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 III. 에녹성과 신정정치의 상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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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에녹성과 신정정치의 상실
죄는 윤리적 반역이다. 죄로 말미암아 원초적 거룩함을 상실한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이 조성한 거룩한 산, 에덴에서 살아가는 주민으로서의 위상을 박탈당했다. 에덴은 하나님의 천상 회의의 지상적 구현을 위해 마련된 특별한 장소이다.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왕적인 동시에 제사장적 사명을 부여받았던 아담과 이브는 죄인인 채로 에덴의 주민이 될 수 없었다. 죄인으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영생하는 것은 영원한 저주가 되기 때문이다. 죄의 삯으로 받게 된 그들의 사망은 확실히 불행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죽음을 통과하여 구원에 이르는 회복의 가능성이 인간에게 주어졌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메시야를 통한 구속(救贖, redemption)은 인간이 그리스도처럼 죽음을 통해 영생에 이르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길이다. 그 구원자 “여자의 후손”이 오기까지 아담과 이브는 이 땅에서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신정의 지도자(theocratic leader)가 되어야 했다. 그들은 에덴의 동쪽으로 추방되어 서편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임재의 소망을 가진 왕 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야 했다. 그러나 죄의 파괴적 영향은 아담의 아들 가인에 이르러 살인사건으로 증폭되었고, 죄는 가인과 그의 후예가 세운 에녹성이라는 세속 도시를 세움으로 확대 재생산된다.
1. 가인이 “제사장적 왕”의 모형을 상실하다.
아담과 이브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녀를 주셨다. 죄의 침투와 상관없이 첫 부부를 통한 인간공동체의 형성이라는 사명은 회수되지 않았다. 온 인류는 한 가족으로 지음을 받았고, 한 가족으로 지어진 인간공동체는 하나님의 어전회의의 구성원이 되어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이루는 존재가 되어야 했다. 그러나 거룩한 산 에덴은 불 칼을 든 그룹에 의하여 접근이 거부되었고, 에덴의 동쪽에서 살아가는 아담과 이브는 하나님의 신정정치를 이루며, “왕 같은 제사장”(royal priesthood)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명을 유지해야 했다. [Michael Rhodes, Just Discipleship (Downers Grove: IVP, 2023), 김진선 역, 『그리스도인의 정의란 무엇인가』 (서울: 디모데, 2024), 39-40.] 이러한 사명은 신정의 완성은 아닐지라도,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메시아적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이는 곧 여인의 후손을 통한 사탄의 패퇴와 함께, 제사장적 왕권을 회복, 완성함으로 인간 구원의 위상을 회복하려는 것이다.
“제사장적 왕”(priestly king)으로 살아가는 삶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예배와 세상을 향한 문화의 창조이다. 이는 거룩한 산에서 이루는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는 것과 함께, 사명에 순종하는 직업적 다스림으로 문화창조를 완수하는 것이다. 가인과 아벨은 이러한 면에서 예배와 직업을 통한 두 가지 측면을 감당하는 사역자들이었다. 가인은 농업을 통해서 땅을 다스렸고, 아벨은 목축을 통하여 동물을 다스렸다. 그들의 직업적 성실성과 전문성은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에 의하여 확보되어야 하는 사명이었다.
이 두 사명자 가인과 아벨은 한편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온전하여야 했고, 다른 한편으로 땅을 다스리는 사명을 통해서도 온전함을 드러내야 했다. 그러나 예배-삶에 있어서 가인과 아벨은 대조적인 상태가 되었음을 성경은 말한다. 가인의 예배는 열납되지 않고, 아벨의 예배는 열납되었다. [여기서는 예배의 방식이나 제물의 종류가 열납될 만한 예배를 결정하는 필수적 요소라는 논증하지 않는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가인의 삶 속에서 제사장적인 측면의 실패가 이미 도시 문명을 이루기 전에 드러났음을 말하려고 한다.] 가인은 아벨이 드린 예물이 열납되었으나, 자신의 제물이 열납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분노한다. 외견상 가인의 제사장적 왕으로서의 사명은 준수되는 것 같았지만, 실상을 그렇지 않았다.
