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구원 만드신 하나님…예배가 멈추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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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단시티교회 담임 박현석 목사

▲미단시티교회 담임 박현석 목사 ⓒ데일리굿뉴스
[데일리굿뉴스] 천보라 기자 = '한국의 라스베이거스'를 꿈꿨지만, 지금은 '유령 도시'로 불리는 인천 중구 영종도의 미단시티. 개발 중단 이후 6년째 공사가 멈추며 대부분 공터만 남은 이곳에 한 교회 건물이 서 있다. 37년간 지역과 주민들을 품어온 미단시티교회(구 금산교회)다.
교회는 담임목사의 소천과 성도들의 이탈, 그리고 거액의 빚더미 속에서도 예배의 자리를 지켜왔다. 건물은 본당 공사와 내부 인테리어를 마치지 못한 채 멈춰 섰지만, 예배가 멈춘 적은 없었다. 그 뒤에는 고(故) 조경수 목사와 그의 뒤를 이어 교회를 맡은 사위 박현석 목사(37)의 기도와 헌신이 있었다.
미단시티교회의 전신인 금산교회는 1989년, 영종도 운북동 금산에 개척됐다. 당시 영종도는 배를 타야만 들어올 수 있는 낙도였다. 도시가스는커녕 전기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겨울에는 화목난로를 사용하는 가구가 대다수였다. 열악한 환경 탓에 담임 목회자는 2~3년마다 바뀌었고, 성도들은 마음의 문을 닫았다.
그러던 1997년, 당시 전도사 신분의 조경수 목사가 금산교회에 부임했다. 교회의 현실은 열악하다 못해 처참했다. 예배당은 지붕이 뜯겨 밤하늘의 별이 보였고, 비라도 내리면 물난리가 났다. 전기세조차 내기 어려운 형편에 수리는 꿈도 꾸지 못했다. 성도들은 조 목사 역시 얼마 못 견디고 떠날 거라 여겼다.
하지만 조 목사는 떠나지 않았다. 사례비 한번 제대로 받지 못했지만, 지역의 손과 발이 되어 섬김 사역을 펼쳤다. 4년이 지나자, 성도들도 조금씩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그가 안수받을 시기가 됐을 땐, 오히려 성도들이 붙잡았다. 조 목사가 안수받고 다른 곳으로 떠날까봐서였다. 그는 성도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3년이 지나서야 뒤늦게 목사 안수를 받았다.
교회가 자리를 잡아갈 무렵 시련이 찾아왔다. 인천국제공항 건설과 함께 영종도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교회 건물이 무허가임이 드러난 것이다. 결국 교회는 작은 보상을 받고 근처 임시 처소로 옮겨야만 했다. 조 목사는 종교 부지를 받기 위해 탄원서를 들고 3년간 각 부처를 돌았고, 각고의 노력 끝에 불하받을 수 있었다.
조 목사는 사택과 땅을 담보로 10억을 대출받아 교회를 짓기 시작했다. 그는 낮에는 인천공항과 인근 지역에서 막노동하고, 저녁에는 교회에서 전문가들이 해 놓은 잡부 일을 도맡으며 건물을 한 층씩 쌓아 올렸다. 그러나 또 다른 시련이 왔다. 코로나19로 인천공항이 셧다운되면서 일감이 끊긴 것이다. 금리마저 2.5%에서 5%로 뛰었다.
할 수 있는 건 기도뿐이었다. 조 목사는 30일 금식 기도를 두 차례 드렸다. 그 와중에 부천과 안양 등 다른 지역으로 원정 막노동도 다녔다. 그러나 끝내 한계가 찾아왔다. 조 목사는 사역과 노동을 이어가던 중 쓰러졌고, 끝내 눈도 감지 못한 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사위 박 목사가 그의 눈을 직접 감겼다.

