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 제2부 4장 V. 나가는 말: 그때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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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 나가는 말: 그때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여호수아와 사사시대는 이스라엘이 국가로서 형성되는 과정이다. 이집트에서 나온 하나님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여 나라를 세우는 과정에서 땅을 차지하는 정복 전쟁이 벌어지는 시대였다. 여호수아 장군을 중심으로 하여 가나안 땅의 거민들과 싸우는 데 있어서, 하나님은 용사이자 왕으로서 전쟁에 개입하셨다. 거룩한 전쟁을 통하여 땅을 정복하고 분배하며, 이스라엘은 여호수아의 영도력을 통해 국가로서의 제도를 점차 갖춘다. 여호수아 시대 이후에 사사시대가 펼쳐지면서 가나안 땅을 방어하는 전쟁이 지속된다. 사사는 이러한 시대의 군사적 지도자로서 활동하였고, 이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용사로서 거룩한 전쟁에 개입하시므로 이스라엘을 이끄셨다.
여호수아와 사사시대의 정치적 특성은 신정(神政)에 있었다. 하나님은 왕이 되어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백성은 입법자이신 하나님의 법, 율법을 따라 복종하면서 살아야 했다. 가나안에 세워진 하나님의 나라는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적 정치적 엘리트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통치와 법 아래서 압제와 결핍 없이 살아가는 이상적인 국가였다. 사사시대의 특징은 “그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삿 17:6, 18:1, 19:1, 21:25)는 점에 있었다. 당시의 중근동의 일반적인 정치적 스타일과는 다른 나라의 압도적인 왕권과 억압적인 정치체제와는 상관없는, 세금도 없고 징병제도도 없는 느슨하게 구성된 12지파 연맹이 자율적인 통치, 비교적 평등한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나님의 종으로 불린 여호수아와 사사들의 카리스마적 지도력을 통하여 공동체를 다스렸으나, 누구도 세습적인 왕가를 형성하여 이스라엘을 통치하려는 의도는 강력하지 않았다.
강력한 토지 중심의 자영농과 목축업 종사자로 구성된 자발적 공동체가 율법을 지키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동안, 가나안 땅의 주민들이나 주변의 민족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압도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여호와 신앙을 상실하면서 율법에 기반한 민족 공동체의 예지(叡智)는 사라졌다. 그들이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면서 주변의 이민족은 점차 이스라엘을 억압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그 땅에 사람들은 율법을 떠나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였다”(삿 17:6, 21:25).
지도자들은 타락하였고, 백성들은 율법에서 떠났으며, 제사장과 레위인과 같은 영적인 지도자들은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단 지파는 자신의 분깃을 잃고 북쪽의 새로운 도시를 찾아 나섰다. 블레셋의 도전으로 새로운 땅을 개척해야 했던 600명 단 지파의 무리는 에브라임 사람 미가의 집에서 제사장 노릇을 하던 청년 레위인과 미가의 신상을 빼앗아 자기 지파의 영적 지도자를 삼는다. 더욱이 한 레위인은 첩을 얻어 생활할 뿐 아니라 음행하고 도망한 첩을 데려오는 길에서 베냐민의 성읍 기브아에 이른다. 기브아의 불량배에 의해 레위인의 첩이 능욕당하고 죽게 되자 레위인은 이 사실을 온 이스라엘에 알린다. 레위인의 첩 살인 사건으로 전쟁이 일어나 베냐민 지파를 진멸하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레위인은 이제 하나님의 대리자로서의 영적 활동을 통해 백성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백성의 내전을 야기시키는 갈등의 뇌관이 되었다. 마지막 사사이자 제사장인 엘리 선지자의 가족들 조차 효과적인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부패하게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사사 사무엘 선지자의 시대에 이르러 하나님의 백성들은 왕의 제도를 구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하나님의 왕 되심을 잃어버린 백성은 주변의 강력한 왕권을 모방하기를 원하여 사무엘에게 왕정을 요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350년 가까운 여호수아 장군과 사사의 군인 정치 시대가 마무리되며, 비로소 왕정이 세워지게 된다. 사사시대는 이스라엘이 땅을 획득하고 국가의 기반을 형성하는 시대였다. 사사시대 동안 사회ㆍ정치적 변화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첫째 사사시대의 민병대 중심의 군인 정치는 이제 왕정의 상비군 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왕정은 세금을 거두고, 상비군과 행정관료를 완비하는 고비용 구조로 특징지어진다. 둘째, 왕의 통치에도 불구하고 왕들은 하나님의 법을 기초로 하여 통치하여야 하는 신정정치가 지속되었다. 셋째, 왕정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억압적인 왕권의 형성이 아니라, 섬기는 왕의 정신을 지속하여야 한다. 넷째, 왕의 제도는 종교와 분리되어 왕이 신이나 반신이 되지 못하도록 왕권이 신법으로 제한받는 제한군주제의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 다섯째, 왕정의 시대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성전 제도의 종교적 발전이 이루어지는 시대였다. 사사시대에는 법궤가 성전에 안치되지 못하고 장막에 거하게 되었는데,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에 이르러 신명기에서 예언한 중앙 성전이 성취된다. 여섯째, 강력한 왕권의 시대는 전횡적인 권력의 악, 타락, 우상숭배와 율법의 후원자가 아닌 율법의 파괴자가 되는 가능성이 더 크게 열렸다. 일곱째, 하나님의 왕 되심을 이루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은 이스라엘의 전체 역사 속에서 오직 소수에 제한되었다. 왕의 큰 권력의 타락으로 넓게 열려진 상황이 되었다. 왕권은 그러므로 사사시대에 드러나지 않던 악을 구체적이고 더욱 심각한 방법으로 드러내게 되었다. 사사시대는 목가적인 평화 속에서 자유를 구가하는 이상적 시대로 하나님께서 기획하셨으나, 이스라엘은 왕이신 하나님의 자비로운 통치를 거부하여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고, 이에 주변 국가와 유사한 인간 왕의 제도를 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