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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 IV. 세속도시에 대한 대안, 하나님의 도성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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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CMUSA| 작성일2025-02-13 | 조회조회수 : 57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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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갈등하는 두 도시 이야기  


거룩한 산을 중심으로 한 도시, 성전과 왕궁이 함께하는 도시,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이 거하는 도시, 제사장적 왕이 언약을 따라 통치하는 도시는 에덴이라는 집회의 산, “하르 마게돈”으로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기획이다. 여기서 이루어지는 신정정치의 이상은 하나님이 이루시려는 거룩한 나라의 모형이다. 하나님은 에덴을 다시 찾으신다. 그곳에서 이루시려고 했던 영광의 통치를 세상 속에서도 꾸준히 이루려 하신다. 성경의 신앙은 개인의 실존적 차원에서 마쳐지는 것이 아니다. 사사화(privatization)된 기독교나 개인주의적인 기독교는 하나님의 광대한 시각이 역사를 관통하는 총체적 이상을 묘사하기 쉽지 않다. 에덴동산은 단순히 목가적인 가족의 이야기가 아니다. 에덴은 열방을 향한 하나님의 도성을 실현할 원형적 도시(acropolis)로서 하나님의 도성의 이상을 향해 출발되었으며, 성전-궁궐로 발전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산이자, 인간이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는 총회의 산, “하르 마게돈”이었다. 

   

그러나 타락한 인간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기대하시는 도성, 에덴은 다시 회복될 것 같지 않았다. 여호와 하나님의 총체적이고 위엄있는 이상은 홍수 이전의 사회에서 무시되고, 에덴을 회복하려는 노력은 세속도시 에녹성에 의하여 압살되고, 대치되는 것 같았다. 에녹성의 타락한 영성 속에서 결혼의 계약이 파괴되고 살인을 노래하는 무자비가 인류의 역사를 관통하게 되었다. 폭력과 패역의 인간 역사는 세속화로 달음질했고, 홍수 이전 모든 도시의 역사는 마치 에녹성의 닮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러한 절망적 상황에서도 여호와는 역사를 심판하시고, 그 이후 다시 아라랏 산에서 인류의 조상 노아를 위시한 새로운 언약의 출발을 허락하신다. 인간의 역사가 일관되게 노아, 아브라함과 모세의 인도함을 받는 이스라엘로 평탄하게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은 도성은 하나님의 변치 않는 공동체적 대안이자 정치적 이상으로 하나님의 관심사 속에서 발전된다. 따라서 도시의 역사는 하나님의 도시와 세속도시의 이중적 모습으로 발전된다. 성전-왕궁-도시의 역사는 신전-왕궁-도시의 모습과 함께 이중적 발전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이는 두 종류의 도시 역사, 하나님의 도성과 땅의 도성과의 분열과 평행적으로 발전하는 것으로 조망된다. 이러한 평행적 발전이 바로 홍수 이후 현재에 이르는 역사가 보여주는 두 종류의 갈등하는 도시의 이야기이다. 

   

홍수 이후 하나님의 도시를 향한 섭리가 진행되는 동안 먼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세속도시의 또 다른 대표는 고대의 바벨론이다. 에녹성은 바벨론의 전신(前身)이며, 바벨론은 에녹성의 후신(後身)이다. 니므롯에 의하여 세워진 바벨론은 “온 땅을 채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흩어지기를 면하기 위해” 바벨탑을 건축하는 하나님의 명령에 저항하는 의도를 가지고 세워진 문명이다. 메리디스 클라인은 다음과 같이 니므롯과 당시 사람들의 반역적 정신을 집약한다. 


바벨은 하나님께 대항하는 서로 다른 인류 각파들이 연합을 이룸으로 ‘흩어지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역전시키기 위해 취해진 시도였다. 그러나 바벨은 허위 명분의 구심력을 가진 도성이었다(a pseudo-focus city). 그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이루기 위한 시도였다. 그래서 그 상표는 ‘인간이 만듦’(Made-by-man)이라는 상표였다. ... 그것은 인간을 우상화하는 작업이었다. 인간의 도성을 새롭게 하여 인간을 숭배하는 것으로 만들어서 하늘 도성을 설계하시고 지으신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이었다. [Kline, God, Heaven and Har Magedon, 『하나님 나라의 도래』, 159.] 

 

사사화된 신자들과 개인주의적 신앙이 하나님의 도시 공동체의 이상을 이룰 수 없는 것처럼, 인간과 자연물을 거짓 신 우상으로 섬기는 도시 또한 기독교적인 이상을 이룰 수 없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모욕하는 문명,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거대한 지구라트(ziggurat)를 쌓는 것으로 신을 끌어내리거나 강림하게 만들 수 없다. 그들은 신을 강림시키며, 일어나지 않을 홍수를 두려워하며, 홍수에 대한 인위적인 대비를 평안과 안전을 가져오는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실행하였다. 바벨탑 위에 세워진 신전은 우상의 신전이었고, 인간의 의도에 응답하도록 고안된 우상이었다. 하나님은 정과 끌이라는 도구를 대지 않은, 즉 인위적인 것 아닌 하나님의 산에서 말씀하신다. 


