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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통과 고난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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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일 목사와 함께 하는 주제로 읽는 성경 ⒂]  





    < 1 >


    스스로 만성 통증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각 중 하나인 통증을 철학, 종교, 문학, 역사, 의학, 신경과학을 넘나들면서 다층적으로 연구한 저서, ‘통증연대기’를 쓴 멜러니 선스트럼은 ‘통증’의 어원이 ‘처벌’을 뜻하는 라틴어 ‘포이나’(poena), ‘갚다’를 뜻하는 그리스어 ‘포이네’(poine), ‘지옥에 떨어진 영혼이 겪어야 하는 처벌과 고통’을 뜻하는 고대 프랑스어 ‘펜’(peine)에서 왔다고 합니다.


    우리 말, 고통(苦痛)의 ‘고’는 ‘쓴 맛’, ‘씀바귀’, ‘통’은 ‘아프다’, ‘괴로움’, ‘슬픔’을 의미하는데, ‘고’의 산스크리트어 원어인 ‘두카’의 어근 ‘두’는 ‘불타다’라는 뜻입니다. 마치 불에 타는 것 같은 통증을 수반하는 것이 고통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고통’(schmerz, pain)은 ‘고난’(leiden, suffering)과 달리 지금까지 신학적 성찰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고통은 육체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 반면, 고난은 정신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과 고난은 사실 뗄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육체의 고통은 사람의 몸만이 아니라, 마음에도 영향을 끼치고, 마음은 또한 몸의 고통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지요. 몸과 마음은 사실 동전의 양면이라고 하겠습니다.


    대부분의 고대 종교에서는 고통을 목적론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우주와 마찬가지로 신도 잔인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반해 업(業)의 종교인 힌두교와 불교는 공명정대한 우주관을 내세웁니다. 윤회설에 따르면 고통은 신들의 책임이 아니라, 전생에 저지른 악업에 대한 인과응보로 재해석됩니다.


    그러나 유일신 종교인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고통이 인류의 타락과 함께 세상에 들어온 것으로 이해합니다. 아담과 이브가 해산의 고통과 노동의 저주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기 때문인데,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지식의 나무 열매를 먹고 절반의 신이 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경은 고통을 단지 육체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신과의 관계에서, 왜 내가 고통을 받아야 하느냐는 의미론적 질문에서 접근합니다. 구약성경의 욥 이야기, 시편 73편의 시인의 절규가 그 예입니다.


    < 2 >


    우리 경험에 의하면 정신적 고난과 육체적 고통은 뗄 수 없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몸이 아프고, 나아가 큰 병이 되는 것이 사실이고,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육체적 고통은 우리의 얼굴만이 아니라 마음과 정신까지 피폐하게 만들지요. 그래서 성경은 축복기도에서 ‘평화의 하나님께서 친히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흠이 없이 완전하게 지켜주시고’(살전 5,23), ‘그대의 영혼이 평안함과 같이, 그대에게 모든 일이 잘 되고, 건강하기를 빕니다.’(요3서 1,2)라고 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건강과 영혼의 평안함이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이지요.


    오늘 우리는 병이나 사고로 겪는 고통을 두고 하나님에게 책임을 돌리지 않습니다. ‘어떤 것은 운이 없어서 일어나고, 어떤 것은 우리 주변의 나쁜 사람들 때문에 일어나며, 어떤 것은 우리의 잘못된 습관에서 오기도 하고, 우리가 인간이기에 불가피하게 일어나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고통스런 일들은 우리의 잘못에 대한 징벌도 아니요, 하나님의 어떤 원대한 계획의 일부도 아닙니다. 비극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에 비극을 당했다하여 하나님에게 상처받거나 배신감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는 단지 하나님에게 돌아가 이 모든 것을 극복하도록 도와 달라고 기도할 수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도 분명히 우리만큼 우리가 고통받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선하고 의로운 사람들이 고통 받는 현실에 분노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일은 ‘왜 이런 일이 내게 벌어지는가? 왜 나만 이런 일을 당해야 하는가?’라고 자책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것입니다.


    신앙인은 시련과 역경 속에서 다른 사람들이나 자기 자신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그 분만을 바라보고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불행에 굴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의 원천이 기도에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남모르는 병과 역경 속에서 고통 받으며, 신음하는 신앙인은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만이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시험에 빠지지 않게 우리를 지키며, 오직 하나님께 가까이 있는 기쁨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채수일 목사(경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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