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 교수의 리바이벌 & 힐링 메시지] 봄이 열리는 계절에 진단해 보는 나의 믿음 (2) -수로보니게 여인과 젤렌스키의 애절한 호소- > 신학과 설교 | KCMUSA

[정준모 교수의 리바이벌 & 힐링 메시지] 봄이 열리는 계절에 진단해 보는 나의 믿음 (2) -수로보니게 여인과 젤렌스키의 애절한 호소- > 신학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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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준모 교수의 리바이벌 & 힐링 메시지] 봄이 열리는 계절에 진단해 보는 나의 믿음 (2) -수로보니게 여인과 젤렌스키의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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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정준모 교수| 작성일2022-03-18 | 조회조회수 : 2,130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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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로보니게 여인은 온전히 주님을 믿고 신뢰하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이 여인에게는 말할 수 없는 인생의 숙제와 고통이 있었습니다. 그 고통은 자신의 사랑하는 딸의 병이었습니다. 그 숙제는 의학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불치병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 병은 끔찍한 귀신 병이 들린 것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감히 공개하기 어렵고 부끄러운 흉악한 질병이었습니다.


    성경이 밝히길 이 병은 “귀신에 들린 병”, “흉악한 귀신에 들린 병”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능력의 한계를 표시합니다. 인간의 고통의 절정을 표현합니다. “연약한 여인으로, 사랑하는 딸이, 흉악한 귀신 병에 걸렸다.”라는 사실은 인간 당할 수 있는 최악의 고통의 표현이며 인간의 한계 상황 속에서 절망의 벼랑 위에 선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뜻하지 않게 고난의 벼랑 끝, 삶의 낭떠러지를 만나게 됩니다. 그 상황에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입니다. 낭떠러지로부터 떨어져 자멸하거나, 나래를 펴 창공을 나는 것입니다. “창공을 나른다.” 어떻게? “있을 수 있는 일일까?”


    절망의 벼랑 끝이 이 여인에게는 고통의 인생을 날아가게 하는 전화위복의 비행이 되었습니다. 이 여인은 절망의 벼랑 끝에서 자신의 몸을 던져 자멸하지 않았습니다. 그 여인의 고통은 오히려 기적을 경험하고 소원을 성취하는 비행을 위한 점프의 벼랑이었습니다. 하늘 날게 하는 절벽이었습니다. 번지 점프 끝에 단단한 줄이 달려있듯이, 주님께서 붙잡아 주시고 소망의 항구로 나아가게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여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녀가 막연하게 예수를 붙잡은 것 아닙니다. 그는 어설프게 주님을 의지한 것 아닙니다. 그것은 되면 되게, 안 되도 할 수 없지 하는 식의 반신반의 자세가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주님은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처럼 “우리의 고통을 담당하시고 우리의 아픔을 체휼하시고 우리의 인생의 영육간의 짐을 대신 짊어 주시고 우리의 아픔을 치유하시고 싸매주시는” 주님이심을 분명히 알고 그 주님을 철저히 신뢰하고 의존하고 자신의 인생의 짐을 온전히 다 주님께 맡겼습니다. 


