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 제2장 “하나님의 아들들”의 타락과 대홍수 –II.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인간학적 해석과 그 문제점 > 신학과 설교 | KCMUSA

[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 제2장 “하나님의 아들들”의 타락과 대홍수 –II.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인간학적 해석과 그 문제점 > 신학과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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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 제2장 “하나님의 아들들”의 타락과 대홍수 –II.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인간학적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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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CMUSA| 작성일2025-02-21 | 조회조회수 : 65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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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인간학적 해석과 그 문제점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에 대한 해석은 다양한 패러다임이 공존하며 갈등하는 상황으로 여겨진다. 다수의 격돌하는 패러다임 속에서 최근까지 다수에 의하여 전통적으로 가르쳐지고 수용된 패러다임은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인간학적 해석, 즉 셋 족속 패러다임과 신격화된 왕 패러다임이다. 이러한 이론이 가진 설명력은 무엇이며 그것이 가진 장단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이에 대한 정치신학적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자. 


1. 셋 족속 패러다임과 이에 대한 비판


“하나님이 아들들”(브네이 하엘로힘)이 경건한 셋 족속의 후손이고 “사람의 딸들”(브노트 하아담)이 불경건한 가인의 후손이라는 해석은 이 시대에 통용되는 가장 보편적인 해석이다. 이 견해는 아담과 이브로부터 나온 후손들을 가인의 후예와 셋의 후손으로 나누어, 이들이 각기 대조적인 문명의 창조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가인의 후예는 도시 문명을 일으켰으며 그것으로 자신을 방어하고 타인을 압도하는 권세를 가진 자로 역사에 등장했으나, 셋의 후손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예배자로 경건한 문화를 유지해왔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세기 6:1-4의 핵심적 주장은 경건한 계보에 속한 사람들이 세속적인 사람과의 통혼을 통해서 경건함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했다는 것이다. [Heiser, Unseen Realm, 『보이지 않는 세계』, 164.]

 

이러한 해석의 장점은 창세기 6장의 사건을 그 이전 창세기 4, 5장의 사건과 관련된 맥락에서 해석한다는 점이다. 창세기 6장의 결정적 사건이 벌어지기 전에, 4, 5장은 문맥상의 비약 없이 그 배경을 제공한다. 창세기 4:16-24에서 가인의 후예들로 구성된 족보가 소개된다면, 4:25-26과 이에 이어진 5:1-32에는 셋의 후예로 구성된 족보가 소개된다. 창세기 6장의 내용은 그러므로 바로 창세기 4-5장의 족보와 관련되어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한다. 창세기 4:16-24에 소개된 가인의 후예가 세속적인 도시 문명을 건설한 사람이라면, 4:25에서 5:32에 이르는 셋의 계보에 속한 사람들은 전자와는 대조적인 경건한 자들로 간주된다. 여기서 셋의 후손에 해당하는 아들들은 “하나님의 아들들”로 간주되며, 이들은 가인의 계보에 속한 불경건한 여자들인 “사람의 딸들”과 결혼함으로 영적인 부류와 세속적인 부류 사이에 금지되었던 무절제한 통혼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Victor Hamilton, Handbook on the Pentateuch (Grand Rapids: Baker, 2005), 강성열ㆍ박철현 공역, 『오경 개론』 (고양: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2007), 75.]

  

이러한 주장은 가인과 셋의 후예에 대한 구별된 서술에 뒤이어진 6장에 이르러 결국 두 종류의 문화를 구별하지 않으므로 문화의 혼재되기 시작했다고 간주한다. 6장에는 더 이상 가인 그리고 셋의 후손 사이의 구별이 사라지는데, 이러한 주장의 지지자들은 이것이 바로 대홍수 심판의 결정적 이유라고 해석한다. 물론 모든 셋의 후손은 다 성결하고 가인의 후손은 모두 타락한 존재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또한 셋의 후손은 모두 아들이고, 가인의 후손을 모두 딸이라고 볼 수도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셋의 후손에서 대표성을 가진 남자들이 가인의 후손에서 난 여인들의 아름다움에 유혹되어서 하나님을 모를 뿐 아니라 악한 문명에 압도된 사람들의 일부다처제 풍습을 수용하게 되었다고 간주한다. 이러한 견해는 출애굽 시대의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방 신앙과 문화를 가진(출 34:16; 신 7:3) 가나안 여인을 취하였기 때문에, 심판을 당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라고 본다. 그러한 이유로 하나님께서 특별히 믿음의 청년들이 가나안의 딸들과의 통혼하는 것을 금지했다. [https://equip.sbts.edu/article/the-sons-of-god-in-genesis-6-sons-of-seth-fallen-angels. William F. Cook, “The Sons of God in Genesis 6: Sons of Seth, Fallen Angels or Something Else?” Southern Equip (February 11, 2022).]   

 

이러한 패러다임은 4세기 이후 어거스틴이나 16세기 캘빈에 의하여 대표된 이래, 개신교 전반에 이르는 특히 개혁교회와 복음주의의 주류를 이루는 해석학적 방법을 이룬다. [Michael Heiser, Reversing Hermon: Enoch, The Watchers & the Forgetting Mission of Jesus Christ (Crane: Defender Publishing, 2017), 10. ] 이와 유사한 견해는 랑게(Lange)나 카일(Keil)과 같은 주석가 및 워즈워드(John Wordsworth)와 같은 성공회 신학자에 의하여 지지되었다. 한국에서도 박윤선 교수 이외의 여러 성경신학자가 “하나님의 아들들”이란 말이 천사를 가르친다는 해석은 옳지 않다고 하였다. 그들은 천사론적 해석법이 문맥과 달리 인간의 타락사를 천사의 타락사로 바꾼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마이클 하이저와 다수의 현대 주석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셋의 후손과 가인의 후손과의 결혼이라는 해석법은 심각한 결함을 가진다고 주장한다. 첫째로 창세기 4:26에 의거하여 오직 셋 계보의 사람들만이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고” 나머지 사람들은 여기서 완전히 배제되었는지는 확인하여 말할 수 없다. 둘째, 이 견해로는 가까운 문장에서 이어지고 있는 “네피림”이라는 존재를 설명할 수 없다. 넓은 문맥의 고려라는 차원에서 주장된 견해가 가까운 문맥의 의미를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셋째, 이 일화에 등장하는 여자들이 “가인의 딸들”만을 의미하는지 결코 확정하여 알 수가 없다. 오히려 사람의 딸들은 가인과 셋의 후손을 포함한 온 인류에서 여성을 의미할 수도 있다. 넷째, 이 당시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이 없었고, 특정인과의 통혼이 금지되는 것과 관련된 어떠한 계명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홍수 이후의 해석학적 틀을 이전의 시대에 적용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다섯째, 창세기 6:1-4은 물론 성경 어디에서도 셋 계보의 사람들을 “하나님의 아들들”로 묘사한 구절이 없다. [Heiser, The Unseen Realm, 『보이지 않는 세계』, 165; Heiser, Reversing Hermon, 10-11.] 이러한 문제를 제기할 때, 셋 족속 패러다임을 통해 창세기 6:1-4을 해석하는 데는 많은 난관이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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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목사,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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