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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완전함은 인생의 기본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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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뉴스M| 작성일2022-09-16 | 조회조회수 : 6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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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봉 목사, 아틀란타 컨퍼런스에서 목회의 고민과 희망 제시



[뉴스M=편집부]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를 고민하는 목회자들을 위한 멘토링 컨퍼런스가 아틀란타에서 뉴스M 주최로 열렸다. 


아틀란타새교회(조영천 목사)에 열린 컨퍼런스에는 와싱톤 사귐의교회 김영봉 목사가 강사로 참여했다. 김영봉 목사는 ‘불완전함을 품는 목회'라는 주제로 1시간여의 강의를 진행했다. 


김 목사는 이번 강의를 통해 자신의 사역의 여정을 소개함과 동시에 그 기간동안 느꼈던 목회의 한계와 어려움도 함께 나눴다. 또한, 목회는 영적 생활의 완전함이 아니라, 성숙함이 되어가는 과정에 있다고 언급하면서 목회와 인생의 ‘불완전함을 품고' 소망을 가지고 한발 한발 나아가자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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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봉 목사가 아틀란타새교회에서 열린 목회자 컨퍼런스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우선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불완전함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목회의 여정과 함께 스스로 추구했던 목회의 가치에 대해 소개했다. 김 목사는 ‘교회의 본질을 실현한 좋은 믿음의 공동체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목회를 시작했다고 언급했다.     


목회를 하면서 시간이 갈수록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느낀다. 자신에 대해서도, 교회에 대해서도, 세상에 대해서도 그렇다. 불완전함이란 말은 연약함, 죄성 등이라고 말 할 수 있다. 50대까지는 이런 컨퍼런스를 의욕적으로 했는데, 이쯤와서 돌아보니 헛된 자신감이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저는 1992년부터 2002년까지 협성대학교에서 신약학을 가르쳤다. 그리고, 2002년에 안식년으로 드류신학교에 왔고, 그 해에 학교를 사임하고 파송 신청을 했다. 뉴저지 해변가에 있는 작은 백인교회에 파송해서 2년동안 목회하고, 2005년에 동부에서 역사가 제일 깊은 와싱톤한인교회에 파송되어 11년간 목회를 했다. 그리고, 2016년부터 2017년 1년동안 준비해 지교회를 시작했다. 3년 안에 독립시킨다 하는 계획을 가지고 했는데 잘 되지 않았다. 교회가 계속 어려움을 겪었다. 본교회에서는 이 곳을 닫자는 의견이 있었다. 그래서 제가 가겠다는 의견을 교단에 말하고 지금까지 사역하고 있다. 현재는 은퇴를 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 


저의 일관된 관심은 제가 바로 사는 것이고, 바른 믿음의 공동체를 세워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교회의 본질을 잘 실현한 좋은 믿음의 공동체 하나를 세우는 것이 대단한 신학서적 하나 쓰는 것보다 훨씬 가치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신학교에서 가르칠 때 학생들이 종종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런 교회를 어디서 볼 수 있겠습니까?” 실제로 그런 것이 구현되는 현장을 만들면 그게 하나님 나라에 더 가치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지금까지 노력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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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봉 목사가 아틀란타새교회에서 열린 목회자 컨퍼런스에서 강의를 하고 있다.


그는 ‘목회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목회가 한계점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했다. 특히 그는 스탠리 하우어워스가 말한 ‘교회됨'(community of character)을 실천한 목회를 하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음도 인정했다. 


우리는 신앙과 목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일어나는 위기상황에 와있다. 평신도들도 팬데믹 때문에 2년 넘게 교회 밖에서 자기를 객관화 시키다 보니, ‘내가 뭘 믿고 있는거지?’, ‘교회란 뭐지?’, ‘목사는 뭐지?’ 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면서 교회를 떠날 것을 고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교계의 상황도 그렇다. 어떤 행사에서 ‘교회는 세상의 희망이다'라는 현수막을 걸었던 것을 보았다. 그걸 보면서 저는 정말 그럴까? 그런 교회가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하였다. 


2016년에 40여명 남은 지교회로 떠날 때 제 마음은 11년동안 대형교회에서 허둥대면서 헤맸으니까, 이제는 차곡차곡 공동체를 쌓아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성장을 제한할 조치를 취했다. 작은 교회처럼 가려고 했다. 교인수를 키우기보다는 스탠리 하우어스가 말한 커뮤니티 오브 캐릭터(community of character)를 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6년 후인 지금에 보니 그렇고 그런 교회가 되버렸다. 


이유를 생각해봤다. 우선 목회자로서 여전히 아마추어인 저의 한계가 있었다. 저는 신학공부 끝나고 신학교수 하다가 목회 현장에 들어왔기 때문에 지금도 아마추어이다. 목회자로서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자주한다. 


두번째로 목회는 인격처럼 자율성을 가진 존재라는 점이다. 교회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모든 교인을 다 환영해야 하고, 신앙적인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에게 일률적인 기준을 요구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 가졌던 기준을 타협해야 했다. 


