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A] 민권운동 지도자 TC 비비안 목사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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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애틀랜타 자택서 사망
평생 흑인 민권운동 헌신
민권운동 지도자인 코디 틴델 비비안 목사가 17일 애틀랜타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95세다.
그의 딸인 키라 비비안은 “그는 가장 사랑스럽고 사랑 많은 아버지였다”며 “내 생애 최고의 아버지였다”고 회고했다.
비비안은 1961년 남부의 인종분리 정책에 맞서 대학생들이 버스를 타고 남부를 돌며 시위를 벌인 '프리덤 라이드(freedom Ride)' 운동에 참가했으며,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와 함께 일했다.
비비안은 1947년 일리노이에서 첫 비폭력 시위에 참가했으며, 이후 목회자로 소명을 받아 1955년 내쉬빌 아메리칸 뱁티스트 신학교에 입학해 이후 목사가 됐다. 1955년 그는 내쉬빌기독지도자회를 조직해 흑백차별 항의시위 및 민권운동 행진을 주도했다.
1965년 비비안은 앨라배마 셀마에서 유권자 등록운동을 이끌면서 남부기독지도자회 총무 일을 수행했다. 짐 클락 셰리프가 이 단체를 막아서자 성난 목소리로 “미국 시민이므로 유권자 등록을 할 권리가 있다”고 외쳤고, 클락은 그를 때려 피가 턱을 통해 흘러내렸으며, 이는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다. 이 모습이 변화에 대한 폭넓은 지지를 이끌어내는 계기가 됐다.
그는 인종차별에 항의하다 학교에서 쫓겨난 학생들을 돕는 대학준비 프로그램을 조직하기도 했다. 이후 그의 비전 프로그램은 연방교육부가 고등학교 및 대학 졸업률을 높이기 위한 소재로 활용하기도 했다.
1970년대 비비안은 KKK단을 감시하는 미국 반클랜 네트워크를 조직해 활동하다 이후 민주적 갱신센터로 개명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시민에게 수여하는 최고 훈장인 대통령 자유메달을 2013년 그에게 수여했다. 비비안은 1924년 7월 30일 미주리주 분빌에서 태어났으며, 부인인 고 옥타비아 진스 비비안 사이에 6자녀를 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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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한국일보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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