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음주운전(DUI)이 피임장치(IUD)라니…“법원 AI 자동번역 중단하라” 목소리 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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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등 제1지역 한국어 통역 수요, 스페인어·중국어 이어 3위
35개 법률·커뮤니티 단체, 전문가 검증없는 기계번역 중단 촉구
캘리포니아 법원에서 사용하는 자동번역 시스템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법률지원단체와 커뮤니티 관계자들은 기계번역 오류로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주민들이 재판 절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서류 제출기한이나 법적 권리를 놓치는 등 사법 접근권이 침해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캘리포니아농촌법률지원(CRLA), LA법률지원재단(LAFLA), 믹스테코 원주민 지역사회 조직 프로젝트(MICOP) 등 35개 법률·커뮤니티 단체는 최근 캘리포니아 사법위원회(Judicial Council of California)에 전문인력의 검토를 거치지 않은 법원 자동번역 서비스 사용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이달 초 사법위원회 산하 ‘접근성과 공정성 자문위원회’ 언어 접근 소위원회에 제출한 공동 의견서에서 법원이 기존 언어 접근성 기준을 충분히 이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기계번역 사용을 확대하고 있다며 정확성 문제를 제기했다.
소위원회 공청회에서도 법원 이용자와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기계번역보다 전문 교육을 받은 통역사와 번역사를 통한 언어 서비스를 확대해야 한다는 의견을 잇달아 제시했다. 일상적인 대화와 달리 법률 용어나 재판 절차에서 발생하는 번역 오류는 당사자에게 훨씬 큰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DUI’를 ‘IUD’로…법원 자동번역 황당 오류
시민단체들은 실제 법원 자료에서 확인된 자동번역 오류 사례를 제시하며 문제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한 사례에서는 법원 직원의 안내문이 자동번역 과정에서 “열을 내리기 위해 판사를 찌르라(Sting the judge to reduce a fever)”는 전혀 엉뚱한 문장으로 번역됐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음주운전을 의미하는 ‘DUI’가 자궁 내 피임장치를 뜻하는 ‘IUD’로 잘못 번역됐다.
단체들은 이 같은 오류가 단순한 불편에 그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법원 이용자가 출석 날짜나 서류 제출기한을 잘못 이해해 재판에 불참하거나, 벌금 감면 또는 운전면허 벌점 방지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사건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중요한 법적 결정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
특히 퇴거, 가정폭력, 자녀 양육권, 형사사건, 공공복지 등 법원에서 다뤄지는 사건들은 주거와 가족, 안전,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 번역의 정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단체들은 강조했다.
LAFLA에서 언어정의를 담당하는 조앤 이 특별고문은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언어적으로 가장 다양한 주이자 전국 최대 규모의 법원 시스템을 갖고 있는 만큼 언어가 사법 정의에 접근하는 장벽이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사람에게 법원 절차는 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순간과 관련돼 있다”며 “그러나 여전히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가족과 주거, 안전, 생계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충분히 이해하거나 절차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5년 언어 접근 계획 아직도 미완성
캘리포니아 사법위원회는 2015년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주민들에게 동등한 법원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캘리포니아 법원 언어 접근성 전략계획(Strategic Plan for Language Access in the California Courts)’을 채택하고 75개 권고안을 마련했다.
사법위원회의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이 가운데 60개 이상이 완료됐으나 일부 권고사항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사법위원회는 법원 직원들을 대상으로 기계번역 도구의 적절한 사용법에 대한 교육과 지침도 개발하고 있다.
그러나 공동 의견서를 제출한 단체들은 핵심적인 언어 접근성 조치가 충분히 이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법원이 2020년부터 전문 통역사와 번역사의 충분한 검토 없이 기계번역을 사용해왔다고 비판했다.
특히 법률 용어와 제출기한, 재판 절차와 관련된 안내에 자동번역을 사용할 경우 기계번역이 전문 통·번역 인력을 대신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노마 벤투라 CRLA 원주민정의프로그램 디렉터는 “법원과 다른 공공기관에서 기계번역과 AI 기술 사용이 늘어나는 만큼 정확성을 보장할 수 있는 안전장치를 반드시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격을 갖춘 전문가의 검토와 같은 안전장치가 모든 지역사회가 동등하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데 필요하다”고 밝혔다.
한국어 법원 통역 수요 8위
이번 논란은 이민자와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주민이 많은 캘리포니아에서 더욱 중요한 문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캘리포니아 사법위원회의 ‘2025 언어 수요 및 법원 통역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0~2021회계연도부터 2023~2024회계연도까지 캘리포니아 58개 카운티 상급법원에서 이뤄진 통역은 모두 253만4207건이었다.
이 가운데 한국어 통역은 1만4410건으로 스페인어와 중국어 만다린, 베트남어, 미국수어(ASL), 펀자브어, 광둥어, 아랍어에 이어 전체 언어 가운데 8번째로 많았다.
한국어 통역 수요는 특히 남가주에 집중됐다. 전체 한국어 통역의 70.8%가 LA와 샌루이스오비스포, 샌타바버라 카운티가 포함된 제1지역(Region 1)에서 이뤄졌다.
제1지역에서는 조사기간 동안 한국어 통역이 1만214건 제공됐다. 스페인어를 제외하면 만다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통역 건수다.
민사사건에서도 한국어 통역 비중이 비교적 높았다. 주 전체 민사사건에서 한국어 통역은 5315건으로 전체 민사 통역의 3.7%를 차지했다. 스페인어를 제외하면 만다린 6.0%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비중이다.
민사사건에는 주택 퇴거와 가정폭력, 민사 괴롭힘 등 개인의 주거와 안전,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 포함된다. 이에 따라 자동번역의 정확성 문제가 한국어를 사용하는 법원 이용자들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캘리포니아 주민 636만 명 영어 제한
언어 지원이 필요한 주민 규모도 상당하다.
2022년 기준 캘리포니아의 5세 이상 주민 가운데 약 1629만 명, 43.9%가 가정에서 영어 이외의 언어를 사용했다. 이 가운데 약 636만 명, 17.1%는 영어를 ‘매우 잘’ 구사하지 못하는 제한적 영어구사자(LEP)로 분류됐다.
가구 기준으로는 캘리포니아 전체 가구의 8.4%가 제한적 영어사용 가구였으며, LA카운티는 이 비율이 12.0%로 주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사법위원회 보고서는 한국어와 중국어, 베트남어 사용자의 경우 영어 능력이 제한적인 인구 비율이 여전히 높아 지속적인 언어 지원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통역 인력 부족·고령화도 문제
법원의 전문 통역 인력 부족과 고령화도 자동번역 논란의 배경으로 꼽힌다.
2025년 3월 현재 캘리포니아 사법위원회에 등록된 인증·등록 법원 통역사는 1856명으로, 이들이 114개 언어와 미국수어를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등록 통역사의 32%가 65세 이상으로 나타나 전문 통역 인력의 고령화가 심각한 상황이다.
2024년 기준 캘리포니아의 한국어 인증 법원 통역사는 25명에 그쳤다. 반면 한국어는 여전히 주 법원에서 통역 수요가 가장 많은 언어 중 하나다.
법률단체들은 통역 인력 부족으로 기술 활용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이를 이유로 자동번역이 전문 통역사의 판단과 문맥 이해를 대체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바네사 테란 MICOP 정책국장은 “2015년 언어 접근성 계획은 중요한 진전이었지만 그 약속은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았다”며 “어떤 언어를 사용하든 자신의 삶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적 절차를 충분히 이해하고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니콜 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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