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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한글로, 한글을 더 널리…기독교와 한글의 동행 14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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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데일리굿뉴스| 작성일2026-10-08 | 조회조회수 : 7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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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번역으로 넓어진 한글의 저변

한글 성경이 근대 문체 형성에도 기여

"종교 넘어 지식과 소통의 문자로"



한글날 100주년을 맞아 한글이 한국 사회에 뿌리내려온 과정을 기독교 역사와 함께 살펴봅니다. 성경 번역을 위해 한글의 표현과 표기를 고민했던 선교사와 한국인 번역자들의 노력은 한글 사용의 저변을 넓히는 계기가 됐습니다. 복음을 담은 한글이 사람들에게 읽히며 한국 사회의 문자로 자리 잡아간 역사를 돌아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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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0여 년 전 초기 개신교 선교사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한국인들과 함께 한글 성경 번역에 힘썼다.(AI 생성이미지)


[데일리굿뉴스] 김혜인 기자 = 세로로 빼곡하게 적힌 옛 한글 문장 사이로 붉은색 교정 표시가 곳곳에 남아 있다. 문장을 지우고 고쳐 쓰거나 새로운 표현을 덧붙인 흔적은 성경을 우리말로 옮기기 위해 기울였던 치열한 노력을 보여준다. 1904년 발행된 '신약젼셔'다.


연세대학교 박물관이 소장한 이 자료는 본문 주변에 교정을 위한 여백이 마련돼 있고 마태복음부터 사도행전까지 수록돼 있어 신약전서를 수정·보완하기 위한 자료로 추정된다. 누구의 손길인지는 확정할 수 없지만,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하며 표현 하나하나를 다듬었던 작업의 흔적은 선명하게 남아 있다.


140여 년 전 초기 선교사들이 복음을 전하기 위해 넘어야 했던 벽 가운데 하나는 언어였다. 이들이 택한 길은 한글이었다. 한글 성경 번역과 보급은 기독교 확산뿐 아니라 한글이 일상의 문자로 자리 잡는 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다.


조민영 연세대학교 박물관 학예사는 "초기 선교사들은 전도의 대상을 양반층에 한정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계층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했다"며 "한문은 일부 식자층만 사용할 수 있었던 반면 한글은 여성과 평민층도 사용할 수 있는 문자였기 때문에 한글을 선택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교사 대부분이 영어와 불어 같은 표음문자 문화권 출신이라는 점도 작용했다. 한국어를 처음 배우는 외국인 선교사들에게 한글은 한자보다 익히기 쉬웠고, 복음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기 적합했다.


한글 성경 번역의 첫 장면에는 한국인 번역자들이 있었다. 1882년 중국 심양에서 출간된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는 존 로스 선교사와 이응찬·백홍준·서상륜·이성하 등이 함께 만든 결과물이다. 한국인 번역자들이 우리말 초역을 만들면 로스와 번역자들이 이를 원문과 대조하며 수정하는 방식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이후 정서와 검토 과정을 거쳐 어휘의 통일성을 다듬었고, 1887년에는 최초의 한글 완역 신약성서인 '예수셩교젼셔'가 출간됐다. 1900년 발간된 '신약젼셔'는 한국인 번역자 6명과 선교사 6명이 함께 참여해 완성했다.


이두희 대한성서공회 성경번역연구소 소장은 "한국인 번역자들은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라 실제 번역 작업의 중요한 주체였다"며 "한국인 번역자의 한국어 능력과 선교사들의 원문 연구가 결합된 공동 작업이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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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4년 '신약젼셔'. 연세대학교 도서관 소장 자료인 신약전서는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기증된 자료로, 언더우드의 교정 흔적이라고 확정적으로 이야기는 할 수 없으나 1904년 신약전서를 교정보기 위한 목적으로 발행됐다고 추정해볼 수 있다. 위 자료는 연세대 특별전 '우리말, 한글, 연세얼' 에서 촬영한 사진.ⓒ데일리굿뉴스


번역자들이 가장 고민했던 지점은 사람들이 실제로 이해할 수 있는 우리말로 성경을 옮기는 일이었다. 지식층만 이해하는 문체가 아니라 여성과 평민, 어린이까지 읽고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찾아야 했다.


로스의 누가복음 번역에는 이런 노력이 담겨 있다. '기도하다'나 '부활하다' 같은 한자어 대신 '빌다', 그리고 '일어나다'를 뜻하는 서북 지역 말 '닐다'를 썼다. 초기 요한복음에서 예수와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는 "예수 갈아샤되 물을 좀 달나하시니"처럼 당시 사람들이 사용하는 말에 가까운 형태로 기록됐다.


이 소장은 "문어적인 한문투보다 당시 사람들이 말하고 듣던 한국어에 가까운 문장을 만들려고 노력한 것"이라고 말했다.


'구원', '은혜', '십자가', '부활' 같은 표현이 기독교적 의미를 가진 어휘로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일부 단어는 이전부터 존재했지만 성경 번역과 교회의 확산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얻으며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당시에는 통일된 맞춤법도 없었다. 대량의 텍스트를 한글로 번역해야 했던 번역자들은 연철·중철·분철, 된소리 표기, 아래아 사용 등 다양한 표기 방식을 고민하며 성경 번역에 적합한 우리말 표기 체계를 만들어 갔다.


