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광훈 님,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 보고 예수 믿으세요”

입력
2020.08.27 04:30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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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는 기독교 예배 형식을 빌려와 한국 기독교의 보수화와 소수자 혐오 문제를 비판한다. 남산예술센터 제공

연극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는 기독교 예배 형식을 빌려와 한국 기독교의 보수화와 소수자 혐오 문제를 비판한다. 남산예술센터 제공


코로나19 시대, 신천지에 이어 사랑제일교회다. 하지만 새삼 놀랍다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지금 이 상황을 예언한 듯한 연극 한 편이 때마침 무대에 오르는 지도 모른다. 서울 예장동 남산예술센터에 오를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다. 대부흥,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다.

25일 남산예술센터에서 만난 임성현(30) 연출은 마스크 너머로 긴 한숨부터 내쉬었다. 당초 다음달 2일부터 13일까지 상연할 예정이었으나 7일까지 공연이 일단 취소됐다. 코로나19가 계속되면 남은 공연마저 온라인으로 대체된다. “분통이 터져요. 공연을 못하게 된 이유가 다른 무엇도 아닌 ‘교회’라니.”

제목에서 짐작하듯 이 연극은 기독교의 보수화, 소수자 혐오 문제를 다룬다. 작품 자체는 오래 전부터 준비해 왔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극단화된 데는 기독교 책임이 크다”는 임 연출의 문제의식에 반박할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코로나19 사태는 이를 더 선명하게 드러냈을 뿐이다. 임 연출은 지금의 사태를 “우리 사회의 민낯”이라 했다.

연극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를 쓰고 연출한 임성현 연출은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과 믿음을 우리 것으로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연극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를 쓰고 연출한 임성현 연출은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과 믿음을 우리 것으로 되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제대로 알아야 제대로 비판도 할 수 있다.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는 기독교 예배 순서와 형식을 고스란히 따른다. 찬양, 희생제의, 참회의 시간, 서원기도, 성찬식, 축복기도 등. 라이브밴드와 성가대는 찬송가로 흥을 돋우고 무대와 객석, 극장 전체를 대형 예배당으로 만든다.

무릇 참 신앙은 회개에서 시작하는 법. 성경 구절과 설교 형식을 차용한 극의 도입부는 ‘기독교의 기형적 성장사’를 참회한다. 일제강점기엔 친일, 해방 뒤엔 친미 반공, 보수 정권과 유착 등을 고백한다.

여기에 임 연출은 연극계 화두로 떠오른 남산예술센터 문제를 덧댄다. 동랑 유치진도 친일, 반공에 앞장섰고, 공공극장을 세우겠다며 국유지를 받아 남산예술센터를 짓고는 결국 사유화했다. 남산예술센터는 현재 서울시가 임대 운영 중인데 올해 말 계약이 끝나면 서울예대(학교법인 동랑예술원)로 돌아간다.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는 기독교 뿐 아니라 공공극장도 제자리로 되돌려놓자는 의미다.

이 작품엔 예수의 생애를 퀴어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극중극도 포함됐다. ‘퀴어예수’라니, 보수적인 이들은 발칵 뒤집어질 일이다. 근거가 없는 건 아니다. 성별 규범을 의도적으로 해체하는 ‘퀴어신학’의 관점을 빌려 왔다. 퀴어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뒤엔 시 구절에 멜로디를 붙인 노래를 부른다. “만일 우리가 벼랑으로 떨어진다면, 예수님이 구해 주시겠지, 우리에게도 그 사랑을 보여 주시겠지, 푹신한 솜이불처럼 따뜻한 사랑을.” 2003년 스무 살 나이에 세상을 등진 성소수자 인권운동가인 필명 육우당의 시다. 예수를 기억한다는 건, 육우당 같은 이들을 기억하는 일임을 명백히 했다.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 공연 컨셉트를 담은 장면. 남산예술센터 제공

'남산예술센터 대부흥성회' 공연 컨셉트를 담은 장면. 남산예술센터 제공


아이러니하게도 임 연출은 기독교계 대학까지 다닌,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집안 자체가 그렇다. 아버지와 외할아버지는 목사님이다. 스무살 무렵 동성애 혐오를 부르짖던 주변 사람들 때문에 의문을 품게 됐다. 임 연출은 그들을 ‘반면교사’라 불렀다. “그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나도 광복절집회 같은 행사 기획하며 살고 있었을지 모른다”며 웃었다.

임 연출이 궁극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건 “공동체의 복원”이다. 연극도, 종교도, 공동체를 위한 것이다. 교회라는 말 자체가 공동체란 뜻이다. “관객들이 공연을 보는 순간만이라도 공동체를 경험했으면 좋겠어요. 서로 차별하지도 받지도 않고 공존하며 살아가는 세상이요.”

마지막으로 이 연극을 꼭 보여주고 싶은 사람을 물었다. 거침없는 답변이 나왔다. “전광훈 님, 우리 연극 보시고 예수 믿으세요.”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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