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 제2장 “하나님의 아들들”의 타락과 대홍수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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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격화된 왕 이론과 이에 대한 비판
창세기 6:1-4의 “하나님의 아들들”을 인간으로 해석하려는 또 다른 입장은 이를 “셋의 후손”이 아니라 “신격화된 인간 통치자”로 보려는 것이다. 이러한 해석의 근거 또한 창세기 4:16-24에 등장하는 가인의 족보, 특별히 라멕의 노래 속에서 결혼의 타락이 시작되는 것과 관련하여, 창세기 6:1-4을 해석하려는 입장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결혼은 고대에 일반적이던 군주의 일부다처제라는 타락한 결혼의 행태로 해석하려는 입장이다. 이러한 해석의 대표적 학자는 메리디스 클라인이다. 그는 본문이 “비틀어진 인간 왕권”을 주제로 한다고 주장한다. 클라인에 의하면,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언급은 그러므로 전제 군주의 일부다처제를 질타하고 있다는 것이다. [Meredith Kline, Kingdom Prologue, 『하나님 나라의 서막』, 243-244.]
그렇다면 하나님의 아들들은 여전히 셋의 후손에서 나온 군주이고, 사람의 딸들은 여전히 가인의 후손에 속한 여성인가? 클라인은 “하나님의 아들들”이나 “신의 아들들”이라는 표현이 곧 “왕을 지칭한다”는 것이 이미 확정된 해석학적 견해라고 주장한다. 그는 창세기 4장에 출현하는 가인의 족보를 “왕족의 족보”로 해석한다. [Kline, Kingdom Prologue, 『하나님 나라의 서막』, 241.]
그렇다면 가인의 후예를 구성하는 에녹, 이랏, 므후야엘, 므드사엘과 라멕은 왕위의 계승자이며, 이러한 종류의 왕권은 라멕에 이르러 절정을 이룬다고 본다. 이 견해를 따르면 라멕은 왕으로서 두 아내를 얻었으며, 가정의 일부일처제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라는 공적 심판자의 의무도 저버리는 잔인한 보복자가 된 것이다. 이제 왕국이 가진 정의의 도구 “칼의 권세”(롬 13:4)는 패권을 상징하는 파괴적인 가공할 도구가 된 것이다. [Kline, Kingdom Prologue, 『하나님 나라의 서막』, 241-242.]
창세기 4장이 라멕의 표상으로 나타난 바 강제력의 남용과 결혼규약의 파괴로 등장한 후궁전(後宮殿)의 문제라면, 이제 6장에 이르러서는 라멕에서 움튼 죄악이 인간 전반에 펼쳐진 문화적 열매로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왕은 신적 왕이 되었고, 고대 근동 세계에 널리 퍼진 것과 같은 인간 왕을 신 곧 “엘로힘”으로 부르는 것과 같은 전통을 대변한다(시 82:6; 138:1; 출 21:6, 22:8-9, 28). 클라인에 의하면, 이러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아들들과 신의 아들들은 동일한 의미이다. 그리고 창세기 6장의 문맥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은 결국 신성화된 군주라는 의미에서 가인과 라멕을 잇는 왕이다. [Ibid., 244-246.]
하나님의 아들들이 초자연적인 능력에 의하여 영향을 받았을 수는 있지만, 그들은 악마는 아니며 인간일 뿐이다. 클라인은 그러나 이러한 왕들의 아내가 되는 사람들이 가인의 딸들인지 셋의 딸들인지 혹은 둘 모두를 말하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가인의 후예들이 신성한 왕에 대한 우상숭배를 주도하면서 무분별한 일부다처제와 부도덕한 성관계가 만연하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혼제도의 붕괴는 심지어 셋의 후손 사이에 번성했던 신앙적 공동체마저도 지상에서 점차 소멸되도록 만들었다고 본다. [Ibid., 272-273.]
“하나님의 아들들”을 셋의 후손으로 보는 패러다임은 영적인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신 14:1)라고 보는 성경의 견해와 상응한다. 이러한 전통적 패러다임에서 중요한 것은 영적 구별(spiritual distinction)이며, 셋의 후손과 가인의 후손 간의 결혼을 통한 혼합이 영적인 구별의 붕괴와 함께 홍수의 원인이 되었다는 주장이다. 이와 유사한 인간론적 해석이 “하나님의 아들들”을 군주로 보는 “사회적 구별”(social distinction)에 착안한 해석학적 견해이다. [John Walton, Genesis: NIV Application Commentary (Grand Rapids: Zondervan, 2001), 291.]
중근동에서 군주는 “엘로힘”으로 불려졌다(출 22:8-9, 시 82:6). “하나님의 아들”을 왕이나 군주를 의미하는 것으로 간주해 온 것은 매우 일반적인 사례이다. 클라인은 하나님의 아들들은 셋의 후손이 아니라 정치권력을 가진 전횡적 군주들, 그리고 셋의 후손보다도 먼저 세속적 왕의 위치에 있던 가인의 후손으로 간주한다.
