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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인터뷰] 김학송 선교사가 북한 억류 선교사 석방을 위해 나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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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KCMUSA| 작성일2026-03-04 | 조회조회수 : 5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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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친 김학송 선교사는 한인 커뮤니티에 석방 청원 서명 캠페인에 동참해줄 것을 거듭 부탁했다.


“저는 나왔습니다.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 1년 3일 억류, 그리고 김학송 선교사의 멈추지 않는 사명


“달력도, 시계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백서를 쓰던 종이를 몰래 빼내어 날짜를 적었습니다. 하루 지나면 선을 하나 긋고, 또 하루 지나면 또 하나 긋고… 그렇게 1년 3일을 살았습니다.”

김학송 선교사는 북한에 억류됐다 석방된 한인 시민권자다. 2017년 5월 6일 체포돼 2018년 5월 9일 풀려났다. 그가 북한에서 보낸 1년 3일의 시간은 단순한 억류 생활이 아니라 신앙과 사명을 다시 붙드는 시간이었고, 오늘 그가 북한에 억류돼 있는 한국인 선교사들의 석방을 위해 뛰어다니는 동력이 되고 있다.

“북한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 탈북자 선교의 시작

북한에 억류돼 있는 한국인 선교사는 김정욱, 김국기, 최춘길 선교사 세 명이다.

자료에 따르면 김정욱 선교사는 한국기독교침례회 소속 목사로, 2007년부터 중국 단둥 등지에서 북한 주민과 탈북민을 돕는 쉼터와 국수공장을 운영했다. 그러나 2013년 10월 북한 당국에 체포된 뒤 2014년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고 복역중이다.

김국기 선교사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중앙총회 소속 목사로 알려져 있으며 2003년부터 북한 동포에 의약품과 의류 등 인도적 지원 사역을 펼쳐왔으나 2014년 10월 북한 당국에 체포됐다.

최춘길 선교사 역시 2014년 12월 체포된 후 이듬해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처음 이들이 북한에 억류됐을 때만 해도 국제사회와 한국 교회에서는 석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의 이름은 점차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김 선교사가 다시 이들의 이름을 꺼내들고 나타났다.

그가 석방 운동에 나선 이유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가 북한과 인연을 맺게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굶주림과 억압 피해 국경 넘는 탈북자들이 현실

“처음 탈북자들을 만났을 때 충격이 컸습니다. 자유를 찾아 나왔지만, 이들은 또 다른 두려움과 불안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탈북자들이 겪는 가장 큰 두려움은 중국 공안에 체포되면 강제로 북송될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북한에 남겨진 가족들이 처벌받을 수 있다는 공포도 그들을 짓누르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김 선교사는 단순한 물질적 지원을 넘어, 정착을 돕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을 느꼈다고 했다. 북한 주민을 향한 연민과 신앙적 책임감이 그를 선교의 자리로 이끈 것이다.

“북한을 정치적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영혼으로 봤습니다. 고통받는 사람으로 봤습니다. 그래서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사역은 결국 북한 당국의 체포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잃어버린 성경을 되찾으며 기적을 체험하다


2017년 5월 6일 체포된 날은 아내에게 중국으로 돌아간다고 전화통화를 한 직후였다. 북한 당국에 끌려간 그는 속옷만 입은 채 무릎을 꿇고 “반공화국 범죄행위” 혐의를 들었다. “즉시 척결해 죽일 수 있다”는 위협도 받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초기 3개월 동안 잠을 재우지 않는 조사와 반복적인 심문이 이어졌다. 그는 가족을 언급하며 협박하는 말들이 가장 큰 공포였다고 말했다.

“몸보다 정신이 먼저 무너집니다. 자백하지 않으면 아내와 딸을 데려오겠다고 하는데 그때 느낀 공포는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조사를 마치고 구치소로 돌아와 받는 음식은 열악했다. 곰팡이 핀 반찬과 까만 쌀밥이 전부였다. 그는 “음식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먹을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정말 살아남기 위해 먹어야 했다”고 말했다. 

감옥에서 붙든 말씀

하지만 기적은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찾아온다.