가인이 “선을 행하지 않았다”는 하나님의 지적은 그의 제사 행위 보다도 그의 왕적 다스림의 삶이 악했음을 의미하고 있다. 하나님은 제사의 거부는 가인의 삶의 문제와 밀접한 연관이 있음을 암시하며 가인의 죄에 대하여 경고하신다(창 4:6-7). 그러나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성공적 예배를 드리는 아벨에 대하여 증오를 투사한다. 가인은 결국 그의 형제 아벨을 살해한다. 가인의 예배 실패는 삶의 실패와 관련되었고, 삶의 실패에 대한 하나님의 경고는 그의 회개로 열매 맺어야만 했다. 그러나 가인은 제사장적 삶의 측면에서 자신보다 나은 모형이라 할 수 있는 의로운 동생 아벨의 살해로 분노를 표출한다(요일 3:13-15).
아담과 이브의 장자인 가인으로부터 “제사장적 왕”(priestly king)의 사명은 훼손되었다. 최초의 살인자 가인에 의하여 아벨은 최초의 순교자가 된다. 제사가 거부되고 예배가 열납되지 않는 불의한 상황은 이후 홍수 이전과 이후의 시대에도 반복되어 발생하는데, 이는 예배가 단순히 일정한 시간에 드려지는 예식의 문제가 아니라, 삶의 전반에서 드려지는 삶의 예배, 곧 직업적 삶을 통한 의로운 삶의 열매와 관련되기 때문이다.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는 일은 왕적 사역이지만, 이는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삶의 예배, 곧 일상의 예배였고, 예식으로서의 제사장적 역할은 그의 왕적인 삶의 총화로 드려지는 의로운 삶의 표지, 즉 예배자의 삶의 결정적 관석(冠石, capstone) 혹은 종석(宗石, keystone)이라고 할 수 있다. 가인은 이웃을 사랑하고, 배려하며, 중보하는 제사장적 삶에서 실패자가 되었다. 그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악한 자” 사탄에 속하여 형제를 죽인 것이다(요일 3:12).
하나님은 아벨을 대신하여 셋을 후손으로 주심으로 왕 같은 제사장의 전통을 다시 모색한다. 셋의 후손과 가인의 후손은 각기 다른 문명을 일으키므로 대조적인 두 도시의 이야기가 역사 속에 시작된다. 이는 어거스틴에 의하면 “하나님의 도성”과 “땅의 도성”인데, 하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는 문명이며, 다른 하나는 여호와를 대신하는 우상과 인간 숭배로 도시의 영성을 이루는 문명이다. 가인에 의한 형제 살해의 험악한 전통은 하나님의 심판을 낳는다. 그 심판의 엄중함에 대한 대안은 가인과 가인의 후예에 의하여 에녹성이라는 도시의 설립을 낳는다.
이 최초에 세운 도시에 의하여 거룩한 산에서 예배하는 전통과 하나님을 배제한 세속적 도시의 운명이 갈리게 된다. [하나님의 산, 하르 마겟돈의 전통은 인간의 문화적 흔적이 공존하는 도시의 문명과 양립한다. 예루살렘은 산의 전통과 왕이 다스리는 도시의 전통이 만나는 장소이다. 새예루살렘은 이러한 관점에서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을 잇는다. 원래 하나님의 계획은 에덴이라는 거룩한 산이 인간의 문명으로 충만한 도시가 되는 소망에 기반을 둔 것이었는데, 이는 종말에 이르기까지 바벨론과 예루살렘으로 나누이다가 결국 새예루살렘의 영광으로 완성된다. 이를 대조시켜 서술하는 자끄 엘륄의 저작과 메리디스 클라인의 다음 저작을 참고하라. Meredith Kline, God Heaven and Har Magedon: A Covenantal Tale of Cosmos and Telos, 이수영 역, 『하나님 나라의 도래』(서울: R&R Korea, 2010); Jacques Ellul, The Meaning of the City (Grand Rapids: Eerdmans, 1970), 최홍숙 역, 『도시의 의미』 (서울: 한국로고스연구원, 1992).]
가인은 에녹성의 건설자, 인류 최초의 도시의 건설자이다. 여기서 도시의 건설은 거룩한 산의 전통에서 분리된다. 예배는 권력의 현장에서 분리되고, 성전은 왕국의 궁전으로부터 소외된다. 도시의 수호신으로 여겨지는 우상의 문명은 여호와 하나님을 대신하고, 세속화된 신들은 유일하신 하나님을 대치한다. 더구나 그 도시의 건설자들은 인간이 만들어낸 새로운 수호자인 신 우상을 만들어내거나, 아니면 신을 선택하거나 신을 죽이고 자신이 신이 된다. 이러한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한 반역적인 인간의 문명이 가인과 가인의 후손에 의하여 건립된다. <계속>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목사,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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