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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다니엘 뉴먼 교수, 22년 APU 사역을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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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CMUSA| 작성일2026-09-09 | 조회조회수 : 3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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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맨이 은퇴했으니 이제는 올드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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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사퍼시픽대학교(Azusa Pacific University 이하 APU)에서 22년간 교수로 섬기며 목회자와 기독교 지도자들을 양성해 온 다니엘 뉴먼(Daniel Newman) 교수가 최근 은퇴했다. 지난 8월 23일 오후 5시 LA기쁨의교회(담임 이희문 목사)에서는 그의 제자들과 동역자들이 모여 은퇴감사예배를 드렸다.


예배에 참석한 제자들은 한결같이 “선생님의 가르침은 단지 교수의 가르침이 아니라 예수님의 마음이 담긴 사랑의 가르침이었다”고 고백했다. APU를 졸업했지만 뉴먼 교수의 수업을 들을 기회가 없었던 이희문 목사 역시 그날 제자들에게 “여러분은 축복받은 자들”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은퇴감사예배를 마친 뒤 뉴먼 교수는 아내와 딸의 말을 전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내와 딸이 ‘아빠는 이날 모인 분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오히려 나 자신이 축복을 듬뿍 받아서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은퇴 소감을 묻자 그는 자신의 성(Last name)을 빗대 농담을 건넸다.  

“이제 은퇴했으니 뉴맨(Newman)이 아니라 올드맨(Oldman)이 됐습니다.” 그의 웃음 뒤에는 22년 동안 학생들과 함께하며 목회자들을 세워온 사역에 대한 깊은 감사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한 고백이 담겨 있었다.


뉴먼 교수의 삶


다니엘 뉴먼 교수는 1960년 9월 20일, 미국 아칸소주 페이엣빌(Fayetteville)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이후 캘리포니아로 이주해 코비나(Covina) 노스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주사퍼시픽대학교에서 종교학(선교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받았다.


청년 시절 Youth With A Mission(YWAM)에서 선교사로 사역한 뒤, 한국과 미국 한인교회에서 목회자로 섬겼다. 원래 섬나라로 선교를 떠나기를 원했던 그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한국으로 가게 되어 그곳에서 9년간 머물렀다.


한국에서 기독교신학대학원(현 백석대학교)에 입학해 신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1993년 7월 서울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총회 동서울노회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았고, 동시에 선교사로 공식 파송을 받았다.


그는 서울 구로구에 위치한 임마누엘장로교회에서 이주노동자 사역 목사로 섬기며 구로공단 일대 이주 공장 노동자들에게 목회적 돌봄과 사회적 지원을 제공했다. 그 기간 동안 하나님께서는 만남의 축복을 허락하셔서 1984년 10월 27일 고혜자 사모와 결혼해 가정을 이루게 되었다.


이후 국으로 돌아와 열린문한인장로교회와 충현선교교회에서 사역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에서 문화교류학 석사(M. A. Intercultural Studies)와 박사 학위(Ph. D. Intercultural Studies)를 취득했다. 한국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그가 쓴 박사학위 논문 제목은 “Uri as Contextual Theology for the Korean Church and Its Mission"이었다.


뉴먼 교수는 한국 문화의 독특한 개념인 ‘우리(Uri)’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한국의 문화의 독특성 중에 ‘우리(Uri)’라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택시를 타게 되면 택시기사가 별의별 질문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손님에게 관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자신과의 공통점을 발견하려고 하는 시도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하나라도 공통점이 발견되면 그 공통점을 가지고 목적지까지 이야기를 풀어나가지만, 공통점이 아예 없으면 대화의 단절 현상이 일어나게 되죠. 그리고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한국에서의 인간관계는 ‘님’과 ‘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님’은 나보다 직급이 높은 사람, 그리고 내가 잘 보여야 하는 사람이고, ‘야’는 나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 하대해도 되는 사람으로 볼 수 있죠.”


슬하에는 두 딸이 있다. 장녀 조이 브래들리(Joy Bradley)는 남편 매튜 브래들리와의 사이에 아셔, 헤일린, 오바다이아 세 자녀를 두고 있고, 차녀는 안젤라 뉴먼(Angela Newman)이다.


“처음에는 교수직을 내려놓고 목회에 전념하려고 했습니다”


뉴먼 교수에게 APU 교수 사역의 시작은 기대보다 고민이 앞선 시기였다. 당시 그는 LA예본교회에서 담임목회를 하고 있었다. 교회 목회와 대학 교수 사역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처음 APU에서 강의를 시작했을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양들을 잘 먹이지 못할 것 같았고, 그렇다고 학교에서 교수 사역도 제대로 하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결국 그의 마음은 교수직을 내려놓고 목회에 전념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그러나 혼자 결정하기보다 교우들과 함께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로 했다.


“교우들을 모아놓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가실지 함께 기도하자고 요청했습니다.”


기도 후 교우들이 내놓은 답은 예상과 달랐다. 오히려 그에게 교수 사역에 전념해 달라고 요청했다.


“교우들이 ‘저희가 목사님을 붙잡아 놓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하는 것 같습니다. 목사님을 놓아드리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목사님은 학교에서 목사들을 양성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은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 뉴먼 교수는 교우들에게 예본교회에서 받은 훈련을 다른 교회를 위해 사용해 달라고 당부했고, 교우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여러 교회로 흩어져 섬기게 됐다.


“예본에서 받은 훈련을 다른 교회를 위해 힘써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감사한 것은 예본의 형제자매들이 봉사하는 교회에서 ‘좋은 교인들을 보내주셔서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입니다.”


한 교회의 울타리를 넘어 각자의 자리에서 교회를 섬기는 제자들을 바라보면서, 그는 목회 사역과 교수 사역이 서로 다른 길이 아니라 하나의 사역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경험했다.


