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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칸달론, 걸려넘어지게 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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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CMUS…| 작성일2020-10-23 | 조회조회수 : 7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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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의 걸림돌(skandalon)이다”: 마태복음의 스칸달론에 관한 연구 ⑴


김재현(계명대) 



흔히 정치인과 연예인의 스캔들(scandale)이 회자되곤 한다. 스캔들이라는 말은 그리스어 스칸달론(skandalon)에서 유래했다. 스칸달론(미주 1)이라는 말의 뜻은 걸려 넘어지게 하는 돌, 즉 걸림돌을 의미한다.


이 말은 성서 문학에서도 적지 않게 사용되었는데, 거리낌, 죄의 유혹, 분노, 신앙의 위기를 가리키기도 한다. 한글로 번역된 성서는 이 용어를 상황에 맞게 다양하게 번역했다. 번역의 일관성이 결여된 이유는 이 개념에 대한 신학적인 연구가 매우 빈약했기 때문이다.


스칸달론(skandalon)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이러한 상황에서 신학의 영역 밖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서의 스칸달론 개념에 대한 심오한 통찰을 제시한 학자가 출현했다. 그의 이름은 ‘르네 지라르(R. Girard)’이다. 그는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는 저서에서 자신의 모방욕망, 폭력, 희생양, 신화 이론을 결합하여 복음서 내러티브 내부에서 작동하는 스칸달론의 매커니즘을 탁월하게 해명했다.(2) 지라르의 작업으로 말미암아 스칸달론, 혹은 신약성서 복음서의 스칸달론은 이제 신학의 영역을 넘어선 논의의 대상이 되었다.


지라르의 작업은 널리 알려졌지만 스칸달론을 다룬 키에르케고르(S. Kierkegaard)의 짧은 논평은 아직도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죽음에 이르는 병』의 첫 번째 부론에서 키에르케고르는 절망을 죄로 규정한 후 “죄의 정의가 걸려넘어짐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다루며 “걸려넘어짐에 관한 일반적 고찰”을 시도한다. 이 글에서 키에르케고르는 걸려 넘어짐의 가능성이 “기독교의 본질적인 구성요소”임을 역설한다.(3)


키에르케고르와 지라르의 저작들은 스칸달론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하지만 이들의 작업은 신학의 작업이 아니다. 따라서 필자는 두 사람의 자극을 받아들이되 신학의 입장에서, 보다 세분해서 말하자면 성서학의 입장에서 스칸달론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스칸달론은 성서의 여러 부분에 나타나지만 아래의 글에서는 마태복음에 나타난 것만을 다루고자 한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의 기록자는 다른 신약성서 기록자에 비해 스칸달론에 대해 높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4)


스칸달론과 관련한 국내외의 신학분야의 연구 상황은 열악하다. 국내에는 번역된 자료인 타이쎈(G. Theißen)의 “속죄의 거리낌으로서의 십자가: 바울에게 있어서 예수의 죽음에 대한 두 가지 해석”(5)이 대표적이다. 이 자료는 바울 서신의 스칸달론의 개념의 신학적 차원을 다루고 있다. 국내에서는 차정식 교수가 현대사상과 관련하여 성서의 스칸달론 전반을 연구하여 단행본을 출간했다.(6)


해외의 연구를 살펴보면 1973년에 출판된 이화순(Hwa-Sun Lie)의 Der Begriff der Skandalon im Neuen Testament und der Wiederkehrgedanke bei Laotse(7)이 스칸달론에 대한 단행본 규모의 대표적인 연구서로 알려져 있다. 또한 구대커(M. Goodacre)는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의 스칸달론 개념을 연구했다.(8) 본 논문은 이전의 성서학적 연구를 이어받되 마태복음의 스칸달론에만 초점을 맞추고 서사비평적인 방식으로 접근하고자 한다.


마태복음의 설교에 나타나는 스칸달론


마태복음은 하나의 서사(Narrative)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사이에 다섯 개의 긴 설교(Discourse)가 삽입되어 있다. 마태복음 전체를 구조화하면 다음과 같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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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분류에서 5-7장을 산상설교, 10장을 파송설교, 13장을 비유설교, 18장을 교회설교, 23-25장을 종말설교라고 부른다. 마태복음의 기록자는 이를 의도적으로 위와 같이 배치했고, 설교는 전체 이야기에서 중요한 뼈대를 구성하고 있다. 스칸달론은 10장 파송설교를 제외한 마태복음의 모든 예수 설교에 등장한다.