V. 맺음말 

   

2010년대 초반 그리스의 아테네를 찾았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소크라테스의 숨결이 있는 곳, 아레오바고 법정의 바울의 변증이 있는 곳, 그리고 아테네 사람들의 모임과 국가의 운명을 결정하는 직접 민주정치의 토론이 있던 곳, 위대한 민주정치의 지도자 페리클레스의 연설과 그 숨결과 흔적이 있는 곳, 그곳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그러나 현대인들 대부분이 잊고 있는 이 장소에 중요한 특징이 있다면, 그 장소가 다분히 정치적인 장소일 뿐 아니라 종교적인 장소라는 것이다. 아테네의 가장 중심 장소, 높은 곳에는 신전이 있었다. 

   

아크로폴리스를 방문하기 전날 밤, 아크로폴리스 광장 아래에서 몇몇 친구들이 올려다본 곳은 외부 조명에 의하여 신비롭게 빛나고 있는 파르테논 신전이었다. 이튿날 올라가서 본 다른 신전은 니케(Nike) 신전 등이 있었다. 요새인 성채와 신전의 복합적 단지 즉 콤플렉스(complex)는 아테네나 고린도나 신정적 장소라는 면에서는 마찬가지였다. 고린도의 남쪽 산에도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성이 있고 그곳에도 신전과 요새가 있다고 했다.

   

에덴은 인간의 고향이다. 에덴의 동쪽으로 쫓겨나서 살던 사람들은 서편 집회의 산, 에덴을 바라보며 살아야 했다. 에덴의 동쪽에서는 범죄가 일어났다. 하나님을 거역함으로 하나님과 같이 되려 했던 사람들은 형제이자 이웃인 사람을 거역하고 죽이는 인간이 되었다. 형제 살해, 부친 살해에 이어 자매에 대한 성적 폭력과 결혼의 도구화를 통하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습을 점차 상실해 갔다. 에덴 곧 성전과 왕궁이 함께하는 도시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인간은 결국 슬픈 심판을 마주하게 되었다. 대홍수는 하나님의 눈물이다. 땅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고 후회하시고 근심하시면서 행하신 심판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 사실상 하나님 자신에 대한 심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의 타락을 종식시키기 위하여,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의 아들을 여자의 후손으로 보내신다. “여자의 후손”으로 다시금 왕 같은 제사장의 통치를 인간 속에 다시 이루려고 하셨다. 성전-왕궁의 이상적 도시, 하나님의 도성을 건설하려고 그는 계획하셨다. 모든 이전의 패역하고 타락한 문명을 오직 자신의 눈물로 씻으시고, 새로운 출발을 위하여 세속도시의 흔적을 지상에서 지우시기를 원하셨다. 

   

모든 문명은 물속으로 들어갔다. 문화적 산물은 “오파츠”(ooparts) [오파츠(ooparts)는 “out of place artifacts”의 줄임말로서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유물” 혹은 “분류와 설명이 불가능한 문화적 산물”을 말한다. 고생물학, 고고학, 역사학에서 분류나 해석이 어려운 문화적 산물들을 말하는데, 종종 일반 고고학계나 역사학계 혹은 생물학계에서는 당혹스러워하거나 무시 혹은 거부하려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석탄층 속에서 발견된 은제 꽃병과 철제 솥, 그리고 정교한 철제 기계 부속품이나 지층에서 화석과 함께 발견된 망치 등이 있다. 많은 문화적 산물이 퇴적층에서 화석과 함께 발견되는 경향이 있다. 이는 홍수 이전에 인류의 문명이 고도의 상황에 이르렀음을 보여주는 예로 사용되기도 한다.]가 되어 지층 속에 감춰졌다. 그 무성하던 식물들은 석탄이 되었고, 수많은 유기체는 지층 속의 원유가 되었다. 고도의 문명과 기술은 퇴적암 속에 감추어졌으며, 노아의 후손들은 새로운 문명을 처음부터 새롭게 성취하여야 했다. 그들의 기억 속에 있는 서편 에덴을 그리워하며 제단과 성막에서 제사 지내며 예배하는 전통을 이어받았다. 그들은 성전을 지으며 거룩한 도성을 설계할 때마다 동편으로 들어가서 서편을 향하게 되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의 동산, 거룩한 산과 집회의 산을 바라보며 왕 같은 제사장의 삶을 회복하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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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목사,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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