“학생들과 30분 만나는 시간이 제게는 매우 소중했습니다”


22년간 APU에서 사역하면서 뉴먼 교수가 가장 큰 축복으로 꼽은 것은 학생들과의 만남이었다. 특히 아시안 프로그램 디렉터로 일하던 시절, 학생들과 나눴던 면담은 단순한 학업 상담을 넘어 영적인 동행의 시간이 됐다.


“APU의 특징 가운데 하나가 수강신청을 할 때 학생들과 약 30분 정도 만남을 갖는 것입니다. 이 시간이 저에게는 매우 소중했습니다. 보통 수강신청은 어떤 과목을 선택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APU에서는 학생과 면담하면서 어떤 고민이 있는지 나누고 기도제목을 놓고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이 시간은 교수와 학생이 단순히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를 넘어 동역자로 관계를 맺는 과정이었다.


“그것이 교수와 학생이 동역자로서 교제를 나누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학생의 기도제목을 한 학기 동안 계속 기억하고 기도하게 됩니다.”


이러한 전통은 뉴먼 교수가 새롭게 만든 것이 아니었다. 전임 아시안 프로그램 디렉터였던 박성민 교수가 세운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며, 뉴먼 교수가 목회학 박사과정 디렉터로 자리를 옮기면서 후임자인 변명혜 교수에게 인계했고, 변 교수 역시 그 전통을 이어갔다.


“학생들과 만나 그들의 고민을 듣고 함께 기도하는 것은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목회적인 사역이기도 했습니다.”


아름다운동산교회에서 목사안수를 준비 중인 고이삭 전도사는 뉴먼 교수의 학생 사랑에 대해 이렇게 전했다.


“뉴먼 교수님의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지대합니다. 영어권인 제가 한인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할 때 옷은 어떻게 입고 가야 하는지, 어떤 말을 해야 하며 어떤 자세로 사역에 임해야 하는지를 꼼꼼하게 알려주셨습니다. 교수님께서 목회학박사과정 디렉터여서 석사과정에 있는 저와는 접점이 없었는데, 변명혜 교수님의 은퇴로 인해 석사과정까지 맡게 되면서 만남을 갖게 됐습니다. 그 만남이 지금 생각해도 매우 소중하고 감사한 만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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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했지만 아직 은퇴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은퇴했지만 뉴먼 교수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은퇴를 했지만 아직 은퇴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처리해야 할 학교 행정 업무가 남아 있고, 특히 코스워크를 마쳤지만 아직 논문을 완성하지 못한 학생들의 논문 지도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는 ANC온누리교회에서 협력목사로 섬기는 한편, 집 근처 한인교회(카말리오 열방교회)에서도 Advising Pastor로 동역하고 있다. 새로운 교회에서 사역하게 된 과정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 교회에서 사역 요청이 있었습니다. 한두 번 요청하고 그쳤다면 하나님의 뜻이 아닌가 보다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함께하게 됐습니다.”


다만 은퇴 이후에는 사역뿐 아니라 자신의 건강을 돌보는 일도 중요한 과제가 됐다.


“나이가 들다 보니 몸도 불편해졌습니다. 지금은 건강이 회복되는 데에도 중점을 두려고 합니다.”


65세에 은퇴를 하게 된 것에 대해 서운한 마음은 없었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내 몸이 계속 건강했다면 서운한 마음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음식 조절을 해줘야 할 정도로 몸 상태가 예전 같지 않아졌고, 건강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을 볼 때 적당한 시기에 은퇴를 하게 된 것으로 생각되어 전혀 서운하지 않습니다.”


“지친 목회자들에게 한 달의 쉼을 주고 싶습니다”


은퇴 이후 뉴먼 교수가 새롭게 품고 있는 사역의 방향은 자신이 가르쳤던 제자들을 비롯해 미국 전역에서 사역하고 있는 목회자들을 돕는 일이다. 그는 미국 전역을 다니며 많은 목회자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 사역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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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전역을 돌아보면 제자들을 비롯해 많은 목회자들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특히 작은 교회에서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사역하면서 쉼을 갖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가 준비하고 있는 새로운 사역은 바로 이들을 위한 ‘쉼과 회복’이다.


“그분들을 위해 사역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달 정도 안식월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그분들이 한 달 동안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충전할 수 있도록 돕고, 그 기간 동안 말씀을 전하는 일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교수 사역은 끝났지만 사람을 세우는 일은 계속됩니다”


22년 동안 APU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목회자를 양성했던 뉴먼 교수. 이제 교수라는 직함은 내려놓았지만 그의 사역은 새로운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처음에는 목회와 교수 사역 사이에서 고민했고, 교우들의 권유와 기도를 통해 교수 사역의 길을 걸었다. 그 길에서 수많은 학생들과 만나 그들의 고민을 듣고 함께 기도하며 목회자와 기독교 지도자들을 세워왔다.


이제 그의 관심은 지쳐 있는 목회자들에게 향하고 있다. 뉴먼 교수에게 은퇴는 사역의 끝이라기보다 새로운 사역을 시작하는 또 다른 출발점이다.


“뉴맨이 은퇴했으니 이제는 올드맨”이라는 그의 농담처럼 세월은 흘렀지만, 사람을 세우고 다음 세대를 준비하며 목회자들을 격려하려는 사역은 계속되고 있다.


22년 동안 교실에서 제자들을 세워왔다면, 이제는 현장에서 지친 목회자들에게 쉼을 주고 다시 사역의 자리로 돌아갈 힘을 북돋우는 일. 그것이 다니엘 뉴먼 교수에게 주어진 은퇴 이후의 새로운 사역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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