세번째로 공동체는 나름대로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몸처럼 말이다.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한 것처럼 교회는 몸이 맞다. 나와 교인들이 노력했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내가 지향했던 이상과 내가 처한 현실의 괴리가 있었다. 나의 역량의 한계 때문에 어려웠다. 


김 목사는 ‘불완전함'을 인생의 기본값으로 정의하면서, 목회자들은 이러한 생각을 자주 잊어버리며 산다고 지적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을 ‘already, not yet’이라고 정의하면서 인간은 새하늘과 새땅이 올때까지 완전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불완전함은 인생의 기본값이다. 성서에서도 확실하게 이야기했음에도 우리는 그것을 자주 잊고 산다. 스티븐 호킹이 “우주의 기본 법칙 중 하나는 완전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목회자들은 이상을 향해서 바라보고 가다보니 이 사실을 자주 잊어버린다. 그러다보니 나 자신에게, 교인에게, 교회현장에 뭔가 완전한 것을 보고 싶어하는 그런 비현실적인 소망을 가지고 있다. 목회자들은 ‘이만하면 충분하다'는 그런 결과물을 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교회 제대로 해보겠다는 의욕을 가진 목회자일수록 그런 열망이 크고, 그럴 수록 실망도 크고, 번민도 크다. 


그리고, 외형적으로 성장하고 외형적으로 잘되는 것이 영적으로는 아주 위험하다. 눈에 보이는 것으로 내가 잘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만든다. 저도 대형교회에 있는 동안 많이 그런 착각을 가진 적이 있다. 


왜 그걸 자주 잊을까? 인간의 본성을 자주 잊을까? 아마 기독교 신앙의 핵심 중의 하나는 ‘already, not yet’(이미, 그러나 아직)이라는 종말론적 긴장감. 그런데 이 긴장감이 오래되면 피곤해진다. 그건 새하늘과 새땅이 올때까지는 완전할 수가 없다. 그래서 이 긴장감이 오래되면 힘이 든다. 


새하늘과 새땅이 오기전까지 내가 할 일은 이걸 영영 떨쳐버리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함을 품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바꾸면 지금 우리를 괴롭히고 있는 두려움, 염려로부터 풀려날 수 있다. 불완전하지만, 여전히 소망을 가지고 한걸음 한걸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브렌 브라운의 <불완전함의 선물(The Gifts of Imperfection)>을 보면 내 삶의 ‘진정성'은 ‘내가 바로 살고 있구나’를 말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진정성은 우리가 되고 싶어하는 모습을 내려놓고,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는 매일의 노력을 통해 확보할 수 있다. 진정성을 선택한다는 것은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바운더리를 정하고, 우리 자신을 위험에 노출 시킬 수 있는 용기를 개발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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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란타새교회에서 열린 목회자컨퍼런스에서 참석자가 발언을 하고 있다.


그는 영적 생활의 목표는 완전함이 아니라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그 성숙함은 모두가 다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고 언급했다.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족과 감사의 마음을 배우고, 서로를 은혜로 품게 만들어 줄때 성숙함의 과정은 시작된다는 것이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같이, 너희도 완전하여라”(마 5:48)고 하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불완전함을 누구보다 잘 아셨다. 그래서 <주기도>에 죄 용서에 대한 기도와  시험으로부터의 보호를 구하는 기도를 포함시키셨다. 그런 분이 우리에게 완전해지기를 추구하도록 명하실 리가 없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유진 피터슨이 이 구절의 의미를 제대로 번역했다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내 말은, 성숙한 사람이 되라는 것이다. 너희는 천국 백성이다. 그러니 천국 백성답게 살아라. 하나님이 주신 너희 신분에 합당하게 살아라.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하시는 것처럼, 너희도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너그럽고 인자하게 살아라”(메시지 성경).


역설적이지만, 성숙한 사람이 된다는 말은 세상과 인간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신앙적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선한 창조가 깨어졌다는 사실과 인간이 죄성으로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동시에 그 불완전함이 원래의 상태가 아니었다는 사실 그리고 장차 완전함이 하나님에 의해 회복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다. 그럴 때 우리는 자신을 제대로 보게 될 것이며, 이웃과 다른 생명을 자비로 대할 수 있다. 자신에게도, 다른 누구에게도 완전을 요구하지도, 기대하지도 않고, 서로의 불완전함을 품고 함께 살아가며 자라기를 힘쓴다.


이것이 팬데믹이 우리에게 준 선물 중 하나다. 팬데믹 만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영역 중에 어느 분야에서도 완전한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내 안에 있는 불완전함을 먼저 겸허히 인정할 일이다. 그럴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자비로 대할 수 있고, 그 때에야 비로소 은혜가 들어올 자리가 생긴다. 우리의 믿음은 우리 실존의 기본 조건인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자족과 감사의 비결을 배우며 서로를 은혜로 품게 만들어 주는 것이어야 한다.  