이 과정에서 형성된 비교적 일관된 표기 방식은 '성경 철자법'으로 불렸다. 이는 이후 근대 한국어 표기 체계가 자리 잡는 과정에서도 중요한 선행 작업으로 평가된다.


띄어쓰기 역시 성경 번역 과정에서 발전했다. 초기 한글 성경에는 띄어쓰기가 거의 없었지만, 개정을 거치며 독자가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변화했다. 1896년 '독립신문'이 한글 전용과 띄어쓰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한 데 이어, 성경에서도 1897년 출판된 갈라디아서·야고보서·베드로전후서 등에서 띄어쓰기 방식이 나타났다.


많은 사람들이 반복해서 읽는 성경이 한글 전용과 띄어쓰기를 활용하면서 근대 한국어 문체 형성과 보급에도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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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0년대 후반(추정) 선교사 한국어 학습 자료. 1880년대 후반 언더우드로 추정되는 인물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작성한 자료로 언더우드가 '한영자전' 출판을 준비하면서 '환불자전'을 참고한 흔적으로 보인다. 위 자료는 연세대 특별전 '우리말, 한글, 연세얼' 에서 촬영한 사진.(한국기독교역사문화관 소장)


성경을 읽기 위해서는 글을 배워야 했다. 성서 보급에 나선 권서(勸書·성경을 판매하거나 나누며 전도하는 사람들)와 전도부인(傳道婦人·여성 전도자)들은 성경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글 자모표를 보급하며 글을 가르쳤다.


선교사들이 여성과 평민층을 대상으로 한글 교육을 진행했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성경을 읽기 위해 한글을 배우는 사람들이 생겨났고, 한글 독자의 저변은 여성과 평민층으로 확대됐다.


한글학자 외솔 최현배는 이를 두고 "한국에서는 배우기와 쓰기에 매우 쉽고 편한 훌륭한 한글이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의 전파에 큰 편리를 주었다"며 "한글이 전파되는 곳에 그 교리도 또한 전파되는 서로 인과하는 결과가 됐다"고 평가했다.


이 소장도 "한글이 있었기 때문에 기독교가 널리 전파될 수 있었고, 기독교와 한글 성경의 확산이 다시 한글의 대중화에 기여했다고 볼 수 있다"며 "성경이 계속 한문으로만 읽혔다면 직접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의 범위는 상당히 제한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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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6년 언더우드가 편집한 찬양가로 여러 인물이 가사 번역에 참여했다.  위 자료는 연세대 특별전 '우리말, 한글, 연세얼' 에서 촬영한 사진.ⓒ데일리굿뉴스


한글의 쓰임은 성경에 머물지 않았다. 찬송가 번역 역시 한글 사용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 초기 교회 공동체에서는 '예수 사랑하심은'을 중국 찬송가 그대로 "쥬 야소 아이 워"로 불렀고, 마음에 와닿는 가사로 찬송하려면 우리말 번역이 시급했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찬송가 번역이 의미뿐 아니라 운율까지 맞춰야 해 특히 어려운 작업이었다고 회고했다.


1894년에는 '찬양가'가 발간됐다. 같은 해 고종은 국문을 본으로 삼는다는 칙령을 내리면서 공문서에 한글을 쓰게 됐고, 1896년에는 순한글 신문인 '독립신문'이 창간됐다. 이후 '그리스도신문', '제국신문' 등 한글 신문도 잇따라 등장했다.


선교사들이 조직한 조선예수교서회는 신앙서적과 번역서를 펴내며 한글 출판문화 확산에도 힘을 보탰다.


교육과 의료를 통한 선교 과정에서도 한글은 활용됐다. 선교사들은 한글을 근대 지식과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문자로 받아들였고, 교육자료와 의학서적 등을 한글로 제작했다. 한글은 종교를 넘어 지식과 소통의 문자로 영역을 넓혀 갔다.


이 소장은 "당시 번역자들은 성경을 특정 계층의 전유물로 두지 않고 누구든 자신의 말로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고 했다"며 "가장 정확하게 번역하면서도 가장 많은 사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우리말을 찾으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이어 2024년 출간된 '새한글성경' 역시 같은 흐름 위에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성경 문체에 익숙한 독자에게는 낯설 수 있지만, 다음세대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현대 한국어 표현을 적극 활용했다는 것이다.


그는 "선배 번역자들이 그 시대 사람들이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성경을 전하려고 노력했듯이, 오늘의 한국교회도 우리 시대의 언어와 문화 속에서 성경과 복음이 어떻게 전달될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음을 담기 위해 선택한 한글은 더 많은 사람에게 읽히며 한국 사회의 일상과 지식, 신앙을 잇는 문자로 자리를 넓혀 갔다. 성경 번역을 향한 140년 전의 고민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와 문화를 형성하는 하나의 중요한 흐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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