북한 감옥에서 조사를 받던 어느 날 담당 조사관이 "필요한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김 선교사는 큰 기대없이 "성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성경은 목사 안수를 받을 때 아내가 선물한 것이었다. 평소 늘 들고다니며 읽던 책이었지만 갖고 있던 짐도 제대로 챙길 시간도 없을 만큼 갑작스럽게 체포됐기에 잃어 버린 상태였다.

그 성경이 구치소 방을 옮긴 뒤 받은 짐 보따리 속에서 나타났다. 김 선교사는 "성경을 본 순간 부둥켜 안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회상했다. 그후부터 자신을 쉬지 않고 심문하고 감시하며 괴롭혀 미움이 쌓여갔던 담당 조사관을 향한 마음이 조금씩 열렸다.

욥기와 사도행전은 그의 버팀목이었다. 특히 감옥에서 기도하던 사도들의 이야기는 그의 상황과 겹쳐졌다.

“사도행전 12장과 16장을 계속 읽었습니다. 교회가 기도하니까 옥문이 열렸다는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종이에 빼곡히 날짜를 적으며 시간을 버텼다. “내가 아직 살아 있다는 걸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저는 나왔지만, 아직 그 안에 남은 자들이 있습니다”

또 다른 기적은 재판 여부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김 선교사는 어느 날 도착한 장소에서 이발 담당자가 자신의 머리를 어떻게 할지 조사관에게 묻는 장면을 떠올렸다. 조사관과 이발 담당자는 잠시 밖으로 나가 상부에 보고한 뒤 들어왔고, 결국 그의 머리는 '삭발'이 아닌 일반 이발 수준으로 정리됐다.

"삭발하면 재판을 받는 것이라고 했다"는 김 선교사는 "머리와 수염을 깎는 내내 거울 속 내 모습을 보면서 재판을 받지 않는다는 안도감과 초라하고 별볼일 없는 나를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해 눈물이 났다"고 전했다.

그는 결국 재판을 받지 않은 채 억류 상태로 지내다 1년 3일 만에 석방됐다. 김 선교사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도널드 트럼프가 북한에 특사로 보낸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에 의해 돌아왔다. 폼페이오 장관은 김 선교사 외에도 김동철, 김상동씨까지 한국계 미국인 3명을 인솔해 미국에 귀환했고,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이들을 맞아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지금도 자유를 온전히 누리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나왔지만 아직 그 안에 계신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억류 기간동안 가장 두려웠던 것이 ‘망각’이었다고 털어놓았다. “밖에서 기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큰 힘이 됐다. 기도하며 성경을 읽으며 내가 잊혀지지 않았다는 것이 나를 살렸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지금 북한 억류 선교사 석방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그에게 이 일은 정치적 활동이 아니라 신앙적 책임이다.

“하나님께서 저를 살려 두신 이유가 있다면 말하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증언하지 않으면, 그 안의 현실은 세상에 알려지지 않습니다.”

“북한 감옥은 지옥 중의 지옥”

그는 "나는 비교적 짧은 기간 억류됐고 노동교화소로 가지 않아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며 “북한 감옥은 지옥 중의 지옥”이라고 표현했다.

밖에서는 시간이 흐르지만 감옥 안의 시간은 멈춰 있다. 그는 여전히 그곳에서 하루를 버티고 있을 이들을 생각하며 말을 이었다.

“밖에서는 1년이 금방 지나갑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는 하루가 1년 같습니다.”

멈추지 않는 이유

탈북자를 돕겠다는 마음에서 시작된 사역. 억류라는 고통의 시간을 지나 이제 그는 다시 북한 억류자들의 자유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북한에서 풀려난 후 후유증으로 인해 파킨슨 병을 앓고 있는 김 선교사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남가주 교회들과 단체들을 방문하며 석방 촉구 서명운동에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북한을 사랑해서 시작한 일입니다. 고통받는 사람을 외면할 수 없어서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368일 동안 그어 내려간 달력의 선은 끝났다. 그러나 아직 선을 긋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그는 오늘도 말하고, 기도하고, 움직이고 있다.

“그 이름을 불러 주십시오. 잊지 말아 주십시오. 교회가 기도하면, 옥문은 열립니다.”

김학송 선교사의 사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북한 억류 한국인 선교사 석방 청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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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니콜 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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