그는 최근의 세계사, 정치사적 관점으로 볼 때도 인간의 불완전성이라는 실존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한국의 20대 대통령 선거 등을 보면서 인류의 지속 가능한 평화 정착이나 정의로운 민주주의의 실현은 인간의 탐욕앞에서 무용지물이었다고 한탄했다. 하지만, 김 목사는 인간과 세상이 불완전해질 수록 목회는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는 1990년대, 영구할 것 같았던 냉전 체제가 급속하게 녹아 내리고 소련 연방이 해체 되는 것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인류가 드디어 전쟁 없는 평화의 시대로 접어 들고 있다고 생각했다. 몇몇 국지전이 있었지만, 우리는 반 세기 우리는 세계 전쟁이 없는 평화의 시기를 지나 왔다. 잘만 하면 인류는 지속 가능한 평화를 정착시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푸틴의 우크라니아 침공은 그러한 섣부른 기대와 환상을 와르르 무너뜨렸다.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으며, 인간의 권력욕은 기회가 주어지기만 하면 언제든지 야만성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나는 또한 역대 최악의 비호감 대선이라는 조국의 20대 대통령 선거를 보면서 인간이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이며 인간이 만든 제도와 시스템이 얼마나 허점이 많은지를 목도했다. 


이러한 자각과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우러르게 만들어 준다. 불완전한 세상을 살고 있는 불완전한 존재로서 우리에게 소망의 이유가 있다면 창조주이시며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통치하고 계시다는 사실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성을 잃어버린 인간과 깨어진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시고 여전히 다스리신다.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현실 속에서 하늘을 우러르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이 모든 불완전함을 치유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어 주실 것이라는 종말론적 희망 때문이다. 진정한 의미의 종말론적 신앙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소망을 마음에 품고 불완전하고 불의하고 때로 불행한 현실 안에서 공동선을 위해 일하고 헌신하게 한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인간과 세상의 불완전함이 심해질수록 목회는 더욱 중요해진다. 목회는 인간과 세상의 불완전함을 치유하는 가장 유효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To Make Disciples of Jesus for the Transformation of the World”라는 연합감리교회의 비전 선언문이 목회의 핵심을 잘 요약해 놓았다.  이 비전 선언문은 “세상을 변혁시키기 위해 예수의 제자를 만든다”고 번역할 수도 있고, “예수의 제자를 만들어 세상을 변혁시킨다”고 번역할 수도 있다. 신학적으로 본다면, 후자가 더 적절하다. 기독교 신앙의 궁극적 목적은 세상을 변혁시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궁극적인 목적은 마지막에 임할 새 하늘과 새 땅이다. 


목회의 초점은 한 영혼 한 영혼을 그리스도께 인도하여 제자로 삼고 제자 공동체를 형성하는 데 있다. 이런 점에서 “그리스도인이 참된 그리스도인 되는 것 그리고 교회가 참된 교회 되는 것이 세상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공헌이다”라고 했던 스탠리 하우어워즈의 말은 진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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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 컨퍼런스에서 강의 내용에 대한 소그룹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는 컨퍼런스에 참가한 목회자들에게 ‘불안함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불완전함을 품고 그 불완전함을 넘도록 힘쓸 때 불완전한 세상을 견디고, 불완전함을 치유하는 첫걸음이 된다는 것이다. 목회는 ‘불완전한 존재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불완전함을 극복해 나가도록 돕는 일'이라고 정의하며 매일 제자로서 자신을 깨우고, 제자로 살아가도록 교인들을 도와야 함을 강조했다. 


제자는 어떤 프로그램이나 시스템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2천 년의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완제품 제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바울, 어거스틴, 프란시스, 루터, 웨슬리, 칼빈 같은 사람들도 완제품으로 살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은 제자됨의 과정에 있는 존재다. 제자 훈련에 있어서 한국 교회의 대표자라 할 수 있는 옥한흠 목사도, 미국의 대표자였던 빌 하이벨즈 목사도 자신들이 공들였던 30년의 제자 훈련이 실패했다고 자인했다. 빌 하이벨즈 목사는 그 자신부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실패했다는 사실을 추한 스캔들로 증명했다. 제자로서 완성되었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그리스도인은 넘어지게 되어 있다. 


목회는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존재들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어 불완전함을 극복해 나가도록 돕는 일이다. 이 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목회자 혹은 교회 지도자들이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이다. 또한 완제품 제자를 만드는 것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고 매일 제자로서 자신을 깨우고 제자로 살아가도록 교인들을 도와야 한다. 


결국 기독교 신앙이란 불완전한 존재로서 숨이 다할 때까지 매일 성령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고 살아가는 과정이다. 도상에 있는 존재로서 자신의 현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매일 제자로서 살아가도록 서로 일깨우며 서로의 불완전함을 품고 그 불완전함을 넘어서도록 힘써야 한다. 그것이 불완전한 세상을 견디고 불완전함을 치유하는 첫 걸음이 된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 싸워야 싸움이다. 싸움은 어려운 것이다. 가치있는 싸움일수록 더 격렬한 법이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우리가 매일 싸우기를 원하기만 한다면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이기게 하신다. 그것이 우리의 희망의 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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