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단독]"납치 위장해 망명시켜달라" 北대사관 습격 충격 증언 > 한국교계뉴스 Korean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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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미국 해병대 출신의 크리스토퍼 안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2019년 2월 22일(현지시간)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대사관 앞에서 감시 카메라에 찍힌 모습들. 미 캘리포니아 연방검찰이 제공했다. [뉴시스]

2019년 2월 반북단체인 '자유조선’(옛 천리마 민방위)이 스페인 마드리드 주재 북한대사관을 '습격'한 것은 망명을 납치로 위장해 달라는 북한 외교관들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는 주장이 나왔다. 복수의 북한 외교관들이 당초 이런 방식의 탈북을 모의했지만 발각되자 북한 당국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 공격당했다고 거짓 증언을 했다는 것이다.

스페인 北대사관 습격 사건으로 체포된 크리스토퍼 안

미 법원에 "스페인 송환 거부해달라" 기소 반박 의견서

北 외교관, 탈북 후 보복 두려워 인질극 꾸며달라 요청

"北 관료 증언만 수사…미국인을 독재자에게 넘기는 것"

대사관에 침입한 자유조선 일행 가운데 유일하게 체포된 크리스토퍼 안의 변호인단은 22일(현지시간) 미국 연방법원에 이 같은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중앙일보가 단독 입수한 변호인 의견서 전문에 따르면 변호인단은 이 사건을 북한 외교관들이 자유조선과 '공모'했다가 실패한 자작극으로 규정했다.

의견서에 따르면 북한대사관 관계자들은 먼저 자유조선에 연락해 자신들의 탈북을 도와달라고 요청했다. 배신행위가 발각되면 북한 내 가족이 보복당할 수 있다면서 유괴극을 벌여줄 수 있느냐고 제안했다.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EPA=연합뉴스]

약속대로 2019년 2월 22일 오후 4시40분쯤 자유조선 리더인 에이드리언 홍 창과 안씨 등이 북한대사관에 도착했다. 한 외교관이 안에서 문을 열어줘 들어갔고, 일행은 북한 외교관과 가족들을 결박했다. 당시 안씨는 오른손에 골절상을 입은 상태여서 그마저도 돕지 못하고 지켜만 봤다고 한다.  

오후 5시12분쯤 갑자기 한 북한 외교관의 부인 조선희가 2층 창문에서 바깥으로 뛰어내렸다. 조씨는 차를 몰고 대사관 앞을 지나던 남성과 마주쳤고, 그의 신고로 경찰에 사건이 접수됐다. 조씨는 구글 번역기를 사용해 경찰과 소통했으며 "어떤 사람들이 대사관에 들어와 사람을 죽이고, 사람을 먹고 있다. 그곳에는 아이들도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오후 5시50분쯤 경찰관 3명이 초인종을 울리자 대사관 안에 있던 사람들은 그제야 조씨가 탈출한 사실을 알았다고 한다. 그때부터 기류가 확 바뀌었다. 변호인단은 "북한 사람들이 점점 고통스러워했다"고 전했다.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하자 발각됐다는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 얼마 뒤 홍 창은 안씨에게 "북한인들이 마음을 바꿨다. 더 이상 귀순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발생한 스페인 주재 북한대사관 괴한 침입 사건 용의자 '에이드리언 홍 창'. [AFP=뉴스1]

오후 9시4분쯤 자유조선 일행은 대사관 차량과 우버 차량에 나눠 타고 대사관을 떠났다. 9시22분쯤 자신들을 인근 대학 건축학과 학생이라고 밝힌 북한인 3명이 대사관에 도착했는데 이들은 정보요원일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변호인단은 안씨가 북한 외교관들이 탈출을 도와달라고 요청해 대사관에 들어가 인질극을 벌이는 것으로 알았고, 그마저도 손 부상으로 가담하지 못했으며, 폭행·강도·상해 같은 불법행위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범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2019년 2월 스페인 주재 북한 대사관 습격을 감행한 반북단체 '자유조선'이 그해 3월 20일 공개한 영상 캡처본. 자유조선은 당시 영상을 공개하면서 촬영 장소는 설명하지 않았다. [자유조선 홈페이지 영상 캡처=연합뉴스] 

또 정권의 보복을 두려워한 북한 외교관들의 진술만을 토대로 한 스페인 경찰의 범죄인 인도 요청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당시 북한 외교관 및 가족 6명과 건축학도 3명 등 모두 9명이 스페인 경찰에서 진술했는데 이들은 모두 대사관 최고위직인 ‘미스터 서’가 있는 자리에서 조사받았다. 서씨가 감시자 역할을 했기 때문에 북한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과장되게 표현한 증언들은 신빙성이 의심된다고 했다.

변호인단은 북한 전문가를 인용해 통상 이런 사건은 북한 외무성과 국가안전부를 통해 최상부에 보고되고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곧바로 가족을 체포하고 재산을 몰수한다고 법원에 설명했다. 이어 북한은 오랜 기간 해외에서 납치와 살인을 자행했다고 설명하면서 스페인 사법절차의 공정성이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적을 고문하고 죽이는 북한이 문제라고도 지적했다.

특히 안씨가 2017년 2월 피살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복형 김정남의 장남 김한솔의 마카오 탈출을 도왔다는 언론 보도가 나온 만큼 그가 미국을 떠날 경우 북한 정권의 살해 표적이 될 것이라며 인도주의에 따른 범죄인 인도의 예외를 인정해 달라고도 호소했다.  

변호인단은 안씨를 넘겨달라는 스페인 정부의 요청을 트럼프 행정부가 받아들인 것도 비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9년 4월 북한 외교관과 가족의 진술을 토대로 한 수사 결과를 근거로 안씨의 송환을 수락했다는 것이다. 북·미 하노이 정상회담은 사건 발생 닷새 뒤인 2월 27~28일 열렸다.  

변호인단은 "안씨는 북한 외교관의 진술을 미국 정부가 신뢰할 것이라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인도는) 북한이 스페인 정부를 도구로 삼아 미국의 참전용사를 데려가겠다는 데 협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에서 태어난 안씨는 해병대에서 6년간 복무한 군인 출신이다.  

이날 제출한 변호인단 의견서를 법원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변호인단은 의견서에서 북한 외교관들이 탈북을 요청했다는 안 씨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페인 경찰 역시 북한 외교관들의 진술 이외에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을 법원이 고려할 수도 있다. 연방법원은 4월 9일 안씨의 범죄인 인도 여부를 결정하는 심리를 열 계획이다. 

워싱턴=박현영 특파원 hy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