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이남 최초 교회...윌리엄 베어드 선교사 설립
절체절명 위기...피난민 구호·국난극복 기도운동 앞장
구국기도회, 일제강압에 신사참배한 회개 줄이어


영남권을 대표하는 어머니교회로 불리는 부산 초량교회. 예장합동 교단이 한국기독교 역사 사적지로 지정할 정도로 역사적 의미가 남다른 곳이기도 하다. 6·25 당시 피난민들을 섬기고 나라를 위한 구국기도에도 앞장섰던 부산 동구에 위치한 초량교회를 소개한다.
 
부산 동구 초량동에 위치한 초량교회는 6·25 당시 피난민들을 섬기고 나라를 위한 구국기도에도 앞장섰다. (사진제공=초량교회)

부산역을 마주한 부산 동구 초량동 이바구길 언덕배기. 이곳에는 영남권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사적지 초량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현재 초량교회는 이전의 모습을 찾아볼 순 없지만 1892년 미북 장로회 윌리엄 베어드 선교사가 한강 이남에 세운 최초의 교회다.

초량교회는 일제 치하 항일구국활동에 누구보다 앞장서며 숱한 역경과 고난을 딛고 잘 견뎌왔다. 6·25 전쟁 발발 후 40 여 일만에 대구, 부산 등 몇몇 지역을 제외한 남한의 전 지역이 공산군에 점령을 당하는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교회는 피난민들의 안식처가 됐다. 교회 내 유치원은 휴원을 하고, 뜰과 마당은 온통 천막으로 덮였다. 그리고 전 교인이 힘을 합해 피난민 구호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한국교회는 초량교회 등 부산 곳곳에 모여 국난극복을 위한 간절한 기도회를 열었다.
 
▲ 1950년 6·25 당시 전국에서 초량교회로 피난 온 목사, 장로 등이 구국기도회에 참여했다. (사진제공=초량교회)

당시 초량교회 구국기도회 참가자였던 정금준 장로(95)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서 항상 밤낮으로 기도를 했다. 당시 전국에서 모여든 목회자와 그들의 가정이 함께 기도회를 이끌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정 장로는 "대통령, 부통령도, 장관 등 한국 정치인들도 대거 참석해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며 그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초량교회역사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충권 장로는 "당시 목회자들이 구국기도회를 통해 일제강점기 때, 일제 강압에 못 이겨서 신사참배를 했던 것을 회개하는 기도가 이어지면서 일주일만 하려던 기도회가 일주일 더 연장되었다"며 "기도자와 설교자들의 회개고백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기도회였다"고 전했다. 
 
▲ 초량교회 역사관에 있는 강대상, 화분대, 의자는 1920년대 말 제작됐으며, 순교한 주기철 목사 목회 부터 1950년 6.25 한국전쟁 당시 구국기도회 때 이후까지도 사용됐다. ▲ⓒ데일리굿뉴스  

초량교회는 역사 유산을 후대에도 널리 알리고자 교회 내 역사관도 만들었다. 본당 2층 예배당을 지나면 2010년 9월 새롭게 만든 역사관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는 초량교회의 역사를 듣기위해 전국 각지에서 교회의 수련회나 성지순례 등을 통해 방문을 한다. 역사관에 들어가면 큰 강대상을 하나 볼 수 있다. 이 강대상에서 초량교회 3대 담임 주기철 목사를 비롯해 1950년 9월 통회구국기도회 당시 고 한상동 목사와 여러 목회자들이 설교를 하고 기도회를 이끌었다.
 
초량교회 김대훈 담임목사는 "전쟁 발발 후, 3일 만에 부산까지 공산군에 의해 점령을 당하게 되니 이 절박함이 구국기도회를 이끌게 한 것 같다"며 "초량교회 예배당에는 항상 태극기 현수막이 걸려 있는데 믿음의 조상들 뒤를 이어 나라를 사랑하는 성도가 되길 바라는 의미에서 기도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목사는 "이러한 믿음의 조상들이 보여 준 기도의 정신이 성도들에게 자연스럽게 배움이 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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