⑴ 산상설교에서의 스칸달론 - 마5:29-30


마태복음의 설교에서 첫 번째로 나타나는 스칸달론에 관한 말씀을 다음과 같다: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스칸달론)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마5:29-30, 강조는 필자).


이 구절 앞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5:28)이 있어, 스칸달론에 관한 구절은 성욕에 대한 경고 혹은 마음의 간음에 대한 경고로 이해되어 왔다. 그러나 문헌학적 연구에 따르면 마5:29-30은 독립적으로 전승된 구절이다.(10) 따라서 원래의 전승은 간음이 주제가 아니라 스칸달론이 주제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구절에 따르면 스칸달론은 너무나 무섭고 전율스러운 것이다. 왜냐하면 스칸달론에 의해 걸려 넘어진 사람은 종말론적 불의 심판을 상징하는 지옥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구절의 화자는 실족을 선택하느니 지체 중 하나인 손, 발, 눈 등을 포기하라고 권한다. 이렇게 극단적인 언급을 할 정도로 스칸달론은 두려운 것이다. 우리는 이 글에서 “스칸달론에 대한 끝없는 공포”를 읽을 수 있다.(11)


⑵ 비유설교에서의 스칸달론 - 마13:21, 41


비유설교에서 스칸달론에 관한 말씀은 씨뿌리는 비유(마13:10-23)와 가라지 비유(마13:34-43)에서 나타난다.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으로 말미암아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날 때에는 곧 넘어지는(σκανδαλίζεται, 스칸달리제타이) 자요”(마13:20-21). 이 설교는 스칸달론의 원인을 해명해주고 있다.


스칸달론에 빠져 넘어진 자들은 즉각적으로(εὐθὺς) 말씀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긍정적이지만 뿌리가 결핍되어 결국 어려움이 닥치면 스칸달론에 빠진다. 이 설교는 뒤에 다룰 베드로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왜냐하면 돌밭(τὰ πετρώδη)이라는 말은 예수의 수제자인 베드로 및 제자들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비유설교에서 스칸달론에 대한 또 다른 언급은 가라지 비유에서 발견된다. 이 비유는 마태복음에만 있는 자료(S/Mt, 마태특수자료라고 부른다)에서 유래한 것으로 스칸달론에 대한 마태의 독특한 입장을 알려준다.(12) 이 비유 중에서 스칸달론은 “사람의 아들이 그 천사들을 보낼 것이고, 그들이 그 나리에서 모든 걸림돌들(πάντα τὰ σκάνδαλα)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용광로에 던져 넣을 것”이라는 구절(마13:41)에서 나타난다.


이 비유에 따르면 스칸달론은 종말론적인 불의 심판 및 악마와 관련되어 있다. 이 중에서 특히 악마와의 관련성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스칸달론은 일종의 인격화된 시험이며, 이는 마태복음의 악마 및 시험의 주제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⑶ 교회설교와 스칸달론 – 마18:6


이 구절은 마가복음과 어록자료(Q)를 마태는 복잡하게 배열하고 있다.(13) 이 구절은 스칸달론에 대한 매우 오래된 말씀이다. 이 중 Q의 원문은 다음과 같다: “걸림돌들(τὰ σκάνδαλα)은 필연적으로(ἀνάγκη) 오게 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을 오게 하는 자에게는 화가 있다”(14) 어록자료의 원래의 말씀은 실족의 필연성과 실족의 심각성을 내용으로 하는 말이었다. 마태복음서의 편집자는 Q의 말씀에 실족들 때문에 “세상에” 화가 있다는 내용을 첨가시킨다. 마태는 막9:42-47의 전승에 관해서는 약간의 변형을 가하지만 거의 보존하고 있다.


마18:6은 매우 극단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믿는 자들 중에서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넘어지게(σκανδαλισῃ) 하는 자는 연자 맷돌을 목에 걸고 바다의 깊은 곳에 빠지는 것이 낫다(마18:6). 마5:29-30이 스칸달론의 위기에 처할 것 같으면 신체를 절단하라고 권하고 있다면, 마18:6은 믿음의 공동체에서 “작은 자”를 스칸달론에 빠지게 하는 자가 되느니 차라리 죽으라고 명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서 스칸달론은 공동체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에 포함되어 있다. 마18:6에 따르면 자신이 스칸달론에 빠져서도 안되지만, 타인을 스칸달론에 빠지게 해서도 안 된다.


