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귀츨라프, 한글을 서양에 최초로 알리다’ 이야기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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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츨라프의 한글사랑 및 서양에 알린 공로 조명
[데일리굿뉴스] 박신호 선교기자= 귀츨라프한글문화원(대표 노광국)과 (사)유엔한반도평화번영재단(이사장 김덕룡)이 공동 주관한 포럼 ‘2025 한말글 사랑 이야기 마당’이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한글회관에서 개최됐다.

▲한글회관에서 개최된 ‘2025 한말글 사랑 이야기마당: 한글을 서양에 최초로 알린 칼 귀츨라프’를 시작하기에 앞서 김민주 명성교회 bara 미술인선교회 서양화 작가가 ‘귀츨라프 서체’로 제작한 ‘우리 한글, 얼쑤!’를 들고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부터 (사)세종대왕 생가 복원을 꿈꾸는 사람들 최용기 공동대표, 한글학회 김주원 회장, 리대로 한말글문화협회 회장, 신호철 귀츨라프연구소 소장, 정성봉 한국농식품벤처투자협회 상근부회장,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데일리굿뉴스
이날 포럼에서는 1832년 독일 선교사 칼 귀츨라프의 한글 세계화 노력이 집중 조명됐다. 특히 유교·불교·기독교가 한글과 맺은 관계,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한문 고집 논란 및 귀츨라프의 한글 연구 가치가 주요 논점으로 다뤄졌다.
김주원 한글학회 회장은 축사에서 ‘2024년 새한글성경’이 ‘무교병’을 ‘누룩 없는 빵’, ‘번제’를 ‘다 태우는 제사’로 변경하는 등 시대에 맞춰 개정된 점을 소개하며, 기독교가 한글과 한국어 발전에 기여한 바를 강조했다. 또한 한글을 서양에 최초로 알린 칼 귀츨라프 선교사의 업적을 기리며, 그의 공로가 더욱 널리 알려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노광국 귀츨라프한글문화원 대표는 기조연설에서 “2032년 칼 귀츨라프가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의 우수성을 최초로 세계에 소개한지 200주년을 맞아 이를 기념하는 한글 세계화 프로젝트를 구체화하기 위해 한글을 농식품 크라우드펀딩과 같은 경제적 활용 방안과 접목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안했다.
신호철 귀츨라프연구소 소장은 주제발표에서 1832년 귀츨라프의 첫 번째 논문 ‘Remarks on the Corean Language, The Chinese Repository, Vol. 1, No. 7, November 1832’를 분석하며, 귀츨라프가 황해도 장산(몽금포)에서 보령 원산도로 이동하는 동안 한국인과의 대화에서 들은 한국어 낱말들을 채록해 로마자로 기록하며 훈민정음을 익혔다고 밝혔다.
또한 귀츨라프는 이를 바탕으로 원산도 해안에서 조선 관리의 도움을 받아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귀츨라프는 한글이 15개의 자음과 11개의 모음으로 구성돼 있으며, 168개의 음절을 조합할 수 있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문자라고 평가했다”고 언급했다.
리대로 한말글문화협회 회장은 유교·불교·기독교가 한글 보급에 미친 영향을 비교했다. 그는 조선의 통치 이념이었던 유교가 한문을 절대적으로 중시하며 한글을 공식 언어로 인정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불교 역시 한글로 불경을 번역한 세종대왕의 시도를 이어가지 못하고 다시 한문 중심으로 회귀했으며, 이는 사찰 내 학문 계층이 한문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기독교는 1832년 귀츨라프가 주기도문을 한글로 번역했고, 이후 1882년 로스 선교사가 한글 성경을 제작하면서 한글이 대중적으로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리 회장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이 개혁을 주장하면서도 모든 저술을 한문으로 남겼다는 점도 비판했다. 정약용·박지원·박제가 등 대표적인 실학자들이 한문을 절대적으로 고수하며 한글이 조선의 공식적인 학문과 행정 언어로 자리 잡는 기회를 차단했다는 것이다.
특히 박제가는 조선의 공용어를 중국(청나라)어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이는 한문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대주의적 발상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은 논찬을 통해 일부 반론을 제시하며, 실학자들이 단순히 한문을 고집한 것이 아니라 한글을 적극 활용한 사례도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정약용의 둘째 형 정약종은 한문으로 된 천주교 교리 ‘주교요지(主敎要旨)’를 한글로 번역한 것이 대표적이다.
또한 정조 사후 순조 즉위 초기 정순왕후가 섭정할 당시에는 신하들이 왕에게 한글로 보고서를 올렸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정순왕후의 섭정이 끝나자 한글이 공식 보고서에서 사라진 점을 안타까운 역사적 사례로 지적했다.
최용기 (사)세종대왕 생가 복원을 꿈꾸는 사람들 공동대표는 1834년 귀츨라프의 두 번째 논문 ‘The Corean Syllabary, The Chinese Repository, Vol. 2, December 1834’에서 귀츨라프가 한글의 음운 체계와 문법적 특성을 보다 심도 있게 분석했으며 체로키 문자, 산스크리트어, 일본어 등과 비교하며 한글의 체계적이고 독창적인 문자 구조를 조명했다고 논찬했다.
특히 귀츨라프가 한글의 자음과 모음이 결합한 음절표를 제시하는 등 과학적이고 효율적인 표기법으로 연구한 점은 서양 학계에서 한국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전환점이 됐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행사를 위해 명성교회 bara 미술인선교회 김민주 서양화 작가가 ‘귀츨라프 서체’로 ‘우리 한글 얼쑤!’를 제작했고, 붓글씨 퍼포먼스 작가 한창환 서예가는 ‘한글사랑 칼 귀츨라프’를 즉석에서 휘호해 행사에 의미를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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