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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 제2부 4장 IV. 가나안에 기획된 “거룩한 나라”의 특성(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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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CMUSA| 작성일2026-08-03 | 조회조회수 : 1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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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거룩한 인간: 하나님 백성이 누리는 존엄함


하나님은 인간을 자신의 닮은 꼴 즉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셨다. 피조물 인간은 하나님과 소통 가능한 존재로 창조되었다. 인간의 가치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부여한 존귀한 위상과 가치를 기반으로 한다. 인간의 가치는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부여된 가치”(bestowed worth)를 가진다. [Nicholas Wolterstorff, Justice: Rights and Wrongs (Princeton: Princeton Univ. Press, 2008), 357-360.] 선지자 이사야는 하나님 백성의 가치가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에 의해 부여되었음을 확인시킨다. 그는 이스라엘을 “하나님 보시기에 보배롭고 존귀한 자”(사 43:4)라고 표현했고,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사 43:7)로 규정한다. 

   

철학자 니콜라스 월터스토프(Nicholas Wolterstorff)는 인간 존엄성의 근원이 바로 이 하나님의 주도적인 약속과 사랑에 있음을 확인한다. 월터스토프는 현대의 세속적인 철학이 인간의 이성적 능력, 자율성, 또는 인간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인권과 존엄성의 근거로 삼으려 했음에 한계가 있음을 비판한다. 인간이 가진 능력이나 합리성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발견하는 것, 혹은 이 개인적인 능력의 차이와 우열의 차이로 존엄성을 설명하는 것은 인간 존엄성의 주장에서 한계에 봉착함을 지적한다. 인간이 가진 특성의 상실이 인간의 존엄성을 무너뜨릴 수 있는 상황은 너무 많고 다양하기 때문이다. 월터스토프에 의하면, 인간 존엄성과 권리의 신학적 근거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에 있다고 단정한다. [Nicholas Wolterstorff, Justice: Rights and Wrongs, 189-190.] 하나님의 사랑은 인간이 가진 내면의 어떤 자질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신적인 존재로부터 “부여된 가치” 곧 하나님의 아가페적인 사랑에 기반함을 월터스토프는 확인한다. [Wolterstorff, Justice: Rights and Wrongs, 358-360.]

 

하나님은 모든 인간을 차별 없이,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신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더욱 분명하게 표출된다. 월터스토프는 이렇듯 각 개인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하고 강력한 “애착의 사랑”(love of attachment)이 인간이 가지는 가치의 원천이라고 보았다. 하나님께서 한 인격을 향한 애착의 사랑은 “매력에 기반한 사랑”(love of attraction)이 사라질지라도 유지되며, 동정이나 자비나 선의에 의한 “베푸는 사랑”(love of benevolence)과 다르다. 오히려 “애착의 사랑”이 “선의와 시혜의 사랑”을 불러일으켜 사랑의 대상에게 덧입힐 수 있다. 사랑의 대상을 포기할 수 없는, 대상과 분리할 수 없는 사랑인 “애착의 사랑”은 인간 존엄성의 기초가 되는 신적 사랑이다. [Wolterstorff, Justice: Rights and Wrongs, 188-191.]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크신 “애착의 사랑”은 하나님 자신과 인간을 종종 동일시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생생하게 표현되는 지점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백성에 대한 그의 거룩함의 요청함에 있다. 하나님은 신적 특성인 “거룩함”을 인간에게 요청한다. 여호와 보시기에 존귀한 자인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고 말씀하시며, 거룩한 나라의 백성을 향해 거룩하신 하나님과 같은 정체성을 가지길 요구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해지는 방법을 예식과 규례로 상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레위기이지만, 레위기 19장은 제의적 거룩함보다도 인간관계 속에서 구현할 거룩함을 다양하게 설명한다. [Richard Bauckham, The Bible in Politics: How to Read the Bible Politically, 민종기 역, 『성경과 정치: 정치적 안목으로 성경 읽기』 (논산: 대장간, 2024), 75-109. 보쿰은 제2장에서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 레위기 19장”이라는 제목으로 거룩함의 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저자는 여기서 레위기 19장을 제의적 거룩함보다는 이웃과의 관련성 속에서 사랑과 정의의 관점으로 논한다.] 

