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역자 구인구직 정보·물품 나누자” 목회자판 당근마켓 앱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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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목회자들’ 박종현 목사
SNS 소통의 한계 뛰어넘는
위치 기반 앱 ‘알음’ 이달 말 선봬
원하는 교회·목회자 후원 기능도
일하는 목회자를 위한 위치 기반 물품·정보 공유 애플리케이션 ‘알음’의 시작 화면(왼쪽)과 물품 판매 화면(오른쪽). 알음은 이달 말 출시 예정이다. 박종현 목사 제공
‘영등포구 당산동에서 장사하는 목회자는 누가 있을까.’ 애플리케이션(앱)을 켜자 내 주변에서 카페 과일가게 학원 등을 운영하는 목회자들의 위치가 뜬다. 목회자 이름을 누르면 그가 시무하는 교회 정보가 보인다. 목회자가 판매하는 상품을 사고 싶거나 교회 관련 문의할 게 있으면 앱의 쪽지 보내기 기능을 이용하면 된다.
박종현(사진) 함께심는교회 목사가 개발해 이달 말 출시 예정인 앱 ‘알음’의 모습이다. 목회자 위치 기반 정보·물품 나눔 플랫폼으로, ‘목회자판 당근마켓’인 셈이다. 회원 1만명에 달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일하는 목회자들’(일·목)을 만든 박 목사는 ‘교회의 모든 문제는 돈에서 비롯된다’는 깨달음 아래 약 20년간 ‘일터 신학’을 고민해왔다.
서울 송파구 사무실에서 18일 만난 박 목사는 ‘교계에 도움이 되고 싶다’며 지난해 10월 그를 찾아온 30대 두 청년을 떠올렸다. 당시 박 목사는 일·목 페이스북 페이지가 플랫폼상 한계에 부딪혔다고 느끼고 있었다. 2016년 만들어진 이 페이지는 목회를 하면서 다른 직업이 있는 목사들이 일자리, 물품 나눔 등 정보를 교환하고 애환을 나누는 장소다.
박 목사는 “페이스북은 새 글이 올라오면 예전 글은 아래로 묻힌다는 한계가 있다. 3년 전부터 위치 기반 앱을 만들고 싶었는데 도와주겠다는 이들이 나타나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와 두 청년은 즉시 정부 창업지원금과 사비를 들여 앱 개발에 들어갔다.
내 주변에 있는 목회자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용역을 제공하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게 알음의 특징이다. 박 목사는 “목회자뿐 아니라 동네 미자립교회를 도우려는 성도들도 목회자의 과일가게나 에어컨 수리 센터 등을 찾으러 알음을 이용할 수 있다”며 “당근마켓 앱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알음에는 원하는 교회, 목회자에 후원할 수 있는 기능과 일자리 정보를 공유하는 구인·구직난도 마련돼 있다. 최소한의 앱 유지·관리를 위해 게시글을 올리려는 사람은 월 3300원의 회비를 내야 한다.
알음 개발, 일·목 설립 등 박 목사의 활동은 그가 2000년대 초반 교회에 관심을 가질 무렵부터 해온 ‘교회 재정’에 대한 고민과 맞닿아 있다. 당시 사회에 물의를 일으킨 일부 교회의 문제를 분석하니 그 중심에는 ‘돈’이 있었다고 한다. 개척에 나선 지인들이 갖고 있던 고민들도 복음의 본질이 아닌 돈 문제였다. 박 목사는 “고민 끝에 교회가 재정적으로 자유로워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면서 “최소한 건물 월세는 걱정을 안 해야 초심을 지키며 목회를 할 수 있다는 깨달음”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개척 전 상담센터를 먼저 운영해 ‘일하는 목회자’의 길을 택했다. 지금도 전도사닷컴과 사회적 협동조합 등에서 일하며 임금을 받는다.
앞으로 일하는 목회자들은 더욱 가파르게 증가할 전망이다. 과거 1970~90년대처럼 교회의 양적 확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박 목사는 “배출된 목회자 수는 누적돼 포화상태인 반면 교인, 인구수는 줄어들고 있다. 더 이상 모든 교회가 교인 헌금으로 월세나 공과금 등을 충당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속 가능한 목회를 위해 목사가 노동 현장에 뛰어드는 건 이제 피할 수 없는 흐름이라는 것이다.
박 목사는 목회자의 자립을 위해 교단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들어 국내 주요 교단들이 제한적으로나마 목사 이중직을 허용하는 분위기긴 하지만 교회법적으로 전면 허용하거나 행정적으로 지원해주는 사례는 없다. 박 목사는 “목사들은 목회 하나만을 바라봐온 사람들이다 보니 갑자기 교회 밖 세상에 내동댕이쳐지는 경우 사기를 당해 빚까지 지는 등 적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교단 차원에서 일터에 나가려는 목회자에 대한 교육과 사례 개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직도 일부 교계 관계자들은 ‘일하는 목회자’에 거부감을 느낀다. 그런 이들에게 박 목사는 한국형 ‘일터 신학’을 제시했다. 일터 신학은 교회 예배뿐 아니라 가정, 직장 등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고 선교하는 것을 다룬다. 박 목사는 “역사적으로 노동은 천대받았기 때문에 편견이 아직도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이제 하나님이 나를 보내신 곳, 즉 가정과 일터에서 어떻게 신앙을 실천하고 주변이 나를 통해 하나님의 존재를 느끼게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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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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