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목사 자서전 “이 풍랑 인연하여서”] 혼란 속에서 군정고문이 됨
페이지 정보
본문
III. 혼란 속에서
1. 군정고문이 됨
관선고문의 선정
앞에서 언급한 대로 나는 군정청에서 지방에 군정고문을 선거하는 기회를 이용하여, 안동에 우익단체를 조직하기로 결심했다. 먼저 대구로 가서 당시 김의균 군정 경북도지사와 백남채 도 내무국장을 만났다. 두 분은 내가 대구 희도보통학교 재학 때 교장과 부교장으로 계시던 분들이었다. 특히 백 내무국장은 내 선친과 동갑이신 분으로서 교분이 두터운 사이셨다.
두 분은 나의 방문 취지를 듣고, 그렇지 않아도 그 일로 나에게 연락하려던 참이었다고 하면서, 고문선거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 주셨다. 뿐만 아니라 고문에는 관선고문과 민선고문이 있는데, 내가 군 관선고문 7인 중 하나가 되어 나머지 군 관선고문 6인과 각 면 관선고문 3인씩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돌아와 추천할 관선 고문 후보자들의 인선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군 관선고문 후보로, 권오중(전 도의원), 김재성(장로), 백태성(의사), 김명한(의사), 김호윤(의사), 이우정(변호사), 성창경(조흥은행 지점장)을 뽑았다. 나는 그들을 찾아가 허락을 받고 위촉된 뒤에는 앞으로 있을 선거에서 함께 활동할 것도 약속했다.
읍•면 관선고문은 내가 안동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각 면부에 어떤 인물들이 있는지 잘 몰랐다. 그래서 군 관선고문으로 택한 분들의 의견도 듣고 군수와 서장 등 다른 여러 사람에게도 각 읍•면에서 세 분씩 적합하고 능력 있는 분을 추천해 줄 것을 부탁했다. 이미 좌익 편에 가담한 인사라도 실질적으로 유능하고 덕이 있는 사람이면 무방하다고 했다.
모두들 성의를 다하여 추천해 주었다. 의견이 비슷비슷했다. 나는 그중에서 가급적으로 반촌측에서 한 사람, 민촌측에서 한 사람, 교회측에서 한 사람을 골랐다. 그리고 개별적으로 면접하여, 시국에 대한 의견을 교환해 본 뒤 의견이 서로 맞으면, 그에게 읍•면 관선 고문이 되어 줄 것을 부탁하고 허락을 받았다. 그 작업에 약 1개월이 걸렸다. 나는 그들을 곧 경북도지사에게 추천했으며 그대로 위촉되었다.
민선고문의 선출
민선고문을 선출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았다. 먼저 각 동리에서 그 동리에 거주하는 호주들의 호선으로 리•동 고문을 선출하고 각 리• 동 고문과 이미 위촉된 관선 면 고문이 합해서 면 고문 회장을 선출하고, 면 고문 회장들이 다시 이미 위촉된 군 관선고문들과 합의해서 군 고문 회장을 선출하는데, 군 고문 회장이 도 고문도 겸하도록 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읍•면의 선거는 그 읍•면장과 관선 읍•면 고문들에게 맡겼다. 특별히 무슨 사고가 있다든지 요청이 있을 때만 지원해 주기로 했다. 군정과 관에서 실시하는 일이어서 그랬는지 선거는 평온히 진행되었다. 좌익 세력에 눌려서 기를 못 펴고 있던 이들도 모두 잘 움직여 주었다.
11월 12일, 각 읍•면 고문 회장과 군 관선 고문들이 모여서, 나를 군 군정고문회 회장과 경상북도 고문으로 선출해 주었다. 이 고문 선거가 안동 우익단체를 조직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도 고문회가 열렸을 때, 대구 대표로 온 사람은 건국준비위원회 경상북도 위원장인 이상협 씨였다. 우익에서 경북의 스탈린이라고 부르던 이였다. 좌익에서도 그 선거에 관심을 가졌음을 알 수 있었다. 그때 선배 목사이며 일정 때부터 좌경으로 돌아선 건국준비위원회 경상북도 총무부장인 최문식 씨와 치안부장인 이재복 씨를 만났다. 그들은 내가 안동군 대표로 온 것을 반가워했다. <계속>

고 김광현 목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