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굿뉴스] 최상경 기자 = 16살 아들은 둔 학부모 A씨는 최근 아들과 드라마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청소년이 보는 15세 이상 등급 드라마에서 동성 간 키스장면이 너무나 노골적이게 묘사됐기 때문이다. 

그는 "굳이 아이들도 볼 수 있는 드라마에 이런 장면을 넣었어야만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며 "아이들이 콘텐츠에 무방비하게 노출돼 있음을 자각하게 됐다"고 밝혔다. 문제는 앞으로 이 같은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는 데 있다. 

넷플릭스, 티빙, 웨이브 등 온라인동영상사업자(OTT)가 콘텐츠 시청 등급을 분류하는 자체등급분류 제도 시행을 앞두고 무분별한 등급 분류와 청소년 보호 측면이 약화될 것이란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는 지난달 28일 'OTT 자체등급분류 제도' 설명회를 열고 5월 중 OTT 자체등급분류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OTT 자체등급분류'는 영등위를 거치지 않고 사업자가 스스로 시청 등급을 결정해 콘텐츠를 서비스하도록 한 제도다. 지금까지 OTT 콘텐츠 시청 등급은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문체부 산하 영등위의 사전 심의를 통해 매겨졌다.

영등위가 사전 심의에서 사후 관리로 정책을 전환한 배경에는 국내 OTT 플랫폼 수와 콘텐츠 생산량의 증가가 있다. 콘텐츠 수가 급증하면서 기존의 영등위 심의 구조가 급변하는 미디어산업 환경을 적시에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OTT 업계는 등급분류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콘텐츠를 공급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제도 시행을 반기는 분위기다. 기존 영등위 사전 심의는 평균 14일 정도 소요된 반면 제도 시행이 본격화되면 원하는 시기에 즉시 콘텐츠 등급 결정을 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등급분류로 인해 서비스가 지체되면 비용을 허비하게 되는 상황이라, 이번 제도 시행으로 이런 문제들이 해소될 것으로 본다"고 내다봤다. 

반면 사후 관리를 비롯해 여러 부작용이 예상된다. 

영등위는 등급 분류 기준 등 교육을 강화하고, 등급 적절성 검토를 위한 감시와 사후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겠단 입장이지만, 잘 이뤄질지 미지수다. 

앞서 자체등급분류가 먼저 도입된 게임 업계에서도 제도 시행 이후 일부 미성년자 이용가 게임에서 선정성, 사행성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이와 관련 시민단체들은 청소년 보호 측면에서 게임물에 대한 규제가 약화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 제도 도입에 관한 우려 섞인 시선도 존재한다. 

지난해 영등위가 실시한 '영상물 등급분류 인지도 및 청소년 영상물 이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4.8%가 OTT 업체들이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등급을 낮춰서 분류할 것"이라고 답했다. "엄격한 사후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65%에 달했다. 

안 그래도 선정적이거나 전통적 가치관에 부합하지 않은 콘텐츠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제도 도입으로 인해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학교폭력 희화화부터 과격한 남녀 간 몸싸움, 동성애 미화까지. 이미 OTT 예능과 드라마를 둘러싼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최근 쿠팡플레이 예능프로그램 'SNL 코리아 시즌3'은 학교폭력을 희화화했다가 도마 위에 올랐고, 넷플릭스 예능 '피지컬: 100'도 남자 출연자가 대결 도중 무릎으로 여자 출연자의 가슴을 누르는 장면으로 논란에 휩싸였었다.

BL(Boys Love)이나 청소년 마약 등 자극적인 소재를 내세운 작품들도 OTT 시장에 꾸준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왓챠의 경우 국내 OTT 시리즈 중 최초로 동성애 코드를 전면에 내세운 '시맨틱 에러'를 공개했다. 청소년 관람 불가인 원작의 수위를 12세 관람가로 낮추고 BL이라는 소재를 캠퍼스 로맨스로 포장해 논란이 됐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TV에 비해 OTT 프로그램들은 공공성을 갖춰야 한다는 부담이 훨씬 덜하며"며 "그렇기 때문에 논란으로 번질 수도 있는 다양한 시도가 보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청소년에게 유해한 콘텐츠가 급증하고 있는 현실도 문제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이 영등위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3년간 국내외 OTT의 등급분류 심의를 진행한 콘텐츠 7,149편 가운데 1,517편(21.2%)이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을 받았다.

최근 3년간 OTT에서 제공된 콘텐츠의 5건 중 1건은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인 셈이다.

김 의원은 "국내 OTT 시장이 코로나19 확산으로 급성장한 가운데 청소년에게 유해한 콘텐츠가 주를 이루고 있다"며 "특히 마약, 폭력, 음주 등 청소년 유해 영상물이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OTT 자체등급분류제도가 도입되면 콘텐츠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에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나, 청소년들의 유해 콘텐츠 노출에 대한 우려가 큰 만큼 이를 해소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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