그렇다면 과연 복수 형태로 쓰인 “하나님의 아들들”을 군주로 간주하는 패러다임이 해석학적으로 온당한가? 많은 성경신학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부정한다. 하나님의 아들들을 왕들이나 군주들로 해석하는 패러다임도 다음의 다양한 해석학적 장애물에 부딪히기 때문이다. 첫째로 성경에서 다섯 번 등장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창 6:2, 4; 욥 1:6, 2:1, 38:7)이라는 용어를 군주로 해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생각한다. 그 결정적인 이유로 창세기 6장에 나타난 2번에 걸친 용례를 욥기에서 등장하는 용례를 통해서 해석한다면, 하나님의 아들들은 천상 회의를 구성하는 천군, 곧 영적 존재에 대한 명칭으로 사용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들을 군주라고 단정적으로 해석하는 클라인의 주장은 난관에 봉착한다. 둘째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군주라고 한다고 해도 그 다수의 후궁을 거느리는 정치 지도자는 한정된 수의 개인일 것이다. 하나님의 전 지구적 재앙의 이유가 비교적 숫자상으로 많지 않은 왕이 자행하는 일부다처제 때문이라는 것은 ‘특수한 계층의 범죄와 보편적 심판’이라는 불균형을 불러일으킨다. 고위층의 성적 범죄가 전 지구적 규모의 홍수 심판을 가져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응보정의(retributive justice)에 부합하는지 아주 긴 논증이 필요하다. [Hamilton, Handbook on the Pentateuch, 강성열ㆍ박철현 공역, 『오경 개론』, 76.]
셋째로 창세기 6:1-4의 본문을 일부다처제의 죄로 해석하는 것이 얼마나 합당한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이클 하이저는 이 본문을 일부다처제로 해석하는 것은 본문 자체에서 입증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성경이 군주의 일부다처제를 논박하고 정죄하며, 특히 홍수 이전의 세상을 멸망시킬 정도의 큰 죄로 간주하고 있는지도 확언할 수 없다고 본다. [Heiser, The Unseen Realm, 『보이지 않는 세계』, 167-169.]
넷째로 실제 성경의 내용은 홍수 이후에도 이러한 군주와 그들이 거느리는 많은 후궁의 관계 때문에 그 백성 전체를 심판한 사례를 발견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왕의 일부다처제가 왕가의 갈등과 투쟁과 그 결과 백성에게 미친 혼란을 일으킨 것을 부정할 수 없지만, 이를 통하여 그 신민을 절멸시켰다는 기록을 찾아보기 힘들다. 요컨대 군주의 일부다처제가 전 지구적 종말의 이유라고 보기 힘들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들을 성적으로 타락하여 전 지구적 파괴와 멸절을 가져온 군주들이라고 해석하기 힘들다.
3. 인류의 타락과 신정정치의 훼손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을 셋의 후예와 가인의 후예의 영적 혼잡으로 해석하는 첫째 입장이나, 이들을 신격화된 군주와 평민의 딸들로 보는 사회적 혼돈이라는 둘째 입장 모두 인간론적 해석이라는 패러다임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해석학적 패러다임은 모두 하나님의 신정정치가 훼손되었다는 의미에서는 동일하다. 특별히 전자는 하나님을 섬기는 문명과 타락한 문명이 혼합되어 더 이상 하나님의 통치가 지속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셋의 예배하는 전통과 가인의 인본주의적 전통이 혼합되어 인간학적 차원의 정의로움이 상실된 문명이 되었다는 것은 물론이고, 이는 결국 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전반적이고 보편적인 훼손이 인류의 역사를 채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인류의 죄의 번성은 결국 노아의 가족이라는 소수의 사람을 제외하고는 세상에 죄악이 가득한 상태로 변질되었다. 그들의 사상과 계획은 항상 사악한 상황이 되어 하나님의 다스림, 곧 신정이 상실된 상황으로 전락되었고, 가인의 타락한 도시 문명은 폭력과 음란이 지배적인 조류가 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 패러다임은 특별히 정치 지도자의 타락을 보여준다. 홍수 이전의 군주와 그들을 중심으로 한 권력 장치는 강력하게 조직되었고, 왕가의 권력 행사는 인간의 가장 중요한 제도였던 결혼제도를 파괴시켰다는 것이다. 권력자는 다수의 아내를 거느리게 되었고, 창조의 질서에 속한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혼인”은 심각하게 파괴되었다. 이 또한 먼저 에녹성에서 라멕의 가정이 보여준 아다와 실라의 일부다처제가 보여준 부패와 포악함의 귀결이라고 할 수 있다. 강력한 가인의 폭력과 음란은 문명은 이제 에녹성에서 시작하여 지구 전체를 덮을 정도로 확대 재생산되는 상황이 되었다.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부패함이었더라”(창 6:12)는 지적은 온 땅이 가인의 문화로 오염되어 하나님의 정치를 훼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 또한 하나님의 통치, 곧 신정정치의 파괴이다.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과 정의는 훼손되어, 종교적 심리적 차원에서의 하나님의 성품은 인간관계 속에서 점차 상실되었고, 정치적 차원에서의 권력은 인간의 탐욕을 넓히고 유지하는 수단이 되었다. 신학적 차원에서의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에 대한 인정은 이제 인간의 역사 속에서 밀려나 버렸다. 인간의 각종 영역에서 볼 때, 홍수 이전의 죄의 총체적 왜곡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창조의 정치”(creational politics)를 왜곡시키며 모든 인간의 역사를 폭력, 탐욕, 부패와 군주의 전횡으로 덮게 되었다는 논지가 인간학적인 해석의 요체이다. 그리고 이것이 대홍수의 요인이라고 인간학적 패러다임은 주장한다. <계속>

민종기 목사(충현선교교회 원로 목사, KCMUSA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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