    그녀가 절망의 벼랑에서 자멸하지 않고 전화위복의 창공을 나는 그의 소원이 성취되는 상황까지는 그리 쉽지 않은 과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 세계는 항상 장애물이 있기 마련입니다. 그 장애물을 끝까지 인내하면 견디는 자가 소원이 이루게 됩니다. 그 인내도 우리 주님의 인내, 하나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믿고 기다리는 인내를 가져야 합니다. 인간의 인내심은 항상 어려운 환경과 역경 앞에 한계를 드러내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이 여인은 침묵, 무시, 외면, 거절의 고통의 순간에 우리 주님의 사랑, 우리의 주님의 위로, 우리의 주님의 인격을 바로 알았기에 그녀는 인내하며 장애물을 잘 넘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또 다른 장애물이 있었습니다. 어떤 장애물입니까? 예수님의 침묵입니다. 여인의 절규, 여인의 아픔, 여인 고통 소리에 외면하시는 주님. 한 말씀도 하지 아니하시는 주님은 절망 야속하기 짝이 없었습니다(23절). 예수님의 냉담입니다. 24절에 자신은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을 찾기 위해 온 것이지 이방인을 위해 오지 않았다며, 냉담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정말 주님의 사랑, 주님의 자비, 주님의 긍휼을 의심나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침묵은 그녀의 믿음을 향상시키는 것이고 그녀의 진실한 믿음을 판명하는 주님의 차원 높은 훈련의 순간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님이 하시는 훈련의 순간과 시련의 순간에 인간은 더 철저히 고통당하고 인생의 상황이 더 어두워질 수 있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또 주위에 그녀의 믿음의 진로에 방해와 장애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제자들의 거절입니다. 고통 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조금도 동정이나 위로는커녕 시끄럽다고 떼어버리는 제자들입니다(마 15:23). 주님에게 나아가는 자를 오히려 주님으로부터 갈라놓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주님께 나오고 싶지만 주님 따른다고 하는 제자들, 신앙인들이 더 장애가 되고 더 짐이 되고 더 고통이 될 경우를 봅니다.


    오늘날 주님 찾아 목장에 나오고 주님 찾아 교회에 나오고 주님 찾으려는 가족이 있고 직장 동료가 있지만 오히려 먼저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주님께 더 가까이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혹시 우리는 우리가 믿음의 사람들의 믿음의 행보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는가 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고부간의 갈등, 부자간의 갈등, 직장 동료 간의 갈등, 교인 간의 갈등, 인간관계, 이해관계, 금전 관계 등 주님을 찾는 영혼들의 앞길을 가로막지는 않는가 등에 대해서 조용히 자신을 성찰해 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의 어리석은 행동, 냉혹한 방해, 무자비한 처신이 그녀의 내면에 주님께 향하는 신앙의 불꽃을 제어할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 장벽과 장애를 극복하기 위하여 더 큰 소리로 주님을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그녀는 그녀를 당혹스럽게 만들었던 주님의 침묵, 주님의 냉담, 제자들 거절의 상황 속에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키에르케고르의 언급처럼 “절망은 참으로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 절망은 신앙인에게 최대의 적이요 원수입니다. 우리에게 당면한 인생의 숙제와 난제, 좌절과 절망을 믿음으로 이기고 극복해야 함을 이 여인을 통하여 배울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절망의 벼랑 끝에서 날개를 달게 된다는 진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절망의 벼랑에서 이 여인은 좌절하지 않고 주님 앞에 나와 절했습니다(마 15:25). 그녀는 주님께 절하며 간청했습니다. 그리고 “주여 저를 도우소서”하며 애절하게 부르짖는 여인의 진실되고 간절한 모습이 귀감이 됩니다. 마치 오늘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화상으로 미국 상하원에게 “우크라이나를 도우소서” 호소했던 화상 상의 그의 애절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3부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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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소개: 


    정준모 목사는 선교신학박사(D.Miss)와 철학박사(Ph. D)이다. 전 대한예수교 장로회 총회장, CTS 기독교 텔레비전 공동대표이사, GSM 총재, 총신대학교 개방, 교육 재단이사, 백석대학교대신대학교 교수 역임, GMS(세계선교이사회) 총재 등을 역임했다. 현재로는 현 GSM(선한목자 선교회) 고문, 콜로라도 말씀제일교회 담임, 국제개혁신학대학교 박사원 교수, 국제 성경통독아카데미 대표, 콜로라도 타임즈, 뉴스파워, 좋은신문, KCMUSA 칼럼리스트, 대표 저서, ≪칼빈의 교리교육론》, ≪개혁신학과 WCC 에큐메니즘》, 《장로교 정체성》 등 다수가 있다. 상담 및 집회인도 연락처 719) 2484647, jmjc31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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