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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리대로의 성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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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CM뉴스| 작성일2020-09-28 | 조회조회수 : 30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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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금지법과 동성애 ⑷

김판임 교수(세종대학교 대양휴머니티칼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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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성서 이해는 눈을 가리고 코끼리는 만지는 것과 같을 수밖에 없다. ⓒGetty Image


“이런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부끄러운 정욕에 내버려 두셨습니다. 여자들은 남자와의 바른 관계를 바르지 못한 관계로 바꾸고, 또한 남자들도 이와 같이 여자와의 바른 관계를 버리고 서로 욕정에 불탔으며,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짓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잘못에 마땅한 대가를 스스로 받았습니다.”(표준새번역)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 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개역개정)

로마서 1장 26-27절은 과연


로마서 1장 17절에서 바울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선언한 후에 3장 21절에서 다시 한 번 선언을 한다. 1장 18-3:20은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인간의 삶을 묘사하는데, 1장 18-32절은 “이방인의 죄”를, 2장 1절 - 3장 20절은 “유대인의 죄”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유대인의 죄를 언급한 것에 비하면 이방인의 죄는 비교적 짧은 편이고, 동성애와 관련된 언급은 이 맥락에서 나온다.

1장 18절은 3장 20절까지 내용을 전하기 위한 서언이며, 19-23절은 우상숭배, 24-27절은 동성애를 언급하며, 곧바로 패덕목록이 이어진다. 1)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 2)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 3) 수군수군하는 자, 4) 비방하는 자, 5) 하나님께서 미워하는 자, 6) 능욕하는 자, 7) 교만한 자, 8) 자랑하는 자, 9) 악을 도모하는 자, 10) 부모를 거역하는 자, 11) 우매한 자, 12) 배약하는 자, 13) 무정한 자, 14) 무자비한 자. 고린도전서나 베드로전서의 패덕목록에 비하면 훨씬 긴 목록이다. 의도적으로 1)과 2)에서 여러 패덕목록을 붙여서 길이를 조절한 것으로 보인다. 고린도전서의 패덕목록과 비교해보면, 로마서에서는 우상숭배와 동성애가 목록에서 빠져 나와 따로 언급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상숭배자와 관련해서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였고,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에 보여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새와 짐승과 기어다니는 동물 모양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롬 1:23)고 표현한다. 그리스-로마 전통에서 조각과 건축은 매우 앞선 문화이다. 지금도 이탈리아에 가면 많은 조각들이 건물이나 거리에 세워져 있지만, 고대 사회는 더했을 것이다.

로마서를 써 보낼 때 바울은 로마에 가본 적이 없다. 그러나 이미 지중해 여러 지역을 선교를 위해 다니면서 그리스 전통, 특히 건축물 내외에 신들의 형상이나 동물의 형상이 새겨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유대인 바울은 적잖은 문화적 충격을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바울의 눈에는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을 새겨 장식하는 그리스인의 문화를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롬 1:25)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24절 이하에 이어지는 동성애 관련 언급도 같은 이유에서 나왔을 것으로 평가된다. 바울은 이를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전에 “하나님이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다”(롬 1:24)고 표현한다. 이 표현에서 두 가지를 유념할 필요가 있다. 첫째 동성애자들을 하나님이 그렇게 내버려 두셨다(롬 1:24, 26)는 식으로 표현한다는 점이고, 둘째 바울에게 동성애는 비윤리적인 일이라기보다는 더러운 일로 규정한다는 점이다. 즉, 바울의 뇌리에는 정결법이 있고, 좀더 상세하게 말하자면 레위기의 정결법 관련 구절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하겠다. 부끄러운 일은 26-27절에서 좀더 구체적으로 표현한다.

26-27절에서 언급하는 것이 동성애라는 것은 “순리대로 쓰지 않고 역리로(바르지 못한 관계를 바르지 못한 관계로)”라는 표현에서 연상된다. “순리대로”라는 번역어의 헬라어는 “파라피진 para physin”이다. physis는 자연, 천성, 본질을 의미하는 단어이다. 그것은 물리학(Phisics)의 어원이다. 전치사 para는 “~곁에”, “~보다 더한”, “~ 위에” “~을 넘어서”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파라 피진”은 “본성에 어긋나게” 혹은 “비정상적으로”이라고 번역되기도 한다.