⑷ 종말설교와 스칸달론 - 마24:10


마24:10은 종말의 시기에 “많은 사람들이 넘어질 것이다”(σκανδαλισθησονται)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말씀은 종말설교의 일부분으로 종말의 “산통”(마24:8)과 “환란”(마24:9)의 맥락에서 나타난다. 종말설교의 스칸달론은 배반과 연관성을 가진다. 리더보스(H. Ridderbos)는 이 구절에 나타난 스칸달론이 예수를 “부인”하는 것(deny)을 의미했다고 이해한다.(15) 스칸달론에 빠진 많은 사람들은 서로를 넘겨주게(παραδώσουσιν) 된다. “넘겨주다”에 사용된 παραδίδωμι 동사는 유다가 예수를 파는 것을 묘사할 때 사용했던 동사이다(마26:15,16). 이 구절은 공동체 내부로부터의 “누설”(Verrat) 혹은 “익명의 밀고”나 “고발”(Denunziation)을 의미했다고 이해될 수도 있다.(16)


<정리와 요약: 마태복음의 설교들과 스칸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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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넘어지는 것이나 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신체를 절단하거나 죽는 것이 낫다.

2. 스칸달론은 구원의 상실, 게엔나에 가게 됨을 의미한다.

3. 넘어지는 신앙은 뿌리가 깊지 못한 일시적인 신앙이다.

4. 스칸달론은 세상에 필연적이지만 넘어지는 사람에게는 화가 있다.

5. 스칸달론은 종말론적 현상이며 교회 내의 모든 걸림돌들은 종말의 시기에 불심판을 받을 것이다. 종말 시기에 스칸달론의 위기에 직면한 의인들은 끝까지 견뎌야 한다.


미주

(미주 1) 그리스어 σκάδαλον은 걸림돌, 분노, 죄의 유혹, 실족 등 다양한 번역이 가능하고 통일된 번역어가 없기 때문에 본 논문에서는 그리스어 발음을 살린 스칸달론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이다.

(미주 2) R. Girard,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김진석 역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04). 마리아 스텔라 바르베르와의 대담을 다룬 R. Girard, 『그를 통해 스캔들이 왔다: 모방적 욕망과 르네 지라르의 철학』, 김진석 역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01), 83-105 참조.

(미주 3) S. Kierkegaard, 『죽음에 이르는 병』, 임규정 역 (서울, 한길사, 2007), 168-176.

(미주 4) 스칸달론의 명사형과 동사형은 신약성서 전체에 걸쳐 44회 출현한다. 이중 19회가 마태복음에 있다. 즉 신약성서 전체의 50%에 근접한다.

(미주 5) G. Theißen, “속죄의 거리낌으로서의 십자가: 바울에게 예수의 죽음에 대한 두 가지 해석,” 노태성 역, 『신약논단』 제12권 제2호 (2005): 309–331.

(미주 6) 차정식, 『신학의 스캔들, 스캔들의 신학』 (서울: 동연, 2011).

(미주 7) Hwa-Sun Lie, Der Begriff Skandalon im Neuen Testament und der Wiederkehrgedanke bei Laotse (Frankfurt/M: Peter Lang & Bern, Herbert Lang, 1973).

(미주 8) M. Goodacre, "The Rock on Rocky Ground: Matthew, Mark and Peter as Skandalon," Liberary of New Testament Studies Vol. 316 (2006), 61-73.

(미주 9) D. A. Hagner, Matthew 1-13 (Dallas, Texas, Word Books Publisher, 1993), Introduction, lii.

(미주 10) H. D. Betz, The Sermon on the Mount, A. Y. Collins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95), 236-238, 238에서 베츠는 29-30이 27-28과 결합한 것은 마태 이전의 전승단계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9-30절이 27-28과는 다른 독립된 전승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은 동의한다. 본문의 형성에 대한 더 깊은 논의는 J. Gnilka, Das Matthäusevangelium I. Teil (Freiburg, Basel, Wien, Herder, 1986), 162 참조.

(미주 11) Hwa-Sun Lie, Der Begriff Skandalon im Neuen Testament, 23.

(미주 12) H. C. Kee, 『신약성서의 이해』, 서중석 역 (천안, 한국신학연구소, 1990), 206.

(미주 13) I. H. Marshall, 『루가복음(Ⅱ)』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1996), 359-360.

(미주 14) 소기천, “『예수말씀의 대조연구서』의 예수말씀복음서 Q”, 『예수말씀 복음서 Q 개론 - 잃어버린 지혜문학 장르의 전승 자료』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378.

(미주 15) H. Ridderbos, 『마태복음(하)』, 오광만 역 (서울, 여수룬, 1990), 684.

(미주 16) W. Grundmann, Das Evangelium nach Matthäus (Berlin, Evangelische Verlagsanstelat, 1981), 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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