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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일 목사의 성경 인물 탐구 35]




     

    < 1 >


    폰티우스 파이러트(Pontius Pilate), 혹은 본디오 빌라도, 식민지 종주국 로마제국이 유대 지방에 파견한 행정관(Procuratore), 예수님을 재판하고, 고문하여 십자가형에 넘긴 이 사람의 이름은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인 ‘사도신경’이 고백되는 언제, 어디서나 기억되고 있습니다.


    325년, 콘스탄틴 황제의 여름 별장이 있던 지금의 터키 이스탄불 아래에 있는 작은 도시 ‘니케아’에 모인 교부들의 모임인 제1차 에큐메니칼 공의회에서 작성된 신경에는 이 이름이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381년에 열린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가 추가되었는데, 이는 그리스도께서 수난 당하신 연대를 확정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연대를 규정할 때, 당대의 황제(예수님 시대의 로마 황제는 티베리우스 AD 14-37) 이름을 거명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임을 고려하면, 식민지였던 유대 지역의 일개 지방행정관의 이름을 거명한 것은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것은 로마 제국으로부터 내란죄로 고발당해 정치범으로 십자가형을 받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초대 교회가 로마 제국의 탄압을 피하기 위한 정치적 고려였을 수 있을 것입니다(예수님의 죽음의 일차적 책임을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돌리고 로마 제국의 책임을 희석하려는 교회의 의도는 복음서만이 아니라, ‘니고데모복음서’, ‘빌라도행전’, ‘가말리엘복음서’ 등 외경에서도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집트의 곱트 교회는 빌라도를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도구로 사용된 성인으로 추대하고, 그리스 정교회는 10월 27일을 빌라도의 아내를 위한 축일로 봉헌한 것도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의 책임을 오롯이 유대인에게 돌리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후 381년, 박해를 받던 종교였던 그리스도교가 이제 제국의 국가종교가 되어 상황이 바뀌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로마 제국에 돌린다는 것은 교회에게 여전히 부담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황제가 아니라 지방 행정관 빌라도의 이름을 빌려 예수님의 죽음 연대를 결정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교회가 예수님의 죽음의 정치적 성격, 곧 예수께서 내란죄로 고발을 당해 제국의 정치범의 처형방식인 십자가형을 당하셨다는 사실을 신앙고백으로 전승한 것은 역사적 사실만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의 정치적 성격을 확인해준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 2 >


    그렇다면 빌라도는 어떤 인물이었을까요? 빌라도는 한 편으로 우유부단하고, 변덕스러울 뿐만 아니라, 기회주의적이고, 책임을 회피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그는 ‘민란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고, 예수의 피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마 27,24)고 말합니다. 그는 대제사장들이 예수를 시기하여 넘겨주었음을 알고 있었고(막 15,10), 잡혀온 예수가 대제사장들의 고발 내용처럼 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지만, ‘무리를 만족시켜주려고, 예수를 채찍질 한 다음 십자가에 처형당하게 넘겨준’(막 15,15), 충분히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인물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유대인들을 싫어했던 빌라도는 자신의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침묵하는 예수님에게 격노했고 마뜩잖아 하면서, ‘너는 나에게 애기를 하지 않는구나! 너를 풀어줄 권력도 십자가에 못 박을 권력도 나에게 있음을 모르는 것이냐?’며 식민지 총독의 권력을 과시합니다(요 19,10). 십자가 위에 쓴 문구를 바꿔 달라는 유대 고위 제사장들의 요청에 그는 냉소적으로 차갑게 잘라 말합니다: ‘나는 쓸 것을 썼다’(요 19,22). ‘유대인의 왕’이라는 십자가 위에 부착된 명패에 기록된 죄명은 유대 지도자들에게는 치욕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율법을 모독하고 나무에 달려 죽는 저주를 받은 나사렛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을 참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잘 알고 있었던 빌라도는 ‘나는 쓸 것을 썼다’며 유대 지도자들의 요청,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써달라는 요청을 단 한 마디로 거절한 것은 식민지 총독으로서 보인 자만감과 유대인에 대한 비웃음이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 종교 철학자였던 필론(Philon, BC 20? - AD 45?)은 빌라도를 유대인들이 신성모독으로 여기는 행동(그는 헤롯의 궁전에 금칠한 방패를 설치하여 티베리우스 황제에게 헌정하였다)을 한 사람으로 언급하면서, 그를 고집스럽고 변덕스러우며 게다가 잔인하기까지 한 비열하고 성마른 자로 묘사합니다. 누가복음은 빌라도가 갈릴레아 사람들을 학살해서 그 피를 그들이 바치려던 희생 제물에 섞은 사실을 전해줍니다(눅 13,1).