▲고(故) 조경수 목사(오른쪽)와 사모
장례를 마친 뒤 박 목사는 금산교회로 향했다. 사실 그의 꿈은 큰 교회의 담임 목회였다. 이를 위해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를 거쳐 동 대학원 목회학 석사(M.Div), 설교학 석사(Th.M), 선교학 박사( Ph.D)까지 마친 뒤, 부천의 중대형 교회 부목사로 사역하며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었다. 그런 그가 장인의 뒤를 이은 건 어떤 사명감이나 순수한 헌신으로 시작된 결정이 아니었다.
"권유받고 사실은 머릿속에서 여러 가지가 계산됐어요. 제가 준비했던 것들을 다 내려놔야 하는 상황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가지 않으면 장모님과 장인어른을 도와주려고 했던 동료 목사님들의 호의를 거절하는 셈이 되잖아요. 교단에서 목회자에게 붙어 다니는 꼬리표는 꽤 오래가거든요. 그런 꼬리표를 달고 싶지 않았던 게 솔직한 마음이었습니다."
처음 마주한 현실을 생각보다 더 암담했다. 재개발 등으로 성도들은 모두 떠났고, 남은 건 짓다 만 교회 건물과 10억 원이 넘는 빚이었다. 주변에서는 교회를 팔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누군가는 전화를 걸어 젊은 나이에 목회 인생 망치지 말고 떠나라고 권면했다. 심지어 이단 사이비 단체에서 교회 건물을 30억 원에 매입하겠다며 박 목사를 찾아오기도 했다.
박 목사는 한 달간 기도하며 쏟아냈다. 그 속에는 자신을 이곳으로 보낸 원망도 섞여 있었다. 과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상황과 과정에서 인도하시고, 보게 하시고, 알게 하셨다. 절망 가운데 소망을, 두려움 가운데 담대함을 주셨다. 그 깨달음은 작은 교회 목회에 대한 그의 비전과 생각을 완전히 뜯어고치는 계기가 됐다. 교회 이름도 지역의 복음화를 꿈꾸며 미단시티교회로 바꿨다.
"하나님은, 예수님은 죽음이라는 걸 재료로 삼아서 구원을 만들어내신 분이시거든요. 세상에서는 제일 좋지 않은 '죽음'을 빚어서 '구원'을 만들어내신 분이라면, 지금 이 죽음과 같은 상황이 내 앞에 펼쳐져 있을지라도 그걸 통해서 언제든지 선한 것, 좋은 것 그리고 제가 감히 상상하지도 못하는 것을 만들어내실 수 있는 분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상황이 곧바로 나아진 것은 아니었다. 부임 첫해는 가족만 예배드리는 날이 이어졌다. 그 사이에도 대출 이자는 매달 쌓여갔다. 처가에서 조 목사의 사망보험금으로 받은 9,000만 원을 교회에 전액 헌금해 대출금 일부를 상환할 수 있었지만, 여전히 9억 넘는 빚이 남아있었다. 사례비는커녕 매달 이자 낼 돈도 없었다.
박 목사는 공항과 인근 지역에서 일용직을 하며 목회와 노동을 병행했다. 온종일 현장에서 근무하며 받는 일당은 10만 원 남짓이었다. 돈 버는 게 쉽지 않다는 걸 몸소 깨달으면서, 성도들이 어떻게 헌금하는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다. 교회와 그의 삶에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펼쳐졌다.

▲미단시티교회의 주일예배 모습
"70~80대로 보이는 어르신께서 교회로 들어오셔서 저를 찾으셨어요. 어디서 오셨는지 여쭤봐도 알 거 없다고 하시고는 교회를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다 둘러보시고는 서슴없이 토지 매입가 등을 물어보시는데 처음에는 이단에서 왔나 싶었어요. 답변을 들으시고는 갑자기 헌금하겠다며 봉투를 주시더라고요. 그리고 기도하며 잘 버티라는 말을 남기고 가셨어요."
노인은 홀연히 교회를 떠났다. 경황이 없어 연락처도 받지 못했다. 뒤늦게 열어본 봉투에는 1억 원짜리 수표 5장이 있었다. 토지 매입가와 일치하는 금액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한번은 교회 주차장에 280만 원이 담긴 검정 봉투가 놓여있었다. 이후로도 재정이 막힐 때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그달 치의 이자가 헌금으로 들어왔다. 막막하기만 했던 재정에 숨통이 트이기 시작했다. 한때 10억 원이 넘었던 부채는 3억 5,000만 원대로 줄어들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은혜는 공동체의 회복이었다. 성도가 하나둘 늘어 지금은 30여 명의 성도가 모여 함께 예배드리고 있다. 수요일 저녁에는 식탁 교제를 하면서 소그룹으로 말씀을 나눈다. 여전히 쉽지 않은 상황이지만,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기 위해 국내외 선교 사역에도 힘을 보태고 있다.
박 목사는 미단시티교회의 미래를 '생애 주기적 교회'로 그린다. 한 교회가 단순히 유지되는 데 그치지 않고, 신앙의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한 세대의 삶을 함께 걸어가며 또 새로운 세대로 이어가는 공동체를 꿈꾸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지역을 품고, 지역 사람들과 함께 숨 쉬며 살아갈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 같은 목회 철학은 실제 사역에도 반영되고 있다. 특히 올해부터는 다음세대 사역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기존 예배 공간으로 사용하던 1층을 리모델링해 아이들을 위한 별도의 예배 공간도 마련할 계획이다. 설교 또한 각 세대의 현실과 고민을 반영하는 데 초점을 맞춰 말씀 안에서 해석하고, 신앙으로 살아내도록 돕는 데 힘쓰고 있다.
박 목사의 기도 제목은 분명하다. 지역을 품고 여러 세대와 함께 호흡하는 교회가 되는 것이다. 이는 부임 초기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지고 있는 기도이기도 하다. 그는 앞으로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넘어지거나, 때로는 내려놓아야 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의 계획은 멈췄을지라도, 하나님의 계획은 멈추지 않았다. 담임 목사의 소천과 완성되지 못한 건물, 거액의 빚 속에서도 예배의 자리는 이어졌고, 교회는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여전히 현실은 녹록지 않지만, 미단시티교회는 보이지 않아도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의 계획을 믿으며 오늘도 예배의 자리를 지켜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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