바울이 어떤 경우에 physis라는 단어를 쓰는지 살펴보기에 좋은 문맥은 고린도전서 11장이다. 14절에 physis라는 단어가 사용되는데, “남자가 머리를 길게 하는 것은 그에게 불명예가 되지만, 여자가 머리를 길게 하는 것은 그에게 영광이 된다”(고전 11: 14)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즉, 헤어스타일과 관련해서 당시 사회적 인식을 physis(본성)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동성애에 관해 바울은 유대인으로 그가 가진 선입견, 즉 성생활과 출산을 직접적으로 연결시킨 것이 자연에 맞고, 그렇지 않은 것은 자연에 어긋난다고 하는 견해를 반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린도전서 6장의 패덕목록과 같이 로마서 1장에서도 바울이 패덕목록 사용하는 수준을 넘어서 우상숭배와 동성애를 목록에서 제외하고 좀 더 장황하게 언급한 이유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패덕목록을 그대로 사용하기엔, 유대인의 죄와 균형이 맞지 않을 것을 예상해서 좀 길게 늘리고자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둘째는 우상숭배와 동성애적 행위가 바울이 선교 활동하는 가운데 보았던 헬라인들의 삶의 모습에서 받은 가장 강한 문화적 쇼크가 아니었을까 예상된다. 탐욕이나 시기 질투, 모함 등등의 모습은 어느 사회 누구에게나 나타날 수 있는 모습이라면, 그리스인들이 형상을 만들어 세우는 문화는 유대인 바울에게 우상숭배로 보였을 것이고, 율법을 외우며 살아가는 그에게 동성애의 모습은 크나큰 문화적 쇼크였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방인들의 죄를 언급하는 바울이 우상숭배와 동성애를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문화적 쇼크에 의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은 이 둘이 무엇보다 심각한 죄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지 않았다. 패덕목록에 한 낱말로 기록되었다면, 우상숭배와 바울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을 필요로 하는 자라는 신학적 선언을 하기 위해, 로마서 1장 18-3장 20절까지 모든 인간은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예외 없이 모두가 죄인이라는 전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구절을 가지고 동성애자들이 죄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바울에 의하면 이성애자들도 동성애자들도 예외 없이 모두가 죄인이다.

차별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일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도 바울도 성경을 문자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당대 다수의 유대인들이 성경의 문자를 근거로 자기 자신이나 타인을 억압하고 정죄하는 오류를 범할 때 예수와 바울 모두, 성경의 문자에 억매여 하나님의 말씀을 오용하는 것을 지적하고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찾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기에 박해를 받았던 것이다.

성경을 잘못 인용하거나 적용하게 되면, 성서의 특정 구절을 가지고 타인을 공격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성서 구절을 인용할 때에는 그 말씀이 이루어진 시기의 문화가 어떠했는지 살피고, 그 말씀을 통해 성서 저자가 의도한 바는 무엇이며, 진정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진지한 태도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문자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찾았고, 바울도 나름 성서를 해석하며 사용하였으며, 현대 유대 랍비들도 성경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탐구한다.

한국기독교장로회는 성서를 문자 그대로 이용하지 않고, 역사비판적 방법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적용해야 한다는 가르침 때문에 장로교에서 제명까지 당했던 장공 김재준 목사님을 따르는 교단이 아니던가? 한국기독교장로회는 권력과 재산을 가진 자에게 당하는 가난하고 힘없는 약자들의 인권을 위해서 그들의 고난에 함께 하며 피눈물을 흘려가며 활동했던 교단이 아니던가? 그 정신을 이어가는 사람이라면 차별금지법을 반대할 수가 없다. 어떤 사람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차별하고 억압하는 것이 죄이기 때문이다.

차별이란 차별은 그 어떤 이유에서건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일이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귀한 형상대로 지음 받은 하나님의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2020년 최근에도 여전히 차별금지법이 성소수자들을 지지하고 옹호하는 일이라며 많은 보수적 성향의 기독교인들과 교계지도자들이 야단법적을 치며, 차별금지법 저지 운동에 동참하지 않는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를 향해, 70-80년대는 인권운동을 잘하더니, 현 정권에는 아부하고 있다고 자신들의 입장과 함께 하라고 정신없는 말을 하는 자도 있다.

현재는 성서를 오용하며 사람을 차별하지는 악하고 혼란한 시대에 한국기독교장로회가 한국에서 차별금지법의 제정을 반대하는 다수와 함께 하지 않고 외로운 길을 가고 있지만, 시간이 흘러 사람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는 날이 오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전하는 온전한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고 예수의 성서해석을 따르며, 성서와 기독교 정신을 지킨 건전한 교단으로 평가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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