    그러나 다른 한 편, 빌라도는 재판과정에서 예수님이 무죄라고 생각했고, 세 차례나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요한복음은 빌라도가 예수님을 놓아주려고 ‘힘썼다’(요 19,12)고 보도합니다. 빌라도의 아내, 클라우디아 프로클라라는 지난 밤 꿈자리가 너무 사나웠다며 예수를 처형하면 안 된다는 말을 전합니다(마 27,19). 그는 예수를 친히 신문하였지만 그들이 고발한 것과 같은 죄목은 아무 것도 찾지 못했으며, 사형 받을 만한 일을 하나도 저지르지 않았다(눅 23,14-15)고 말하면서 매질 후에 예수를 놓아주려고 합니다(눅 23,16). 그러나 대중들의 마구 우기는 큰 소리를 못 이겨 결국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는 십자가형에 넘겨줍니다(눅 23,23-24).


    < 3 >


    모함과 선동이 사법정의를 이긴 것입니다.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는 주장은 로마 제국의 권력을 위협할만한 근거가 될 수 없었습니다. 빌라도를 움직인 것은 예수가 갈릴리에서 시작해서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온 유대를 누비면서 가르치며 백성을 선동했으며(눅 23,5), ‘황제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반대하고, 자칭 그리스도 곧 왕이라고 했다’(눅 23,2)는 주장이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예수를 내란죄로 고소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로마 법전에 따르면 ‘내란죄’(maiestatis crimen)는 로마 제국의 신민과 그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가리키는데(로마법전 48.4.1.1), 기원전 46년에 제정된 내란방지법(lex Julia maiestatis)에 의하면, 이러한 범죄행위는 죄인의 사회적 신분에 따라 십자가형 혹은 화형에 처해지거나 아니면 짐승들에게 물어 뜯겨 죽는 방식으로 처벌되었습니다.


    갈릴레아 지역은 빈번하게 로마 제국에 대한 조세저항운동과 크고 작은 정치적 소요가 있었던 지역이었기 때문에 예수도 그런 저항운동가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아무튼 이 귀찮고 짜증스런 재판을 굳이 맡고 싶지 않았던 빌라도는 마침 갈릴레아가 헤롯 안티파스의 관할 지역인 것을 알고 그에게 예수님을 보냅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예수님 탄생 후 어린 아기들을 죽인 헤롯 대왕의 둘째 아들로서 BC 4년부터 AD 39년까지 갈릴레아와 베레아를 통치한 분봉왕(민족의 지배자라는 뜻)이었습니다. 헤롯 안티파스는 자기 동생 헤롯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를 빼앗은 것 때문에 세례자 요한의 질책을 받았고, 헤로디아의 딸이 춤을 춘 값으로 세례자 요한을 죽인 인물입니다.


    어쨌든 빌라도는 예수를 헤롯에게 보냈고, 예수에 대한 소문을 들어 알고 있었던 헤롯은 예수를 보고 ‘매우 기뻐’(눅 23,8)했으며, 특히 예수가 어떤 기적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고 합니다(눅 23,8). 헤롯은 여러 말로 물어보았으나, 예수께서는 그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고,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곁에서 있다가 예수를 맹렬하게 고발하자, 헤롯은 자기 호위병 등과 함께 예수를 모욕하고 조롱한 후, 화려한 옷을 입혀서 빌라도에게 도로 보냈다고 합니다. 누가는 이 장면을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서로 원수였으나, 바로 그 날에 서로 친구가 되었다’(눅 23,12)고 보도합니다. 식민지 종주국인 로마 제국의 지방 총독과 로마 제국에 빌붙어 세 지역으로 분할 상속된 한 지역의 분봉왕 처지인 헤롯, 게다가 빈번히 조세 저항운동과 정치적 소요가 일어나 지역치안을 담당한 빌라도를 괴롭히는 갈릴레아 분봉왕 헤롯과의 사이가 좋았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선동된 군중과 있을 수 있는 소요를 예수라는 희생양으로 무마할 수 있다는 같은 생각이 이들을 친구로 만든 것이지요.


    < 4 >


    그런데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예수님의 침묵입니다. 헤롯이 여러 말로 물어보지만, 예수님은 ‘그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십니다’(눅 23,9).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고발하는 말에도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고’(마 27,12), 빌라도가 ‘사람들이 저렇게 여러 가지로 당신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는데 들리지 않소?’라고 물었지만, 예수께서는 ‘한 마디도, 단 한 가지 고발에도 대답하지 않으시니, 총독은 매우 이상히 여겼다’(마 27,14)고 합니다.


