, 진웅희 역, 『정의로운 정치』, 56-57.] 이는 범죄자도 린치의 대상이 되지 않고 공권력의 보호 대상이 되어, 도를 넘어서는 보복이 행하여짐으로 가해자 측과 피해자 측의 갈등이 점진적으로 증대(escalation)되지 않도록 공권력을 형성하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의도이다.

   

그러나 가인은 동생 아벨을 살해하고 난 후, 자신에게 주어진 불명예(stigma)를 자신의 힘으로 극복하기 위하여 방어적 도시를 건설한다. 에녹성으로 표현되는 성읍은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인류 최초의 도시이다. 가인은 자기 아들 “에녹”이라는 이름으로 명명한 에녹성을 건축하고 가인의 후예들은 이 성안에서 살아감으로 도구와 문명을 증진시킨다. 자끄 엘륄에 의하면, 가인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최초의 도시 건축자”이다. [Jacques Ellul, The Meaning of the City (Grand Rapids: Eerdmans, 1970), 최홍숙 역, 『도시의 의미』, 15.]

 

그러나 이 도시는 세속 도시이다. 이 도시의 특징은 하나님의 저주를 피하려고 놋 땅에 건축되지만, 놋 땅은 “유리함의 땅”이라는 의미이다. [Ellul, The Meaning of the City, 『도시의 의미』, 18-19.] 이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자비로운 얼굴을 떠난 사람이 보호와 정착을 바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결국 제사장적 왕이 되지 않으면 유리하는 인간이 될 수밖에 없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가인은 하나님의 정의를 믿을 수 없었다. 그는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대신하는 도시를 건설함으로, 스스로 안전을 확보하려고 한다.

   

도시의 건축자로서 역사 속에 서 있는 가인은 도시적 영성의 창조자이기도 하다. 그가 “유리의 땅” 놋에 세운 도시는 어떤 종류의 성격을 가질 수 있는가? 엘륄의 통찰을 빌릴 때, 가인이 세운 도시는 주변의 증오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도시이다. 에녹성은 주변의 공격에 대한 두려움과 경계를 위한 도시이며, 증오심에 대항하려는 하나의 성채이며,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요새이다. 성은 파수꾼에 의하여 방어되며, 정치적 권력과 경제적인 부가 모여들어야 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모인 것은 지켜져야 한다. 


산이 하나님의 임재의 현장이라면, 도시는 인간의 활동과 능력이 드러나는 장소이다. 도시는 물질적인 삶의 핵심적 장소일 뿐 아니라 정신적인 영향력을 갖추기도 한다. 도시는 문화적인 산물들이 모이고 매매되는 곳이며, 법정이 열리고 정의의 판단이 선포되는 장소이기도 하다. [Ellul, The Meaning of the City, 『도시의 의미』, 28-29.] 그러나 이러한 가치들이 보호되고 방어되려면 파수꾼으로 대표되는 군사적 요소가 필요하다. 

   

에녹성의 영성에 대한 성경의 언급은 가인의 후예를 언급하는 족보 속에서 결정적으로 암시된다. 가인의 후손은 놀랍게도 인류 역사의 여명기로부터 문명을 급속도로 발전시킨다. 가인의 후손을 통해 성을 쌓는 건축술, 가축을 치는 목축업, 악기를 만들고 연주하는 예술적 재능, 청동기와 철기를 제련하여 만들고 사용하는 대장장이의 기능을 발전시킨다. 성경은 기술 자체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인간이 만물을 다스리기 위하여 기술을 발전시키는 일은 오히려 필요했는지도 모른다. 성경은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처럼 불은 인간에게 전달한 프로메테우스를 정죄하지 않는다. 프로메테우스가 전달한 불은 기술이나 실용적 도구와 관련된 인간의 발전을 위한 수단이다. 폴 리쾨르는 이러한 기술적 수단 자체가 형벌의 이유가 아니라고 본다. [Paul Ricoeur, The Symbolism of Evil, 220?]

 

성경은 이러한 문명의 발전에 대한 거부를 표하기보다는 아담의 7대손, 가인의 6대손 라멕이 보여주는 영성에 대하여 더욱 관심을 표명한다. 라멕은 문명의 이기를 사용하여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쳐서 죽였고, 발전된 음악을 가지고 오히려 살인의 노래를 부른다. 도구보다 더 문제가 된 것은 그 도구를 사용하는 사람의 영성이다. 라멕은 여러 면에서 가인의 심성보다 더 완악한 모습을 보인다. 라멕이라는 한 인간이 보여주는 의식의 타락은 문화의 타락을 낳는 도덕적 기준의 타락이라도 보아도 무방하다. 

   

창세기 4장에 나오는 이 원초적인 노래를 통해서 볼 수 있는 라멕의 타락상은 다음과 같다. 라멕은 첫째로 자신이 창상, 상처를 입은 것보다 더 확대된 보복을 통해 상대 소년을 죽인다. 살인 후 그는 두려워하거나 후회하지 않는다. 그는 주변의 두 아내를 불러 모으고, 그들 앞에서 노래 부른다. 동해보복이 아니라, 상대방의 잘못에 대한 과도한 보복을 추구하고 있다. 


둘째로 그가 부르는 살인의 노래는 가인의 죄의식을 넘어서 양심에 화인 맞은 것과 같은 잔인한 심성을 폭로한다.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칠 배이리로다”(창 4:24). 범죄한 가인이 두려워할 때,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가인을 죽이는 사람이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고 하나님께서는 보호를 말씀하였으나, 이제 라멕은 자기를 죽이는 자는 벌을 칠십칠 배나 받게 된다고 스스로 자만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는 잔혹한 노래이며, 동시에 살인한 자의 후회나 아픔을 찾아볼 수 없는 잔인한 ‘칼의 노래’이다. 


셋째로 라멕은 무자비한 사람일 뿐만 아니라, 결혼제도를 파괴한 사람이다. 인류 최초의 부모가 범죄 한 후, 7번째 후손인 라멕에게서 죄악은 고도로 피폐한 모습을 보인다. 라멕은 세상에 가득 찬 죄의 정점에서 결혼제도의 타락을 보여준다. 라멕은 가정의 ‘일부일처제’라는 기준을 파괴하였다. 그는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혼(창 2:22-25)을 일부다처제로 바꾸었다. 

   

라멕은 살인이라는 부정의, 결혼제도의 파괴,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을 해치는 사람은 벌을 77배나 받게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는 교만을 보여준다. 그는 교만하고, 무례하며, 무자비하다. 그의 노래는 범죄의 노래요, 피의 노래요, 칼의 노래요, 살인의 노래요, 저주의 노래요, 교만의 노래요, 보복의 노래이다. 이는 비인간화를 드러내는 노래이다. 이는 라멕의 타락한 영성이 낳은 사악한 열매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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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목사,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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