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종기 목사의 성경과 정치신학] 제2부 구약교회의 신정정치 - 3. 신명기, 시내산 언약의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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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신명기, 시내산 언약의 완결
출애굽 이후 40년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주어진 신명기는 시내산 언약과 대비되는 모압 평지에서 맺은 “모압 언약”이다. 이 언약에는 40년 동안 광야 생활에서 출생한 출애굽 2세대가 참여했다. 언약의 당사자로는 생존한 믿음의 지도자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대략 60세 이하의 출애굽 세대가 광야에서 출생한 40세 이하의 신세대와 함께하여 언약을 갱신하였다.
마이클 왈저에 의하면, 신명기 전체는 통일성을 가진 ‘고대 문서 중의 걸작’이며, 이는 ‘이스라엘 율법의 왕관’이다. 왈저는 신명기가 정교한 수사학적 흔적을 가지고 구성되었다고 하며, 이 문서의 특징은 어느 정도 장황하기도, 교훈적이기도 하며, 시대착오적이라 할 정도로 이념적이라고 주장한다. 신명기는 의도된 정치신학적 문서이며 땅을 가진 명실상부한 국가 건설을 의도한다. 이는 또한 가나안 진입을 앞두고 기획적 전망을 제시하는 문서이기도 하다. [Michael Walzer, In God's Shadow: Politics in the Hebrew Bible, 20-21.] 신명기 언약은 광야 생활을 마무리하며 언약의 절정을 제시하고, 가나안에 이르면서 그 완성을 도모한다. 신약의 요한복음이 공관복음을 완성하는 관석(冠石, capstone)으로 여겨지는 것처럼, 신명기는 모세오경을 마무리하는 결론으로 주어지며, 출애굽 2세대와 그 이후 세대에게 준 언약서이다. [Gentry &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언약과 하나님 나라』, 522-525.]
신명기 전체가 토라 즉 율법의 더욱 완성된 모습을 이룬다고 할 때, 우리는 몇 가지 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첫째, 신명기는 율법 전체의 완성이자 이전에 존재하던 언약의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신명기의 언약은 40년에 걸쳐서 광야에서 주어진 반복적인 율법의 마무리이며, 조상 아브라함에게서 시작된 하나님과의 언약이 하나의 단위로서 완성되었다. 엘라자르는 “신명기 언약의 완결성”을 6가지의 동심원적 구조를 거론하며 설명한다. 그 동심원의 처음은 노아 언약이며, 둘째는 아브라함의 언약으로서 이삭과 야곱이 이에 포함된다. 세 번째는 십계명 판을 중심으로 모세가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과 네 번째로 십계명을 포함한 언약의 책(출 20-23장)을 매개로 백성과 함께 맺은 언약이다. 다섯 번째로는 레위기를 포함한 시내산 언약의 확장이며, 여섯 번째로는 헌법을 재진술한 모압 평지에서의 언약이다. [Elazar, Covenant and Polity in Ancient Israel, 181-82.] 엘라자르의 이러한 주장을 그대로 다 받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그가 상술한 언약의 확장과 신명기적 재진술을 통한 언약의 완결은 수긍할 만하다. [출애굽기 20장, 레위기 19장, 레위기 19장에서 10계명 중 10번째 탐심에 계명을 제외한 9개의 계명이 본문에 나타남을 리처드 보쿰은 논증한다. Bauckham, Politics in the Bible, 『성경과 정치』, 80-84.] 그리고 신명기 법전이라고 불리는 신명기 12장-26장은 십계명을 반복ㆍ심화시키므로 이 둘이 서로 상응하며 조화를 이룬다.
히타이트 조약과 신명기 언약의 구조 비교 [Gentry &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언약과 하나님 나라』, 534.]
히타이트의 조약 구조 신명기의 구성
1. 전문 1:1-5
2. 역사적 서언 1:6-4:44
3a. 일반 규정 4:45-11:32
3b. 세부 규정 12:1-26:19
4. 기록 조항 27:1-10
5. 증인에 대한 호소 27:11-26
6. 복과 저주 28:1-68
7. 엄숙한 맹세 의식 29:1-30:20
둘째, 신명기 언약은 율법에 의한 단순한 법치를 넘어서서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를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완성적이다. 신법을 가지는 것은 사람에 의한 지배, 곧 인치(人治)가 아니라 객관적인 법에 의한 지배, 곧 법치(法治)라는 차원에서 더욱 발전된 사회를 낳을 수 있다. 그러나 고대의 많은 국가 속의 종교가 경전을 가지기 전까지 군주의 절대적 권력을 견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세오경의 신법은 왕이 있기 전에 선지자의 카리스마를 통하여 주어졌고, 왕은 아직 세워지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의 그 자유로운 위상을 누릴 수 있었다. 시내산과 모압 평지에서 제사장, 장로, 선지자가 있었다 하여도 그들의 위상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필적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모든 법적 권위의 출처라고 할 수 있었다. [Walzer, In God's Shadow: Politics in the Hebrew Bible, 22-27.] 더구나 모압 언약에 이르기까지 반복된 “언약”(covenants)이라는 정치적 구성 형태는 몇 가지 면에서 자유로운 백성을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 언약은 먼저 법전의 구속력보다 언약 당사자의 자발성을 기초로 하고 있었다. 언약을 맺으려는 백성들이 해방자 하나님을 향하여 가진 감사의 마음은 유능한 사회의 지도자나 엘리트층을 구성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는 것이다. 법적 구속력이 사회적 금기의 경계선을 가지고 있다면, 언약은 “신의 편재”라는 차원에서 더욱 큰 의무와 강력한 규범적 특성을 가진다. [John Walton, Ancient Near Eastern Thought and the Old Testament (Grand Rapids: Baker, 2006), 신득일ㆍ김백석 역, 『고대 근동 사상과 구약성경』(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7), 422-425.]
셋째, 이러한 신명기 법전의 언약적 특성은 이에 상응하는 자비로운 대안 사회 공동체를 세울 수 있다는 면에서 완성적이다. 독특한 정치신학적 대안 사회는 언약과 법의 차별성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모압 언약에 나타난 법은 한 정치 공동체가 “하나님의 자비로우심”에 근거하여 세워져야 함을 기대한다. 은혜로운 언약으로 구성되는 사회는 하나님과의 관계성 중심이 군주의 법적, 제도적 장치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약적 공동체는 왕의 권위나 권력에 의하여 세워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 곧 하나님을 신뢰하는 백성의 상호관계적 자율성에 의하여 세워진다. 무엇보다도 신명기 12-26장에 이르는 법전은 언약을 위한 문서이며, 이는 신명기가 가진 당시 히타이트 조약의 완결된 모습을 가지고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신명기가 조약들의 형식과 문학적 구조에서 기원전 14세기의 히타이트의 종주권자와 봉신 사이의 언약, 곧 종주 언약(suzerain-vassal treaty)과 가장 잘 일치된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신명기의 내용은 훨씬 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강조하여 나타낸다. 신명기라는 모압 언약은 외관상 히타이트의 형식을 따랐지만, 강제력과 질서를 위한 처벌의 두려움을 상정한 후자에 반해 전자는 하나님과 사람의 신뢰와 사랑을 강조한다. 모압 언약은 놀랍게도 자비로움과 긍휼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신정 사회를 구상한다. [Gentry & Wellum, Kingdom Through Covenant, 『언약과 하나님 나라』, 554-556.] 이러한 면에서 볼 때, 모압 언약은 당시 중근동의 사회를 뛰어넘는 미래의 보다 더욱 발전된 사회를 지향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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