 

사람의 거룩함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구현되는 사랑과 정의의 구현에 있다. 하나님이 부여하신 ‘장소의 거룩함’과 ‘시간의 거룩함’ 안에 있는 ‘거룩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라는 성품 속에서 살아가는 것으로 이루어진다. 레위기 19장에서 말하는 거룩함의 내용은 인간관계 속에서 나타나는 사랑과 정의이다. 여기서 사랑과 정의는 서로 적대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상보적이다. 이웃에 대한 배려가 관계 속에서 나타나야 하는 것을 레위기 19장은 그 적용을 통해서 설명한다. [Nicholas Wolterstorff, Journey toward Justice: Personal Encounters in the Global South (Grand Rapids: Baker Academic, 2013), 배덕만 역, 『하나님의 정의』 (서울: 복있는 사람, 2017), 166-168.] 이웃 사랑은 거룩함을 위하여 반드시 성취하여야 할 필수적인 내용이다. 레위기 19장이 말하는 거룩한 삶은 율법의 순종과 마주 닿아있다. 리차드 보쿰에 의하연 그 율법은 핵심은 십계명이며, 레위기 19장은 십계명에 대한 용례의 제시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레위기 19장은 십계명의 마지막 계명, 탐욕에 관한 계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모든 계명의 적용이 제시되어 있다. 

   

가나안 정복을 위한 거룩한 전쟁이 마쳐진 후, 사사들이 다스리던 시대는 국가가 형성되지 않았고, 따라서 상비군이나 행정체계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 있었다. 왕이 통치가 도래하기 전, 사사들이 다스리던 시대에 인간의 존엄성과 거룩함을 드러내 주는 짧은 이야기가 룻기에 나타나 있다. 사사기와 룻기에는 왕이나 군사력이나 조직적 행정이 드러나지 않는다. 존엄한 인간에 대한 배려, 회복적 정의를 실행하는 인간관계의 거룩함은 나오미, 룻, 보아스의 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존엄하고 거룩한 사람의 모습은 거룩한 장소인 베들레헴에서 거룩한 시간인 안식년과 희년이 도래하기 전에 “고엘” 곧 “기업을 무를 자”를 통해서 나타난다. “기업 무를 자”는 “친족 구속자”(kinsman-redeemer), “피의 보복자”나 “계대를 이룰 구속자”로 표현되기도 한다. 하나님은 어려움에 빠진 이웃을 회복시키기 위해, 사회ㆍ경제적, 사법적 역할을 하는 고엘을 친족 가운데 세우셨다. 성경 전체에서 등장하는 118번 정도의 “가알” “고엘”의 단어 군은 룻기에서 23차례 등장한다. 이는 작은 책 룻기에서 고엘을 통해 인간의 거룩함이 어떻게 지켜져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작은 책 룻기에서 고엘 계통의 단어가 23번 등장하는데 반하여 레위기에서는 31번, 이사야에서는 24번이 발견된다. 이는 룻기가 얼마나 “친족 구속자”의 소개와 활동이 두드러지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 [이종록, “룻기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고엘 제도”, 목회와신학 편집부 편, 『사사기ㆍ룻기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서울: 두란노 아카데미, 2009), 433-434.] 

 

성경에서는 고엘의 4대 핵심적 의무가 첫째, 친족의 잃어버린 토지를 되찾아 주는 “기업을 무르는 자”의 역할이다(레 25:25). 만약 친족이 너무 가난해져서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토지를 타인에게 팔았다면, 고엘은 그 값을 대신 지불하고 친족의 땅을 되찾아 주어야 했다. 둘째는 가문의 토지 기반이 붕괴를 막는 동시에 “가문의 혈통을 보존”하는 계대결혼(신 25:5-10, 룻 4장)을 통해 아들을 낳아주어야 했다. 룻의 경우에는 보아스가 죽은 말론을 대신하여 대를 이어주어야 했다. 이 아이는 죽은 전남편의 자식으로 입적되어 그 가문의 이름과 유산을 이어받게 된다. 룻이 보아스를 통해 낳은 오벳을 통해 미래의 왕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다. 셋째로 친족 구속자(redeemer)는 종으로 팔린 근족의 몸값을 지불하여(레 25:47-49) 자유민으로 세워야 했다. 넷째로 친족 구속자는 “피의 보복자”가 되어 친척이 생명을 잃은 것에 대하여 원수를 갚는 자(민 35:19-21)가 되어야 했다. 이는 살인죄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함으로 정의를 지키려는 것이었다. [이종록, “룻기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고엘 제도”, 목회와신학 편집부 편, 『사사기ㆍ룻기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434-436.] 


보아스는 첫째와 둘째 항목의 기업을 회복시킴으로 하나님 백성인 나오미와 룻의 존엄성을 회복시켰다. 보아스가 엘리멜렉의 기업을 되찾고 룻에게 아들을 낳아주는 것은 친족 구속자의 사랑과 정의의 시행이다. 하나님 백성의 거룩함은 제의적 차원만이 아니라 사회, 경제적 차원에서도 회복적 정의를 구현하게 하였다. 레위기 19장에서 말하는 사랑과 정의의 실천은 사사시대에 보아스를 통해서 룻에게 이루어짐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가진 거룩함을 회복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 곧 헤세드와 하나님의 정의 곧 미슈파트가 실현된 것이다. 성문에서 정의 혹은 공의가 실천됨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거룩함에 이르게 된다. 그 거룩함의 회복은 인간 존엄의 회복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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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목사,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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