    예수님은 왜 침묵하신 것일까요? 대제사장들의 근거 없는 고발에 기가 막히고 말문이 막혔기 때문이었을까요? 헤롯의 조롱과 모독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채찍 고문으로 신문(訊問) 전에 이미 온 몸이 무너져 내려 말할 힘도 없었기 때문일까요? 가시나무로 왕관을 엮어서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힌 후 ‘유대인의 왕’ 만세를 외치는 병사들에게 손바닥으로 얼굴을 맞는 온갖 수모(受侮)를 당했기 때문일까요? 로마 제국의 법을 정의롭게 집행해야 할 빌라도의 우유부단하고 기회주의적인 태도가 경멸스러웠기 때문일까요? 총독으로서의 자기 평판이 나빠질 것에 대한 염려 때문에 법을 지켜야 할 총독이 스스로 로마의 사법정의를 파기하는 것을 알고, 더 이상 사법정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일까요? ‘사실’을 다루고 판단해야 할 재판관인 빌라도가 ‘진리’가 무엇이냐고 물은 것은 답변을 기대했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비아냥거리는 것임을 예수께서 아셨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이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인류 구원 계획이라는 거대한 드라마의 한 과정임을 수용하고 순종했기 때문일까요?


    ‘서유럽의 멸망’을 쓴 오스발트 슈펭글러(Oswald Spengler, 1880-1936)는 ‘예수가 빌라도 앞으로 끌려 나갔을 때, 그곳에서는 사실의 세계와 진리의 세계가 화해할 수 없을 정도로 직접 맞서 있었다. 경악스러울 정도로 선명하고 압도적인 상징성을 가진 이 장면은 세계사를 통틀어 두 번 다시 있을 수 없는 것이다’고 말했습니다.


    보이는 제국의 권력을 대변하는 빌라도와 보이지 않는 나라의 왕인 예수가 맞선 것입니다. 사실의 세계가 진리의 세계를 재판하고, 지상의 왕국이 영원한 왕국에게 판결을 내린 것이지요.


    엄밀한 의미에서 빌라도의 재판은 재판이 아닙니다. 절차도 지켜지지 않았고, 고발 내용의 사실 여부도 검증되지 않았고, 피고의 변론도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사형을 당한 것이 아니라, 유대 지도자들의 거짓 고발과 매수되고 선동된 대중, 로마 총독의 교활한 정치적 판단이 결탁한 사법 살인을 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 지도자들과 대중, 빌라도에게 중요한 것은 사실도 진리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에게는 기득권의 안정과 현상유지를 위한 희생제물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가셨습니다. 권력, 더군다나 생사여탈권을 가진 권력자에게 힘없는 사람이 흔히 취할 수 있는 선택인 굴종, 타협, 저항, 경멸(輕蔑/깔보아 업신여김), 혹은 연민(憐憫/불쌍하고 가련하게 여김)의 정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권력의 현실을 과대평가도 과소평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권력의 현실을 누구보다도 냉정하게 보셨습니다. 예수님은 ‘통치자들이 백성을 마구 내리 누르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마 20,25)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주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고, 터무니없는 말로 온갖 비난을 받을 것’(마 5,11)을 예견하셨고, ‘사람들이 제자들을 법정에 넘겨주고, 회당에서 매질을 할 것이며,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 나가서 그들과 이방사람 앞에서 증언할 것’(마 10,17-18)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으셨습니다. 온갖 영화를 차려 입은 솔로몬도 들의 꽃 하나와 같이 잘 입지는 못했다(마 6,29)고 생각하신 예수님, 몸은 죽일지라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이를 두려워하지 말고, 영혼도 몸도 둘 다 지옥에 던져서 멸망시킬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마 10,28)고 말씀하신 예수님, 헤롯이 그를 죽이려고 한다는 말을 전해 듣고 ‘너희는 여우에게 가서 말하라. 나는 오늘도 내일도 가야할 길을 가야한다’고 말씀하신 예수님, ‘원수를 사랑하여라. 너희를 미워하는 사람들에게 잘 해주고, 너희를 저주하는 사람들을 축복하고 너희를 모욕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눅 6,27-28)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길은 ‘사실의 세계’가 아니라 ‘진리의 세계’에서만 이해될 수 있습니다.


    ‘나에게는 당신을 놓아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처형할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라며 침묵으로 일관하는 예수님을 향해 내뱉듯이 자기 권력을 과시하는 빌라도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위에서 주지 않으셨더라면 당신에게는 나를 어찌할 아무런 권한도 없을 것이오.’(요 19,11).


    세상 권력의 현실을 충분히 인식한, 그러나 세상 권력도 하나님의 권능 아래 있다는 믿음, 사실의 세계가 진리의 세계를 재판하는 것 같아도, 마지막에는 진리의 세계가 사실의 세계를 심판한다는 믿음을 가진 분만이 취할 수 있는 태도입니다.


    세상 권력과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법의 이름으로 취해진 사법살인의 역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새로운 것도 아니고, 새로울 것도 없습니다. 예수님도 이런 사법살인의 희생자이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예수님을 무덤에서 일으키셨고, 마침내 진리의 세계가 사실의 세계를 심판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억울하게 죽임당한 모든 희생자들의 소망이 되신 것입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에큐메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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